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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chy foot Nov 06. 2023

너에겐 보내지 않을 편지

악연으로 만든 건 너였을까, 나였을까

오래간만에 조금 한가하다. 몸이 한가한 거지 마음은 한가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쉬고 있는 몸뚱이를 보고 있기가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 미리 해 두면 편할 일을 찾아서 컴퓨터를 붙들고 있다. 그렇게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그런데 이유가 뭘까. 이 노래를 듣는 데 갑자기 네가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너와 같이 들었던 적도 없고 너와 만났던 그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노래인데. 그저 운동길에 들으며 차오르는 숨을 달래는 곡으로 듣곤 하는 이 노래가 왜 너를 불러온 걸까.


갑자기가 아니다. 어제부터 아니, 요 며칠 전부터 네가 간간이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알듯도 하다, 그 이유가. 요 며칠 다른 날보다 한가했다. 그게 이유였다. 


'기다릴게.' 뭘 기다린다는 걸까. 너에게 다시 돌아갈 나를 기다린다는 건가. 그렇게 넌 날 기다리고 있는 걸까. 왜 이 노래는 네가 나에게 끊임없이 보내는 속삭임같이 느껴지는 걸까. 몇십 년이 지난 시간에도 너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걸까. 그렇게 날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럼 난 왜 너를 떠났을까. 다시금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너를 밀어내고 밀어내다 못해 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가위로 쓱싹 잘라내듯이 그렇게 쳐낸 이유가 뭐였을까.

너와 헤어진 후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친구가 나에게 했던 질문-그 사람하고 왜 헤어진 거야?-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던 헤어진 이유가 진정 뭐였을까. 


너를 사랑했었나. 그랬다. 정말 순수했고 그저 옆에 네가 있어서 좋았다. 네게 뭘 바라지도 않았고 네가 뭘 해주지 않아도 좋았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하고 사랑을 했다. 그렇게 가장 빛났던 나의 젊은 날을 너와 그렇게 보냈다. 





내가 헤어지자고 했던 그 순간. 난 어쩌면 네가 '왜 헤어져?'라고 물을 거라 생각하고 뭐라 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넌 나와의 시간을 악연으로 만들어 가는 그 시간 동안에도 결코, 단 한 번도 왜 헤어지려 하냐고 묻질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난 네게, 내가 왜 헤어지려 했는지 말을 해 주지 못했다. 

넌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 헤어지자고 내가 말하기 한 달 전부터, 아니 몇 달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내 마음 한편에 너와 헤어지려고 한 마음의 공간이 있었다는 걸. 단지 점점 커져가던 그 헤어짐의 공간이 꽉 차서 더는 나도 그 공간의 문을 닫아둘 수 없었다는 걸.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다 알고 있어서 나에게 그 무엇 하나도 묻지 않은 것일까. 그 정도로 너와 나는 서로를 다 알고 있던 걸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너무 잘 알던 너를, 나는 왜 버렸을까. 그리고 난 왜 다시는 네가 보고 싶지 않은 걸까. 다시 보기가 무서운 걸까. 


사랑했다면 헤어짐의 순간에도 상대의 마음을 존중해줬어야 했던 게 아닐까. 너는 왜 그렇게 질리게도 날 붙잡았을까. 찾아오고 기다리고 연락하고. 그 20대의 나는 점점 네가 무서워졌고. 평생 이렇게 누군가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너에 대한 내 사랑의 감정이 불안과 공포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인연은 악연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더는 널 어찌 말릴 방법도 몰랐고. 한밤중에도 내 방 창문에 돌을 던져 나를 깨우는 너를 보면서 이제는 신고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기 시작했고. 그래 그때는 헤어지자고 한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줘서 다시 나에게 상처를 주는 너의 그 마음을 받아주는 게 마지막 도리라 생각했고. 그리고 헤어짐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 했고. 


아니 그때의 난. 네가 아니어도 아픈 엄마만으로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 때였는데. 그래서 다른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고. 내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고. 늘 그래왔듯이 난 그렇게 꾹꾹 눌러 삼키고 있었는데. 그때부터였을 거야. 너에 대한 내 감정이 불안보다 한심으로 변해갔던 게. 오직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 있는 네가 왜 그렇게 철이 없어 보였는지. 


그래. 너도 나중에 알게 됐었지. 엄마가 아프다는 걸. 내가 너 따위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는 걸. 

계속 나를 찾아오는 너를 보고, 무슨 상황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은 고모가 나서서 너에게 소식을 전해 준 덕분에. 

그제야 넌 좀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어. 네가 나에게 어떤 못할 짓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볼 여력도 없을 정도로 넌 헤어짐이라는 감정에서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그렇게 깨달은 날, 그래서 그날부터 난 너에게서 벗어날 수가 있었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서 집을 이사하고, 핸드폰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네가 연락할 길이 없어졌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상황이 그렇게 변해갔어. 그래서 그렇게 자연스레 넌 잊혀갔고. 


그래도 넌 끈질기게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나에게 알렸지.

온갖 방법으로 다. 

그때까지도 우리 관계가 인연이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 같은 내가, 이건 어쩔 수 없는 악연이 되어버렸다는 걸 받아들이게. 그리고 그게 잊힐 때쯤이면 넌 계속 생각나게 해 줬지.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우연히라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악연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겠지.


이제는 기다리지 마. 불현듯 떠오르지도 마.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데 네가 생각나게 하지도 마. 


우리는 그렇게 인연에서 악연이 됐어.

그뿐이야...




사진 출처: https://ko.photo-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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