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6년의 우등상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었다. 6학년 졸업식에 다른 아이는 '우등상'을 받는데 너만 못 받으면 엄마가 너무 속상할 것 같다고.
그때의 나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한 마디는 내게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우등상.
그렇게 5학년 2학기 한 학기 내내 공부를 했다. 누가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5학년 말, 담임 선생님은 우리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OO이가 성적이 엄청 올랐어요. 6학년 올라가서도 계속 이렇게 공부하면 우등상 받겠어요."라고.
그랬다. 그들의 기대처럼 6학년이 된 난 과학반에 들어가서 학교 대표로 과학 실험을 하러 나가기도 했고 졸업식에서 받을 우등상을 위해서 한 겨울에도 세수로 잠을 깨우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6학년이 끝나며 결국 나는 우등상을 거머쥐고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생각보다 그저 그랬다. 잘했다는 칭찬보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좋은 성적에 대한 보상이라는 부분이 말로도 선물로도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항상 전교 1등을 하던 여동생과 비교하면 나의 우등상은 너무도 당연한 거였을지도.
그런데 엄마는 내 앞에서와 달리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꽤나 많은 자랑은 했었나 보다. 본의 아니게 나와 동갑이었던 여자 사촌은 갑자기 내가 받은 우등상으로 졸지에 우등상도 못 받은 사람이 되어 버렸고 이모부에게 엄청난 구박을 들었었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후 여자 사촌이 나에게 분노의 말을 토해내며 했던 "너로 인해 내가 아빠에게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알아?"라는 말.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잃어버렸고 지금은 어딘가에 쳐박혀있을 아무 의미도 없는 그 상장.
그런 내가 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보고 배운 대로 나 또한 교육에 엄청나게 열성적이었다. 적어도 이 나라의 중학교 입학 시험(PSLE) 때까지.PSLE 점수를 받고는 한동안 멘붕이었다. 내가 정해놓은 마지노선에 미치지 못하는 점수였다. 그때의 나는 아이의 노력이나 아픔 따위는 보지 못했다. 그저 그동안의 나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막상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 생활에 만족을 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수 몇 점 더 받고 순위 높은 중학교에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나와 성향이 너무도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지켜보기로 마음을 바꾼 후부터는 나도 아이도 안정적이고 편해지기 시작했다. 사춘기 시절의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우리는 아이의 사춘기 때부터 점점 친구가 되어갔다.
결국 변화의 시작은 아이가 아닌, 엄마의 마음이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