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프로덕트를 기획하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루 종일 사용자 흐름을 분석하고, 개발부서와 함께 UX를 설계하며, KPI를 설정하고, 팀원들과 매일의 성과를 점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 진행 상황을 검토하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항상 고객을 ‘1인’ 단위로만 바라보며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상정하는 유저는 언제나 ‘ㅇㅇ님’ 한 명이다. 접속 시간, 유입 경로, 클릭한 화면, 결제 내역 등 모든 데이터는 철저하게 개인을 기준으로 측정되고 해석된다. ‘가족’도, ‘그룹’도 아닌, 오직 한 사람이다.
놀랍게도 그동안 나는 그것을 단 한 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고객 한 사람의 니즈와 반응, 이탈 시점에 집중하며 서비스를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것이 당연했고, 그것이 업계의 표준이자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플랫폼은 철저히 1인의 삶을 중심으로 기획된다. 그의 필요를 예측하고, 그의 시간을 붙잡으며, 그의 머무름을 늘리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일이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한 사람의 개인’을 중심으로 사회 구조 자체가 완전히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과 제도는 여전히 4인 가구나 부부 중심으로 설계된다. 공공임대주택의 입주 기준은 ‘무주택 세대주’와 ‘가구원 수’를 기준으로 삼고, 건강보험료와 복지 수급 자격 역시 가족 단위로 계산된다. 출산장려금과 양육수당도 ‘부부와 자녀’라는 전제를 기본값으로 깔고 있다. 정부가 상정하는 ‘시민’은 지금도 가족 구성원의 일부로 존재한다.
반면, 플랫폼이 기획하는 서비스는 철저히 ‘개별 사용자’, 즉 1인 단위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배달앱은 ‘1인분’ 메뉴가 기본이고, 넷플릭스는 ‘1계정 1취향’ 알고리즘으로 사용자 경험을 정밀하게 최적화한다. 보험은 ‘가족보장형’보다 ‘개인 단기보장형’이 주류가 되었고, 쇼핑몰, 렌탈 가전, 통신요금제까지 대부분이 혼자 쓰기 편한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정수기, 소파, 냄비, 침대는 물론 식사와 숙박까지, 1인용 제품과 서비스는 이미 시장의 중심이다.
정부 정책은 여전히 가족을 전제로 하지만, 시장과 기술은 1인을 새로운 사회의 표준 단위로 상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하루를 보내며 정부 정책보다 훨씬 더 자주, 더 깊게 플랫폼의 서비스를 마주한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보다 플랫폼이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 가족 중심의 질서는 점차 해체되고, 1인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가 점점 더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혼자 사는 데에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며 필요한 건 대부분 온라인으로 손쉽게 해결한다. 식사는 배달앱으로, 장보기는 새벽배송으로, 여가는 넷플릭스·유튜브·게임으로 채워진다. 은행 업무는 모바일뱅킹으로, 건강 관리는 스마트워치와 헬스케어 앱으로 충분하다. 요즘은 청소, 세탁, 중고거래, 반려동물 돌봄까지, 일상 대부분이 앱 하나로 처리되는 시대다.
플랫폼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1인 가구를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정교하게 고도화하고 있다. ‘혼밥 도시락’, ‘1인용 반찬’, ‘소형 냉장고’, ‘1인 전용 보험’은 물론, 월세형 가전 렌탈, 오피스텔 전용 가구 브랜드까지,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생태계는 이미 촘촘하게 구축되어 있다. 말 그대로, 1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플랫폼이 제공하는 시대다.
흐름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은 전체의 약 35.5%에 이른다. 2015년 27.2%에서 꾸준히 증가해왔고, 서울·수도권 청년층의 과반은 이미 1인 가구다. 2030년에는 1인 가구 비중이 4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인 가구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이미 사회가 기본 단위로 채택한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문득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 세계. 영화 속 인간은 개별 캡슐, 일명 ‘인공 자궁’에 갇혀 살아간다. 뇌는 매트릭스라는 시뮬레이션에 접속된 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공지능은 그들에게 가짜 현실을 제공하며 육체로부터 전기 에너지를 추출한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모두가 ‘1인 1실’에 고립되어 있으며, 현실은 오직 환상 속에만 존재한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 안에서 행복하다. 사랑하고, 일하고, 고통받고, 기쁨을 느낀다. 그 감정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외롭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네오처럼 현실을 의심하고 탈출을 시도하는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자신이 매트릭스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어릴 때는 이 장면이 기괴하고 이상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 매트릭스가 작동하는 방식이 오늘날 IT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과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는 점이다. 매트릭스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고립시킨 채 가상의 현실을 제공하고, 그 육체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했다. 오늘날의 플랫폼은 인간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킨 채, 디지털 세계를 통해 시간, 관심, 돈, 데이터를 수확한다. 수익의 대상이 육체가 아니라 의식과 소비다.
매트릭스가 ‘1인 1실’을 기준으로 인간을 배치했듯, 플랫폼은 ‘1인 1계정’을 기반으로 사용자를 정밀 분석하고 서비스를 설계한다. 감정 곡선을 따라 콘텐츠를 배열하고, 취향에 맞는 광고를 띄우며,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반응을 예측하고 유도한다. 플랫폼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용자의 주의력과 감정 상태를 조율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필요를 느끼기도 전에 먼저 예측해서 제안하고, 그 제안은 곧 행동과 구매로 이어진다.
그 대가로 플랫폼은 고객의 시간, 돈, 데이터, 몰입도를 확보한다. 그렇게 축적된 정보는 플랫폼의 정교함을 더욱 높이고, 사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다시 쓰인다. 네오처럼 ‘현타’를 느끼고 이탈하려는 사용자도 생긴다. 그러나 플랫폼은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탈의 원인을 분석해 새로운 프로덕트 기획의 단서로 삼는다. 사용자의 불만조차, 비즈니스에선 하나의 기회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라면 하나뿐이다. 매트릭스는 인공지능이 만들었지만, 오늘의 시스템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강화하고 있는 현실판 매트릭스라는 점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도움도 받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 같은 관계는 정말 인간에게 꼭 필요한 ‘필수재’일까? 플랫폼은 혼자 살아가는 삶이 불편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솔루션을 개발해 왔고, 그 기술은 해마다 정교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혼자 사는 걸 이상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오히려 "왜 그래야 하지?"라고 되묻는다.
우리는 아직까지 ‘가족’이라는 단어를 친근하게 사용하는 세대다. 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라는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다고 배워왔고, 그 틀 안에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지금 태어나는 세대에게도 그것이 여전히 당연한 삶일까?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1인 중심의 기술과 시장 안에서 자란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물건을 사고, 혼자 일하고, 혼자 즐기는 삶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혼자’가 곧 기본값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이라는 개념 역시 문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제도였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1인 중심의 사회가 그리 낯선 상상도 아니다. 너무 오래되어 자연 고유의 질서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가족’의 모습과 개념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관계를 직접 경험한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태어날 이들은 가족을 교과서나 콘텐츠에서 배우고, 남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오히려 낯설어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슬퍼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인류 진화의 한 과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좋든 싫든, 세상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그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