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와 진화론

by 아인도

뒤늦게 영화 <위키드>를 보았다. 이미 뮤지컬로 두 번이나 관람했지만, 영화가 선사하는 연출과 사운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을 안겨주었다. 같은 스토리라도 이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다. 좁은 무대와 빈약한 연극 장치,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이라는 뮤지컬의 제약에서 벗어나, 할리우드의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을 총동원해 구현한 오즈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감독의 상상력과 연출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위키드>에 열광하는 걸까? 단순히 ‘악당의 재해석’이라는 말로는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메시지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한 존재가 어떻게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지 그린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 억압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한 번쯤, ‘남들과 달라지고 싶지만, 막상 달라졌을 때 마주할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두려워 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위키드>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초록색 피부라는 ‘표식’을 통해 사회가 얼마나 쉽게 차별과 낙인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다름이,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영화 후반부, 엘파바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Defying Gravity’를 열창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없이 상징적이다. 순응 대신 비상을 택한 그녀는, 남들과 다름을 스스로의 힘으로 전환하며 돌연변이의 진화적 승리를 선언한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소녀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는다. 그녀는 주위 이웃들과 친구들이 퍼붓는 조롱과 따돌림을 감내해야 했고, 사람들은 그녀의 생각이나 내면보다 겉으로 보이는 피부색을 보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타인과 교류하길 원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했지만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믿었던 스승은 그녀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 글린다조차 ‘정상’의 세계에 머물며 결정적인 순간 거리를 둔다. 세상은 엘파바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녀는 점점 홀로 고립되어 간다.


그러다 영화의 후반부, 엘파바는 마침내 자신의 방식으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타인의 시선과 강요된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의 힘과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그 순간은 회피가 아닌 선언, 항복이 아닌 비상이다. 이 장면은 흔해 빠진 판타지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스스로의 권위로 전복시키는 전환점이며, 숨겨야 할 상처로 여겨졌던 다름을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능력으로 재정의하는 역전의 순간이다. 엘파바는 세상이 규정한 ‘비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며, 우리가 외면했던 존재들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그녀는 기존 개체보다 변화된 환경에서 더 뛰어나게 적응하고 있는 우월한 돌연변이다.



진화의 시작점, 돌연변이


생명체가 진화해온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출발점에는 늘 ‘돌연변이’가 있었다. 현대 진화생물학은 돌연변이를 유전적 다양성의 원천이자,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재료로 본다. 돌연변이는 마치 책을 복사하다 생긴 오자와 같다. 드물지만 유전자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그 어딘가에는 오류가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생겨난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무의미하거나 열등하다. 하지만 특정한 환경 변화 속에서 극소수의 돌연변이가 놀라운 생존력과 적응력을 보인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복제 과정의 오류는 복제되는 유전자에게 명백히 불리하다. 그러나 만약 이 오류가 그것을 일으킨 이기적 돌연변이 유발 유전자에게 이로운 것이라면, 그 돌연변이 유발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 퍼질 수 있다.


즉, 진화는 안정과 정교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연과 실패, 예외성과 혼돈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움튼다. 만약 모든 유전자가 부모를 완벽하게 똑같이 복제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생각과 행동이 천편일률적인 생명체만을 번식시킬 것이다.


이 원리는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이한 사상, 비표준적 행동 양식을 지닌 개인, 체제 바깥의 존재들, 작은 일탈과 예외성들이야말로 급변하는 환경으로 인한 위기 속에서 전체 시스템을 구하는 열쇠가 된다. 엘파바는 그런 예외적 존재의 상징이다. 사회가 그녀를 거부할수록, 사회 전체 시스템의 진화와 생존, 그리고 발전 가능성은 오히려 더 작아질 뿐이다.



돌연변이 전성 시대


오늘날의 역동적인 사회는 더 이상 돌연변이를 거부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혁신과 부의 창출을 위한 원천으로 환영한다. 테크 산업, 예술, 문화,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존 질서를 깨뜨리고 경계를 넘나드는 비정형적 인물들이 주목받는다. 엘론 머스크, 레이디 가가 같은 인물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처음에는 외면당하거나 조롱받지만, 결국 새로운 흐름의 중심이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기발함이 아니다. 그들은 기존 규범의 바깥에서 사고하며, 경계 자체를 새롭게 정의한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라 감성적 경험의 매체로 재해석했고, 이를 통해 UX(사용자 경험)라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설계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기존 공학의 틀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깨려는 시선과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엘론 머스크는 한 발 더 나아가 ‘민간 우주 탐사’, ‘전기차 자율주행’,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라는 황당하게 여겨졌던 주제들을 실제 산업으로 구현했다. 그는 전통적인 시장 조사보다 직관과 과학적 상상력, 도발적 실행력에 의존했고, 그 결과는 테슬라, 스페이스X, 뉴럴링크 같은 실험적 기업들로 이어졌다. 이들은 단지 일개 회사가 아닌 돌연변이적 상상력이 작동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의 진원지다.


<위키드>가 감동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엘파바는 저주 받은 문제아라는 낙인을 벗어던지고, 세상에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가로 재탄생한다. 그녀가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거대한 변화와 파괴적 혁신은 언제나 체제 바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돌연변이와 관종의 경계


하지만 모든 돌연변이가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질서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돌연성이 아닌 관종적 과잉으로 간주된다. 사회에 기여하는 진짜 돌연변이와 단지 주목을 위해 일탈하는 이들 사이의 경계는 종종 흐릿하고, 특히 미디어 환경에서는 그 경계가 더 쉽게 무너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튜버 로건 폴의 ‘일본 자살의 숲 영상’ 사건이다. 그는 실제 시신을 촬영한 영상을 업로드하며 ‘경계를 넘는 창작자’를 자처했지만, 돌아온 것은 전 세계적인 비난과 플랫폼 제재였다. 타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자극적 콘텐츠는 더 이상 ‘다름’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는 벨 델핀이다. 기괴하고 선정적인 콘텐츠로 빠르게 큰 인기를 끌었지만, 플랫폼 정책 위반으로 계정이 정지됐다. 일부 팬들에겐 ‘혁신’처럼 보였겠지만, 그 행위는 사회적 책임의식과 윤리적 감수성이 결여된 파격이었다. 다름과 파격 사이에는 언제나 질서와 공감에 대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진짜 돌연변이는 세상을 바꾼다. 반면, 관심만을 위한 과잉 퍼포먼스는 소음만을 남긴다. 진정한 다양성을 포용하려면, 그 안에서도 공공성과 맥락, 그리고 책임감에 대한 감수성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다양성을 포용하면서도 잘 조율된 사회


어떤 사회가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선, 돌연변이 같은 존재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자연의 오래된 원리이자, 변화의 촉매이다. 그러나 아무런 제한 없는 탈규범은 공동체의 안정과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돌연변이와 사회 사이의 건강한 긴장이며, 그 균형을 조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감수성이다.


다름을 포용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포용은, 타인의 감정과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주체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힘에 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사회는 엘파바처럼 ‘초록색’을 지닌 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하늘을 마련해야 한다. 그 하늘은,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기준에 따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순간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더 유연하고 강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새로운 진화의 방향을 함께 상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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