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제도와 시리즈 투자

by 아인도

최근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이 기쁨은 카드 결제 내역과 함께 조금씩 옅어진다. 식장 계약금, 스드메, 프로포즈, 예물, 전세 대출, 가전 가구, 신혼여행, 심지어 웨딩 스냅과 영상까지. 끝없는 결제와 비용 지출에 월급쟁이는 손이 떨릴 지경이다. 무엇 하나 결정할 때마다 ‘이게 정말 꼭 필요한건지’ 의문이 든다. 결혼이 두 사람 간 사랑의 약속이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돈으로 증명해보이는 테스트의 장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예물은 사랑의 상징이라기보다 사실상 일종의 리스크를 헷지하는 보험이고, 친구와 지인에게 기쁜 마음으로 전달해야 할 청첩장은 채무자에게 발송하는 독촉장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 모든 게 문화라는 이름 아래 이어져 온 관습이겠지만, 한 가지 질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왜 결혼은 반드시 이렇게 한 번에, 한꺼번에, 모든 걸 '완성'해야 하는 걸까?



고비용, 고위험, 저효율의 결혼 시장


대한민국에서 결혼은 단순한 사회적 제도가 아니라 일종의 거대한 프로젝트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 비용은 3억 원을 넘어섰다. 이 중 주택 마련 비용이 약 2억 4천만 원, 결혼식과 혼수 준비에만 5천만 원 이상이 든다. 결혼식 하루를 위해 천만 원 이상이 들고, 1시간짜리 예식에 200명 가까운 하객이 몰린다. 비용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일까. 결혼은 이제, 부모의 도움 없이 청춘 남녀 두 사람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벅찬 과제가 되었다. 젊은 세대의 소득만으로는 결혼을 완주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의 재정 지원이 사실상 결혼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 이는 곧 결혼 가능성마저 가정 배경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를 낳는다. 부유한 집안의 자녀는 여유롭게 결혼하고, 그렇지 못한 청년은 사랑이 있어도 시작조차 어렵다. 사랑의 문제가 아닌 계층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부모의 지원과 심지어 빚까지 동원해 진행한 결혼조차도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문제다. 2024년 대한민국의 이혼 건수는 약 9만 1천 건으로, 혼인 건수 약 22만 2천 대비 이혼 비율은 약 41%에 이른다. 그 중 상당수(약 1만 5천 건)는 혼인지속기간 4년 내 이혼하며, 이는 결혼 초기에 집중된 경제적 부담과 결혼 후 정서적 불일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즉, 현재 한국의 결혼 구조는 ‘고비용’일 뿐만 아니라 ‘고위험’이다. 이 정도의 비용을 들였다면 최소한 안정성이나 예측 가능성이라도 담보되어야 하지만, 이혼이라는 리스크는 매우 큰 상황이다. 경제적 투입 대비 정서적, 사회적, 제도적 수익률이 낮은 이 상황은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매우 저효율적인 구조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차라리 ‘결혼하지 않음’이라는 선택을 합리적인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창업은 왜 쉬워졌는가


같은 시기, 다른 분야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관찰된다. 바로 스타트업 창업이다. 10년 전만 해도 창업은 자본금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의 목돈이 필요했고, 오피스 임대와 인력 채용이 필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업자 등록은 온라인으로 10분 만에 끝나고, 클라우드 인프라와 오픈소스 툴, 정부 지원사업 덕분에 초기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 창업하는 시대가 열렸다.


핵심은 ‘시리즈 투자’라는 개념이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먼저 시드 투자를 받고,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면 시리즈 A, 시장 반응이 나타나면 시리즈 B... 이렇게 단계별로 자금을 유치하고, 그때마다 기업의 형태와 인프라를 확장한다. 성숙한 기업이 되기까지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붓지 않는다. 오히려 점진적이고 탄력적으로 발전하면서 리스크를 낮춘다.



놀랍게도, 이처럼 단계적으로 성장한 기업이 시장에선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 실패했을 때의 손실이 크지 않고, 고객 반응을 보며 방향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엔 작지만 유연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작'이 부담스럽지 않다.



결혼도 단계별로 할 수 있다면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결혼도 창업처럼 단계별로 할 수는 없을까? 왜 결혼은 프로포즈, 결혼식, 신혼여행, 집 마련까지 한 번에 완성해야만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가? 왜 우리는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결혼 완성형 패키지’를 준비해야만 하는가?


상상해보자. 시리즈 A: 서로의 결혼 의사를 확인하고 프로포즈를 진행. 시리즈 B: 가족만 모여 작은 규모의 약혼식 혹은 혼인신고. 시리즈 C: 몇 년 후, 여유가 될 때 식장에서 결혼식 진행. 시리즈 D: 이후 자가 주택 구입 또는 공동자산 투자. 중간중간 정부가 시리즈 단계별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일정 기간마다 지원금을 주고, 공동자산 형성을 위한 장기저축 제도를 연계하는 식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시리즈 B 단계 혼인신고 시에는 월세 지원금, 시리즈 C 단계 결혼식 진행 시에는 소득공제와 같은 실질적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


이런 구조라면 결혼이 더 이상 ‘올인 게임’이 아니라 ‘장기적 프로젝트’가 된다. 결혼은 짧은 기간에 갑자기 확정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설계되는 것이 되고, 신혼부부는 초기 단계에서 ‘사회적 증명’을 강요받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삶을 구축할 수 있다. 사랑이 부담으로 전환되는 현재의 구조를 피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올인 아닌 단계적 결합으로


물론 결혼은 창업과 다르다. 거기엔 감정과 문화, 가정과 혈연이라는 깊은 정서의 뿌리가 있다. '결혼을 쪼갠다'는 발상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의 결혼 시스템은 너무 비싸고,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랑이 한 번에 완성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는가이다. 시리즈 투자처럼 천천히, 단계적으로, 각자의 리듬에 따라 완성되는 결혼은 더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사랑에 진심이지만 현실에 부딪혀 막막함을 느끼는 많은 청년들에게, 시리즈 투자를 통한 단계적 결혼이라는 상상은 그저 농담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일지도 모른다. 무게에 짖눌리지 않고 가볍게, 일단 시작한 이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점진적으로 부담을 나누며 성장하는 구조가 더 바람직한 방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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