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사모펀드’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시점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MBK 파트너스의 홈플러스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논란은, 사모펀드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기업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전까지의 재벌 중심 자본은 눈에 보이는 존재, 가문의 얼굴, 창업주의 철학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어디선가 불현듯 나타나 회사를 인수하고, 시민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한 후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MBK 외에도 IMM의 에코비트 인수, VIG의 프리드라이프 매각, 한앤컴퍼니의 다양한 M&A 등 여러 사모펀드의 행적들이 연달아 언론을 장식했다. 하나같이 특징적인 점은 ‘빠른 속도’와 ‘효율 중심’의 가치 판단이었다. 이들은 생산과 유통, 마케팅과 재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히 파악하고, 비효율을 제거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직원이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익숙한 풍경들이 마치 낯선 침입자에 의해 재편되는 경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모펀드는 이제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어떤 권력이 옳은가’를 묻는 거대한 질문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변화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사모펀드와 재벌이라는 두 자본의 근본적인 구조를 ‘문화적 기원’으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벌은 ‘뿌리내림’의 은유에 잘 어울리는 존재다. 오랜 세월 특정 지역과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재벌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 축이었다. 창업주가 꿈꾸던 기업가 정신은 때로는 종교처럼 추앙받았고, 기업은 한 가문이 대를 이어 세습하는 논리 속에서 움직였다. 토지 기반의 농경문화가 그러하듯, 재벌은 자신의 땅을 키우고, 가꾸고,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인내와 통제를 중시했다. 조직 문화는 장기근속과 내부 승진, 정(情)의 공동체에 기반했고, 그 중심엔 늘 창업주 혹은 후계자가 있었다.
반면, 사모펀드는 전혀 다른 DNA를 가졌다. 이들은 토지를 경작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든 빠르게 이동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수확이 끝나면 떠난다. 투자 대상 기업을 분석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한 뒤, 기업 가치를 높여 매각함으로써 수익을 얻는다. 재벌이 “경영자”라면, 사모펀드는 “기획자” 혹은 "프로젝트 매니저"다. 철학보다 숫자가, 이상보다 IRR이 더 중요하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부서는 해체되고, 정서적 관계는 제거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유목’의 방식이 단순히 기민하고 가볍다는 점이 아니라, 철저하게 글로벌 자본의 논리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정착국가를 압도하며 세계를 재편했듯, 오늘날 사모펀드는 정착 기반의 전통 재벌기업들을 해체하며 자본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이들의 이동성과 분석력, 그리고 권력의 비가시성은 오히려 농경적 조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헤게모니를 가능케 한다.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 농경적 질서를 중심으로 굴러왔다. 가족 중심의 기업문화, 연공서열, 장기고용, 충성심 등은 ‘정(情)’의 언어로 정당화되어 왔다. 재벌기업은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선 ‘사회의 일부’였으며, 때로는 준정치적 존재로 기능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직장을 ‘집’처럼 여기고, 오너 일가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했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지만, 동시에 예측 가능한 질서였다.
그런데 사모펀드의 등장은 이 질서를 뒤흔든다. 이들은 “기업은 가족”이라는 개념을 부정하고, 경영자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관리자로, 직원은 자산 가치 상승의 수단으로 여긴다. 농경의 리듬은 시간 축 위에 놓이지만, 유목의 전략은 순간과 기회에 기반한다. 기업이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얼마에 사고 팔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소유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익숙하게 느끼는 뿌리 깊은 가치체계 전체가 도전받고 있다는 신호다.
사회적 혼란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소비자는 ‘국민기업’이던 브랜드가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리는 것을 보고 당혹감을 느끼고, 직원들은 “사람 냄새 나던 회사가 어느새 차가운 조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이 변화에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에 놓인 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멘붕 상태에 빠진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재벌기업을 비판해왔다. 정경유착, 편법승계,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은 사회적 분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종종 정서적이고 감정적이었으며, 근본적인 ‘자본의 구조’ 자체를 질문하지는 않았다. 그 빈틈을 사모펀드가 비집고 들어왔다. 더 투명하고, 더 빠르고, 더 스마트한 자본이 기존의 무거운 자본을 밀어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혐오하던 자본주의의 '지주' 대신에 더 효율적인 '기획자'가 들어선 셈이다.
사모펀드는 정교한 만큼, 비가시적이다. 이들은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고 홈페이지에도 자세한 정보를 남기지 않는다. 의사결정은 폐쇄적이고, 투자 철회도 단숨에 이루어진다. “사람을 키우는 기업”이란 말은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사모펀드는 사람보다 수익률을 보고, 관계보다 계약을 신뢰하며, 미래보다 엑시트 전략을 설계한다. 그들은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지배한다.
결국 이 새로운 지배자는, 재벌보다 더 냉정하며 더 유능하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더 빠르게 움직이며, 장애물 앞에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진화형처럼 보인다. 재벌이 창업정신과 감정을 무기로 종업원을 복종시키는 귀족이라면, 사모펀드는 데이터와 분석을 무기로 무자비하게 기업을 재편하는 전사다. 그 전사가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헤게모니를 점령해가고 있다.
13세기, 몽골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유라시아 전역을 지배했다. 칭기즈 칸의 군대는 농경 국가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모든 땅을 “유목화”했다. 오늘날의 사모펀드는 그 몽골의 후예처럼 보인다. 이들은 고정된 질서를 경멸하며, 소유가 아니라 지배를 추구하고, 감정이 아니라 분석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과거의 지주를 미워했지만, 그들은 그래도 눈에 보이는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목 자본은 얼굴도 없고 국적도 없다. 그들의 본부는 뉴욕일 수도 있고 싱가포르일 수도 있으며, 의사결정은 데이터와 회의실 속 엑셀 파일로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지배는 한 국가나 산업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된다.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강력한 존재가 (미국이나 중국 같은) ‘국가’가 아니라 ‘사모펀드’일 수 있다면, 지금 우리는 그 유목 제국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고려시대 몽골 제국에 결사항쟁하다 결국 복종하고 부마국으로서 지배를 받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몽골 제국 앞에서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