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전셋집 계약을 위해 부동산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앳된 얼굴의 집주인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계약서에 적힌 주민등록번호를 보니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다. 집 시세가 최소 12억은 넘는데, 대출 한 푼 없이 본인 단독 명의로 등기되어 있었다.
나는 배우자와 함께 그동안 모은 돈에 은행 대출까지 끌어모아 겨우 전세금을 마련한 무주택자인데, 내 앞에 앉아 도장을 찍고 있는 이 동생은 서울 아파트의 소유주이자 임대인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랜만에 현실이라는 벽과 정면으로 부딪힌 날이었다.
살다 보면 문득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타인의 시선이나 간섭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가치와 속도를 지키며 살고자 해도 우리는 결국 사회라는 거대한 경기장 위에서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며 ‘내 위치’를 가늠하게 된다. 가령 대학 입시와 취업이 그렇다.
수능 점수를 받고, ‘좋은 학교’ 순으로 나열된 배치표를 보며 원서를 쓰던 날, 현실의 벽과 꽝 부딪히는 기분을 느꼈다. 전국 또래들 속에서 나의 위치가 숫자와 등급으로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 외면하고 싶었던 사회의 구조와 서열이 체감되었다. 그때는 그저 좀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취업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선망하는 기업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내가 떨어진 자리에 친구나 후배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씁쓸했다. 학과 선택을 잘못한 걸까, 자격증을 좀 따놨어야 했나, 면접 준비를 소홀히 한 걸까. 그때도 역시, 부족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절망감을 견뎠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경기장에 들어섰다. 이번엔 부동산이다. 겉보기엔 나와 비슷한 또래 청년이 내 앞에 집주인으로 앉아 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간극이 있다. 몇 년, 아니 몇십 년을 노력해도 좁히기 힘든 격차. 그런데 이번엔, 도무지 나 자신을 탓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성실하게 살아왔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고, 인정 받아 승진했고,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있다.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꾸준히 저축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자리에선 한참 뒤처져 있다. 무엇을 더 했어야 했던 걸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순자산 지니계수는 0.612로 전년 대비 0.007포인트 상승했다. 이 수치는 2017년 이후 지속적인 오름세를 보이고 있으며, 계층 간 자산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데, 현재 한국은 OECD 평균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특히 심각한 건 청년 세대의 자산 격차다. 2022년 김회재 국회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청년층 상위 20%와 하위 20%의 자산 격차는 무려 35배에 달한다. 그는 “단순한 소득 격차로는 이런 극단적인 자산 격차를 설명하기 어렵다”며 “삶의 출발선부터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안고 시작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청년 자산 형성의 결정적 변수는 이른바 ‘부모 찬스’다. 같은 또래라도 어떤 집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자산 형성의 속도와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부모의 지원을 받아 주택을 매입하는 이들과, 전세 자금을 위해 대출을 끌어모아야 하는 이들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입시나 취업은 그래도 일정 부분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산 형성은 그렇지 않다. 출발선이 이렇게까지 차이 나는 상황에 ‘네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격차가 적당히 벌어졌다면 달려볼 용기라도 생긴다. 하지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벌어진 출발선 앞에서는, 시작도 전에 기운이 빠진다.
더 큰 문제는, 이 격차가 내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나는 대학도 졸업하고 제법 괜찮은 직장을 다니며 전셋집이라도 마련했다. 무주택이라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지금까지 성취한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지낼 수 있다. 그런데 내 자녀는? 아이가 자라 학교에 입학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 내 앞에 앉아 있던 어린 집주인의 자녀와 얼마나 더 격차가 벌어져 있을까.
장하성 교수는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불평등이 세대 간 이동성을 줄이고, 그로 인해 부모 세대는 더 이상 노력할 의욕을 갖기 어렵다고 말한다. 자녀의 상향 이동 가능성이 사라질수록, 부모 세대는 자식의 미래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죄책감을 안게 된다.
불평등이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 중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불평등이 '세대 간 이동성'을 줄인다는 것이다. 세대 간 이동성이란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와 다른 경제적 계층으로 이동하는 것이며, 특히 부모보다 자식이 더 가난한 계층이 되는 하향 이동성이 문제가 된다. 불평등한 구조에서 빈곤층일지라도 자식 세대가 자신보다 더 높은 소득 계층으로 이동하는 상향 이동의 가능성이 높으면 부모 세대들은 불평등한 현재의 상황을 감수한다.
나는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현재 누리고 있는 삶에 대체로 만족한다. 하지만 내 자녀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일개 직장인일 뿐이고,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내 아이는 어린 집주인의 자녀보다 훨씬 뒤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에 좌절한 아이가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그때 나는 과연 어떤 말로 그를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어린 집주인이 부모 찬스를 쓴 게 아닐 수도 있다. 공무원이라니까 단순히 소득을 모아 집을 구매했을 확률은 낮고, 재테크를 어마무시하게 잘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걸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부 청년은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상당한 자산을 획득하기도 한다. 코인, 갭 투자, 영끌 등 위험을 감수하며 큰 수익을 얻은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대다수에게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 '한 방'을 노리다, 막대한 빚을 떠안고 무너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녀에게 유리한 '위치'를 물려줄 수 없는 상태에서, 자녀가 막대한 리스크를 떠안고 또래와의 격차를 뛰어넘기 위한 외줄타기에 나서겠다고 할 때 부모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그렇다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떻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내 처지를 상상하니 마음이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