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과 지방 소외

by 아인도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할 때, 보통 서울과 수도권은 종로, 여의도, 강남처럼 권역별 특성을 세분화해 다룬다. 반면 수도권 밖 지방은 대개 ‘그 외 지역’으로 뭉뚱그려진다. 타깃 고객을 설정할 때도 ‘판교에 거주하는 활동적인 취미를 가진 20대 여성’처럼 수도권 거주를 전제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획자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접근이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용자상이기도 하고, 실제로 플랫폼을 가장 많이, 또 활발히 사용하는 층이 수도권 거주자들이기 때문이다.


지방 출신인 나로서는 종종 놀라운 게, 서울에서 나고 자란 기획자들이 신사와 선릉의 차이는 디테일하게 구분하면서, 대전과 대구를 비슷한 도시로 여기거나 위치조차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그 중 유학파들은 한국 지방 도시는 낯설어하면서도 샌프란시스코나 도쿄 이야기가 나오면 생생하게 썰을 풀곤 한다. 그들에게 지방 도시는 마치 인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공간인가 싶다. 그러니 서울과 수도권을 기준으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고도화하는 일이,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누가 데이터를 해석하는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본질적으로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기준으로, 누구에 의해 해석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특정 기준에 따라 중요하다고 판단된 데이터는 위로 올라가고, 그렇지 않다고 여겨진 데이터는 무시되거나 삭제된다.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권한을 가진 집단'이 어떤 방식으로 편향성을 지니고 인위적 질서를 만들어내는지 관료제를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관료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대신, 세상에 새로운 인위적 질서를 도입하는 데 몰두한다. 관료들은 먼저 다양한 서랍을 만들어내는데, 이 서랍들은 현실 세계의 어떤 객관적인 분류 기준에도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상호주관적 현실이다. 따라서 관료들은 세상을 이 서랍들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잘 맞지 않으면 더 세게 구겨 넣는다.


예전에는 정부와 관료제가 이런 식의 세계관을 설계하고, 국민을 해당 틀에 맞춰 분류했다면, 지금은 플랫폼이 일상 생활에서 그 역할을 대신한다. 플랫폼은 사용자의 행동, 검색 기록, 결제 내역, 채팅, 업로드한 글과 사진까지도 수집해 특정 기준으로 데이터를 분류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차별화된 상품이나 혜택, 서비스를 기획한다.


이렇게 해석되고 분류된 데이터는 더 이상 객관적이지 않다. 데이터의 중요도와 의미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데이터 해석자가 특정 지역, 특정 계층, 특정 라이프스타일에 친숙하다면, 그와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다. 그렇게 주변부로 밀려난 데이터는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결국 서비스에서도 소외된다. 그 결과, 플랫폼은 ‘중요한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특정 집단에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 구조는 반복될수록 더욱 강화된다.



플랫폼이 만드는 지역 불균형 구조


한국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플랫폼은 철저히 수도권 중심이다. 본사는 서울 혹은 인접 지역에 위치해 있고, 플랫폼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한다. 그러니 서비스와 콘텐츠가 수도권을 기준으로 설계되는 건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스토리의 본사는 성남에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기획자와 개발자들 역시 서울이나 수도권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일까. 브런치스토리가 작가들을 위해 매년 기획하는 대표적인 오프라인 행사인 ‘브런치북 출판 전시회’는 2022년 광화문 교보문고, 2023년 잠실 아크앤북, 2024년 성수 토로토로에서 진행되었다. 분명 브런치 작가들 중에는 지방 거주자도 적지 않을 텐데, 전시는 매번 서울에서만 열렸다.



이런 선택은 행사 기획자나 서울 거주 관람객 모두에게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서울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도시이자, 가장 힙하고 창의적인 콘텐츠가 집중되는 공간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결과적으로 서울 인근 거주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더 자주 새로운 감각과 문화적 자극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반면 지방 거주자에게는 그런 기회가 줄어들고, 점점 더 중심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평소 관심이 없던 사람도 자신의 동네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면 발길이 가기 마련이다. 반면 플랫폼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지방 사용자들은, 매번 행사가 서울에서만 열린다는 사실에 점점 의욕을 잃을 지도 모른다.


물론 브런치가 언젠가 지방에서도 전시회를 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해답이라기보다, 하나의 배려 혹은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진짜 문제는, 플랫폼이 수도권 중심의 가치 체계와 데이터 분류 구조를 더욱 공고히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지방은 경제와 문화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수도권에 종속된 주변부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방 고유의 플랫폼이 없다


최근 지방 소멸 이슈가 부각되면서, 공공기관 이전이나 지역 대학 활성화 같은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물론 의미 있는 시도다. 하지만 지금처럼 플랫폼이 일상의 구심점이 된 시대에, 보다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지방 고유의 플랫폼’이 없다는 점이다.


대전의 '성심당'이나 전주의 ‘현대옥’처럼, 지방에서 시작된 브랜드가 입소문을 타고 수도권에 진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브랜드나 제품 수준에 머물 뿐이다. 지방에서 기획되고 성장해 전국적 영향력을 가진 플랫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대표 플랫폼은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서 시작됐다.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카카오, 쿠팡, 토스 등 우리가 매일 쓰는 주요 서비스들은 수도권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에서 기획되었고, 수도권의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해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 플랫폼들이 지방을 장악하며 확장이 이루어졌다.


지방에는 고유한 산업, 환경,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기준으로 설계된 영향력 있는 플랫폼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 기준의 서비스, 사용성, 디자인에 지방 사용자들이 맞춰야 한다. 서울의 기후와 지형에 맞춰 디자인 된 옷을, 계절과 환경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똑같이 입어야 하는 셈이다. 옷이 맞지 않다고 입지 않으면 '뒤처진 사람'이 되기에, 서울에서 유행하는 패션을 따라가기만 하는 영원한 팔로워로 남게 된다.



지방의 데이터 주권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소버린 AI’만 보더라도, 이제는 데이터를 단순히 수집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느냐가 공동체의 주권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글맵을 견제하며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이 유저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같은 데이터를 다르게 해석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구글맵이 한식을 ‘기타 음식’으로 뭉뚱그리는 반면, 카카오맵은 된장찌개와 육개장을 각기 다른 메뉴로 분류할 수 있다. 동일한 데이터라도 어떤 플랫폼 위에 올려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지방이 자립하려면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해석하고 기준을 설정하는 능력, 즉 자체 플랫폼을 키우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 지역에 가면 반드시 써야 하는 플랫폼',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맥락을 가장 잘 이해하는 기술 서비스'가 지방에서 많이 등장해야 한다.


만약 지방에 기반을 둔 브런치스토리 같은 플랫폼이 하나 더 있고, 그것이 해당 지역의 삶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차별성을 가지면서 브런치스토리와 경쟁하고 때로는 보완한다면 어떨까. 한국 플랫폼 생태계 전체에 더 많은 다양성과 활력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흐름이야말로 지방이 주변부가 아닌 하나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방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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