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센터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위한 보물창고다. 매일 수많은 고객이 전화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불만을 쏟아낸다. 단순히 앱 작동 오류나 서비스 지연 같은 기능적 문제뿐 아니라, “색상이 답답하다”, “아이콘이 촌스러워 보기 싫다”, “광고 모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품이 좀 더 친환경적이었으면 좋겠다”처럼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이 묻어나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도착한다.
접수된 민원은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정리된 뒤 카테고리별로 분류된다. 이후 동일 카테고리 민원이 일정 기간 동안 몇 건 발생했는지 집계해 ‘횟수’로 표시하고, 고객이 사용한 표현의 강약·어조·부정 키워드 빈도를 반영해 1점에서 5점 사이의 ‘강도’를 매긴다. 건수와 강도 점수를 조합하면,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을 선별할 수 있다.
최우선순위로 선정된 불만은 서비스 개선과 신규 상품 기획의 출발점이 된다. 텍스트로 정리된 고객의 특정 ‘감정’과 ‘욕구’를 달래거나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을 구상하고, 베타 버전을 제작한다. 이후 여러 버전을 비교 테스트해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을 전면 출시하고, 다음 우선순위의 불만을 해결할 상품을 또 기획하는 식으로 사이클은 반복된다.
IT 플랫폼은 고객 한 사람의 온전한 전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건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특정한 감정과 욕구다. 지루함, 불편함, 즉각적 쾌락, 인정 욕구, 불안감 등으로 분류된 감정은 다시 더 잘게 쪼개진다. 예를 들어 ‘지루함’만 해도 클릭 후 대기 시간에 느끼는 지루함, 반복 작업에서 오는 지루함, 뻔한 콘텐츠를 접했을 때의 지루함처럼 상황별로 나뉜다. 이렇게 감정과 욕구는 끝없이 미세 단위로 분해된다.
플랫폼은 세분화된 불만과 욕구를 분석해 각각에 맞는 서비스를 설계한다. 외로움에는 실시간 채팅과 댓글 기능을, 지루함에는 게임 요소와 챌린지 미션을, 인정 욕구에는 ‘좋아요’ 버튼과 레벨·뱃지 시스템을 제공하는 식이다. 여기에 실시간 알림, 진행 상황 시각화, 원클릭 결제, 자동 완성, 포인트·쿠폰 같은 보상, 자극적인 이미지·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장치가 덧붙는다. 대응 방식은 사실상 무한하다.
과거에도 기업들은 고객 ‘한 사람’보다 특정 불만 ‘하나’에 초점을 맞춰 대응해 왔다. 하지만 IT 플랫폼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이 직접 말하지 않거나 심지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불만까지 포착한다. 거기에 정교한 상품을 기획하고, A/B 테스트로 즉시 검증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빠르게 확산시킨다. 과거에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직원을 만난 일부 고객만 경험할 수 있었던 섬세한 대응이, 이제는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동시에 구현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과거 사람들이 불만과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의존하던 가족·친구·이웃의 친절과 돌봄, 인정이 이제 모두 상품이 되어 거래되고 있는 소비주의 사회의 현실을 지적한다.
관심, 걱정, 욕망, 노력 등의 영역은 지금까지는 보통 사람들의 주체적 결정이나 가내 수공업, 집에서 빵 만들기 등에 맡겨져 있었고 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는 수익성이 없었지만, 이제는 성공적으로 상품화, 상업화되기에 이르렀다.
엄마가 차려주던 따뜻한 밥상은 배달 음식으로, 친구와 나누던 깊은 대화는 비대면 심리 상담 서비스로, 동호회에서 느끼던 소속감은 온라인 커뮤니티로,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서 배우던 업무 지식은 교육 플랫폼 구독으로 대체된다. 과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종합적으로 주고받던 환대와 친절, 인정이 이제는 항목별로 잘게 나뉘어 가격이 매겨지고, 카드 결제 후 플랫폼을 통해 제공된다.
거래가 어려웠던 영역, 즉 주변 사람의 행동과 반응으로 달래지던 감정과 욕구가 하나씩 상품화되면서, 소비주의는 더 넓게 퍼진다. 감정과 관계마저 거래 가능한 자원이 되고, 사람들은 더 이상 상대 전체와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취하는 태도가 강화된다.
소비주의 문화는 사람 사는 세상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오로지 잠재적 소비 대상들로만 가득 차 있는 거대한 컨테이너로 가정함으로써 소비자 시장들에서 정해진 기준들에 따라 각각의 세속적 실체들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정당화하고 촉진한다. 그러한 기준들은 고객과 상품, 소비자와 소비재 사이에 극심한 비대칭적 관계를 확립한다. 고객과 소비자가 상품과 소비재에서 기대하는 것은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와 소망의 충족일 뿐이고, 상품과 소비재의 의미와 가치는 오로지 고객과 소비자의 기대들을 얼마나 충족시키느냐에 따라서만 주어진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온전한 ‘전체’라기보다, 기능과 실용 가치의 집합으로 평가된다. 마치 가전제품의 사양표처럼 “이런 기능이 있다, 저런 기능도 제공한다”로 설명될 뿐, 특정한 ‘누구’로서의 고유성은 사라진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지? 그렇다면 나는 그것만 취할게.” 이 태도가 인간관계의 기본값이 된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소비자가 상품을 대하듯 효용 중심으로 변해버린다.
플랫폼에게도 고객은 인격체가 아니라, 행동 데이터와 구매 패턴이다. CS센터에 민원을 넣는 고객은 한 줄의 티켓, 처리해야 할 데이터일 뿐이다. 그의 삶의 맥락이나 서사, 가족·친구와의 관계 같은 종합적인 면은 고려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제할 능력이 있는 고객을 찾아 불편함과 욕구를 식별하고, 이를 해결하는 상품을 제공한 뒤 그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일이다.
소비주의는 ‘조각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개인을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보기보다, 기능과 욕구, 감정의 단위로 잘게 나누어 분석하고 이를 표준화된 해결책을 적용한다. 이렇게 하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고유한 맥락은 사라진다.
반면 인문학은 ‘전체로서의 사람’을 바라본다. 역사·철학·문학은 인간이 단순한 욕구의 합이 아니라 복잡한 층위를 지닌 존재임을 가르친다. 한 개인은 과거와 현재의 경험, 관계, 감정, 깨달음이 얽혀 형성된 고유한 흐름을 지니기에, 단순화하거나 예단할 수 없다.
결국 둘은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소비주의는 사람을 세분화하고 표준화하려 하지만, 인문학은 그 사람을 온전히 보려 한다. 소비주의는 불편함을 평균화해 모두에게 같은 처방을 내놓지만, 인문학은 각 개인이 서로 다른 서사와 경험 속에서 각기 다른 불편함과 욕망을 지닌다고 본다. 하나는 효율과 확장성을, 다른 하나는 고유성과 맥락을 중시한다.
결국 소비주의는 인문학마저 상업적 틀에 가둔다. “이 철학자의 사상이 회사 업무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역사 공부를 어떻게 투자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 문학 표현을 마케팅에 활용하면 고객 유치에 효과가 있을까요”. 인문학을 배우려는 사람들조차, 그 속에서 기능과 실질적 효용을 찾으려 애쓴다.
그래서 교육·출판 시장에서는 인문학의 ‘즉시 사용 가능한 가치’를 앞세운다. 철학 강의는 ‘리더십과 의사결정’ 프로그램으로, 역사 공부는 ‘투자 트렌드 분석’이나 ‘미래 예측’ 강좌로, 문학 읽기는 ‘카피라이팅과 스토리텔링’ 워크숍으로 포장된다. 심지어 인문학은 불안과 박탈감을 달래는 심리 도구나, 난해한 사상을 풀어내는 지적 콘텐츠로 소비되기도 한다. 이제 넷플릭스, 방탈출, 보드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도 경쟁하는 셈이다.
유용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누구든 버려지는 시대,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기 어려운 시대에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책이나 소설을 읽는 그 자체에서 얻는 만족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움이든 즐거움이든, 심지어 ‘시간 때우기’였든, 무엇이든 기능과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소비자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소비자에게 주입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고객-상품 혹은 사용자-유용성 관계의 패턴이다. 오늘날 인간적 유대가 취약하고 인간들 간의 결사와 파트너십이 쉽게 변하는 것은 주로 이러한 주입 내지 훈련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간적 유대들의 불안정성과 변화 가능성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따라붙어 수많은 정신적 불안과 불행을 초래하고 있는 두려움, 배제되고 버려져 혼자 있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들의 영구적 원천이다.
인문학을 통해 ‘사람 전체로서의 나’를 지키려 애쓰는 나는, 동시에 소비주의 논리에 따라 고객을 잘게 분해하며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한다. CS센터에서 내가 마주하는 존재는 심장이 뛰는 한 사람이라기보다, 숫자로 분류된 데이터이자 기획의 근거 자료다.
낮에는 인간성을 해체하고, 밤에는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책을 읽고, 고민하고, 글을 쓴다. 지금 이 글도 처음엔 쓰는 즐거움 그 자체로 시작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독자에게 무언가 쓸모 있는 가치, 읽고 나서 얻어갈 무언가를 남겨야 하지 않나 압박이 자리한다. 이렇게 모순된 두 일을 동시에 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