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속초 중앙시장을 다녀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지글지글 요리하는 소리, 오징어순대와 닭강정, 각종 튀김 냄새가 뒤섞인 골목은 활기로 가득했다.
그런데 시장을 둘러보던 중,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앞 주방에서 전을 굽고 튀김을 건지는 이들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였다. 요리뿐 아니라 손님을 부르고, 줄을 세우고, 계산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동시에 식탁에선 외국인 관광객들이 익숙지 않은 젓가락질로 전을 집어 들고, 막걸리까지 한 잔 곁들이고 있었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을 파는 풍경. 무척 낯설고도 흥미로웠다. 더 놀라운 건,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음식을 파는 외국인도, 사는 한국인도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세계가 조용히 펼쳐지고 있었다. 한국이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한국은 외부인을 경계하는 문화를 형성해 왔다.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는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렸다. 고려 시대 거란과 몽골, 왜구의 침입부터 조선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신미양요,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외부 세력은 늘 ‘위협’으로 기억되었고, 그 감각은 집단적인 불안과 방어 본능으로 굳어졌다.
이런 역사적 경험 속에서 한국 사회는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보다 배척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광복 이후 세계 각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산업을 키우는 동안에도, 내부에 외국인의 존재는 드물었다. 농업부터 중공업, 첨단 산업까지 연구·생산·판매 전 과정을 ‘우리끼리’ 해냈다.
어릴 적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가 다니시던 수출 제조업 회사도 전 직원이 한국인이었다. 제품 대부분을 해외에 판매했지만 회사 안에 외국인의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 ‘한국 회사에는 당연히 한국인만 다닌다’는 믿음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세상은 이미 크게 달라져 있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만 해도 미국, 인도, 독일,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이 있다.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국적은 미국이고 한국어가 서툰 ‘검은 머리 외국인’도 적지 않다.
처음엔 IT 업계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식당이나 편의점에도 외국인 직원이 흔하고, 농촌에선 외국인이 농사 짓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뉴스에서는 이제 공장도 외국인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산업 전반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외국인 취업자는 101만 명을 넘어섰다. 2022년 84만 명, 2023년 92만 명에서 불과 2년 만에 17만 명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이 중 제조업과 광업 종사자가 약 45%로 가장 많고, 도소매·숙박·음식점업과 서비스업이 뒤를 잇는다. 최근에는 간병, 청소, 배달 등 생활 밀착형 업종으로도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생명의 진화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섞여야 강해지고, 섞여야 건강하고, 섞여야 아름답다.”고 말했다.
한국도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길거리에서 흔히 외국인을 마주치고,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만 봐도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뜨겁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출 의존형 경제 구조를 유지하려면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하지만 ‘섞이면 아름답다’는 말처럼, 현실이 매끄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실제로 섞이는 과정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다. 어릴 적부터 한국인끼리만 지내온 탓에, 매일 얼굴을 보는 외국인 동료와도 묘한 거리감을 느낀다. 말을 걸면 순간 머뭇거리고, 대답을 하고 나서도 ‘이렇게 말하는게 맞나’ 되짚어 보게 된다. 괜히 불편한 마음에 업무 외 대화는 피하게 된다.
글로벌 시대라고 하면, 그저 ‘밖으로 나가기 쉬운 세상’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반대로, 외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그 흐름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방 안의 코끼리처럼, 모두가 존재를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외국인과 한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수천 년 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이 땅에서, 지금 세대는 처음으로 외국인과 함께 섞여 살아가는 ‘다민족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수백 년의 이민 역사를 가진 유럽과 미국조차 크고 작은 인종·민족 갈등을 겪는데, 우리는 과연 괜찮을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건, 너무나 낯선 세계다. 외국인을 몰아낼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친밀하게 어울릴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친하게 지내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어찌저찌 지내고 있지만, 이런 회피적인 방식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