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 이 말하는 꿈이 없어서 불안한 당신에게
세상의 잣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너의 꿈은 무엇인지, 너의 재능은 무엇인지, 커서 무엇이 되어 이 세상에 기여할 것인지 말이죠. 마치 확실한 목적이나 재능이 없으면 태어날 자격도 없는 것처럼 우리를 몰아세우곤 합니다.
오늘 이야기할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은 바로 그 질문에 지쳐버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뉴욕의 평범한 중학교 음악 선생님입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재즈 피아니스트 가 되어 무대에 서겠다는 꿈으로만 가득 차 있죠. 그에게 학교 수업은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진짜 인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최고의 밴드와 연주할 기회가 찾아오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맨홀에 빠져 의식불명 상태가 됩니다. 눈을 떠보니 그의 영혼은 지구를 떠나 저승으로 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제 막 꿈을 이루려던 찰나에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영혼들이 태어나기 전 머무르는 세상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곳은 꼬마 영혼들이 지구로 가기 전 성격을 부여받고 멘토들의 지도를 받는 훈련소입니다. 이곳의 관리자들은 무단 침입한 조 가드너를 노벨상을 받은 저명한 심리학자 멘토로 착각하게 됩니다. 조는 당황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다시 죽음의 세계로 끌려갈까 봐 두려워 얼떨결에 멘토인 척 연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멘토가 되어 꼬마 영혼의 지구 통행증을 완성해 주면, 지구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조는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육체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게 되죠.
가짜 멘토가 된 조 가드너에게 배정된 영혼은, 이 구역의 소문난 문제아 영혼 22 였습니다. 조가 어떻게든 지구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반면, 22는 지구 따위 시시하고 지옥 같다며 수천 년 동안이나 태어나기를 거부해 온 냉소적인 영혼입니다. 테레사 수녀도, 링컨도, 간디도 22의 불꽃을 찾아주는 데 실패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정도죠. 이곳의 시스템상 불꽃을 찾아야만 지구 통행증이 발급되는데, 22는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서로의 목적을 알게 된 둘은 은밀한 거래를 합니다. 22가 조에게 제안하죠.
"네가 내 불꽃을 찾는 척 도와줘서 지구 통행증이 발급되면, 그 배지를 너한테 넘길게. 그럼 넌 지구로 돌아가고, 난 원하던 대로 이곳에 영원히 남는 거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두 영혼은 협력하지만 우연한 사고 때문에 통행증도 없이 지구로 추락하게 되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영혼이 뒤바뀌고 맙니다. 22는 조 가드너의 몸속으로, 조는 고양이의 몸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죠.
난생처음 육체를 갖게 된 22는 조의 몸으로 걷고, 맛보고, 느끼며 낯선 지구를 경험합니다. 처음에는 걷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22는 점차 지구의 감각들에 매료되기 시작합니다.
평생 지구를 지루한 곳이라 여겼던 22의 마음을 움직인 건 대단한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베어 문 페퍼로니 피자 한 조각의 짭짤한 맛, 지하철 환풍구에서 올라오는 훅 끼치는 바람, 미용실에서 나누는 사소한 수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 조용히 내려앉은 단풍나무 씨앗 하나였습니다. 22는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봐, 나도 이제 불꽃을 찾은 것 같아. 난 걷는 게 좋아. 하늘을 보는 것도 좋아."
하지만 고양이 몸에 갇힌 조는 코웃음을 칩니다. "그건 그냥 사는 거잖아. 그건 인생의 목적이 아니야." 조에게 불꽃이란 재즈 피아노처럼 뚜렷하고 거창한 재능이어야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조는 미처 몰랐습니다. 22가 느낀 그 평범한 순간들이, 사실은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삶의 진짜 의미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구에서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22는 지구 통행증을 완성합니다. 하지만 조는 22에게 모진 말을 내뱉습니다. "그건 네 불꽃이 아니야. 내 몸에 있어서 좋았던 것뿐이라고!" 결국 상처받은 22에게서 통행증을 건네받은 조는 자신의 몸을 되찾아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섭니다. 완벽한 연주를 마치고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받죠. 평생을 바쳐온 목표를 이룬 순간입니다
하지만 공연장 밖으로 나왔을 때, 그를 기다리는 건 벅찬 환희가 아닌 묘한 공허함이었습니다. "내일은 뭐해요?"라는 질문에 "내일도 똑같이 모여서 연주하는 거지"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조는 당황합니다. 평생을 바쳐온 꿈을 이뤘는데, 왜 기분이 이것밖에 안 되지?
이 허무함은 낯설지가 않습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23개)을 딴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은퇴 후 인터뷰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금메달을 따고 나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일 줄 알았다. 하지만 시상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찾아온 건 지독한 우울증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이게 끝인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포스트 올림픽 우울증(Post-Olympic Blues)이라고 부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달려가서 마침내 정상에 깃발을 꽂았는데, 막상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오는 상실감이죠.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에, 손꼽아 기다리던 군대 전역날을 맞이하고 찾아오는 묘한 공허함처럼 말입니다.
그제야 조는 주머니 속에 있던 22가 남긴 잡동사니들, 먹다 남은 베이글 조각과 단풍나무 씨앗을 꺼내 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22가 느꼈던 그 사소한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삶이었다는 것을요.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무대 위에서 받는 1분의 박수갈채가 아닙니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건반을 두드리던 수많은 낮과 밤, 친구와 나누던 농담, 창가에 비치던 햇살... 우리가 그냥 지나치거나 견뎌냈던 그 모든 시간들에 진짜 삶이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조는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상처받아 길을 잃은 22에게 지구 통행증을 건네줍니다. "네 불꽃은 피아노나 하늘이 아니야. 살 준비가 됐다는 것, 그 자체가 불꽃이야." 조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 22를 지구로 보냅니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순간, 그의 희생에 감동한 관리자 제리가 기적처럼 조에게 두 번째 삶을 선물합니다.
이 영화는 꿈같은 건 필요 없으니 대충 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조 가드너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그는 여전히 재즈를 사랑하고, 여전히 연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이전과 다를 것입니다.
이전의 그에게 피아노가 나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이제 그에게 피아노는 삶을 즐기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꿈과 목표는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침대에서 일으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나침반이자 동력입니다. 하지만 나침반만 쳐다보느라 발밑에 핀 꽃을 밟고 지나가지는 마세요.
꿈을 향해 뜨겁게 달리되, 달리는 내내 뺨에 스치는 바람도 즐기시길 바랍니다. 성취의 기쁨은 잠시지만, 과정의 행복은 영원하니까요.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꿈꾸는 당신의 오늘 또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