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은 또 하나의 과거가 되어,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by 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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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억지로 과거를 떠올리려고 하면 이상하게도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그때의 감정도, 공간의 크기도, 마음의 무게도 흐릿하다. 그런데 오늘을 기준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순간, 그 시절은 전보다 또렷해지고 묘하게 뿌듯해진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30평 아파트다. 최근에 지어진 집이라 구조도 좋고, 공간도 넉넉하다. 이 집에 서 있다 보면 문득 첫 번째 집이 떠오른다. 그때는 10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거실은 따로 없었고, 방 두 개에 작은 주방과 화장실이 전부였다. 손님을 초대하기도 쉽지 않았고, 침대 하나를 놓는 일조차 계산이 필요했다.

그 다음 집은 방 두 개에 작은 거실이 있는 구조였다. 처음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아내가 집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가며 “집이 길다”고 말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 집의 거실과 주방을 합한 것과 비슷한 크기의 작은 집이었는데, 그때의 우리는 그 길이를 넉넉함으로 느꼈다.

신기한 것은, 그 시절을 떠올리려고 애쓸 때는 잘 기억나지 않던 장면들이 지금의 공간에 서 있을 때는 또렷해진다는 점이다. 좁았던 방의 공기, 계산하며 배치했던 가구, 그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까지도 생생해진다.


오늘을 기준으로 과거를 바라볼 때, 과거는 비로소 또렷해진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는 다시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절의 집도, 그때의 공기도, 그 마음도 그대로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과거는 오늘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공간에 서서 지금의 여유를 느낄수록, 그때의 부족함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편했던 공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지고, 부족한 곳에 살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안정이 더 소중해진다.


그래서 오늘은 중요하다.
오늘은 언젠가 또 하나의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오늘의 소중함은 그저 지금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다. 순간을 소비하라는 말도 아니다.

오늘이 소중한 이유는, 이미 지나온 시간이 오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오늘이 또 다른 내일의 오늘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갑자기 여기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어제의 선택과 그 전날의 고민, 더 오래전의 부족함과 노력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과거의 결과이자 증거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은 책임이다.
지금의 태도와 선택은 내일의 기억이 된다.


물론 오늘이 늘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지금의 자리가 완벽하지 않기에, 지나온 시간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때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고,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뒤늦게 따라온다. 맞다. 나 역시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최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완벽하게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그때의 나로서는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도록.


오늘이 소중한 이유는 짧아서가 아니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또 하나의 과거가 되어,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가볍게 소비하기보다 조용히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통과하려 한다.
언젠가 또 다른 오늘에 서서 지금을 돌아볼 때,
적어도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오늘은 과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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