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지켜야할 태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시간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기간이 길어졌달까?
최근이라 하면 1~2년 전의 일이고, 얼마 전이라고 말하면 4~5년쯤 지난 이야기이다. 예전이라는 말은 어느새 10년 전을 가리키고, 옛날은 15년,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서로의 시간 감각이 달라 잠시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우스갯소리로 아직도 월드컵 이야기를 하면, 대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적어도 40대 이상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최근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2002년은 초등학교도 아니고,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이다. 이쯤 되면, 마치 40대에게 88올림픽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88올림픽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만약 어르신들이 서로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함께 있다면, 아마 이렇게 느낄 것 같다. ‘아, 옛날 이야기구나.’ 귀는 기울이되, 깊이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연스럽게 소통의 간극이 생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지 숫자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이 바뀌고, 기억의 밀도와 기준이 달라지는 일이다. 내가 ‘최근’이라고 부르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이미 ‘옛날’이 되어 버리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내가 확실히 시간을 건너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많은 것은 변한다.
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경험이 쌓이고 판단이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더 단단히 붙들어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람은 세상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영리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쉽게 냉소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어떤 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의식적으로 지켜야 한다.
첫째는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자신의 기준을 정답처럼 여기기 쉽다. 겪어본 것이 많아질수록,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판단하려 든다. 특히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대단한 성과를 쌓아 온 사람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강해진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타인을 무시할 권한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말로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질문을 한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품격은 우월감에서 나오지 않는다.
상대의 사정과 맥락을 헤아리려는 자세, 내가 옳을 수는 있지만 상대 역시 틀리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국,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둘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다.
환경이나 타인을 핑계로 돌리지 않고,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려는 태도.
어른다움은 완벽함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실수했을 때 변명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며, 다음 선택에서 더 나은 판단을 하려는 자세가 사람을 어른답게 만든다. 이것은 나이를 먹어도 결코 낡아서는 안 되는 태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외로 많은 이들이 책임 앞에서 한발 물러선다. 문제의 원인을 상황이나 타인에게 돌리고, 불리해지는 순간 선을 긋거나 거리를 둔다. 때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제를 드러낸 사람을 불편한 존재로 취급하기도 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늘 무겁고 불편하다. 그래서 더욱 분명해진다.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태도에서 드러난다. 어른다움은 나이로 증명되지 않는다. 책임을 대하는 방식으로 증명된다.
셋째는 배우려는 자세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우기를 멈추는 순간,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굳는다. 먼저 굳는 것은 몸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한때는 유효했던 기준이 어느새 정답처럼 자리 잡고, 새로운 방식과 관점은 번거로운 것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과거에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은 생각보다 빠르게 낡아진다. 예전에 통하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시대와 어긋나게 된다. 노력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이전보다 훨씬 짧아졌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품격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모름을 인정하는 일을 자존심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질문하고, 배우려 한다.
배움은 새로운 정보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방식이 더 이상 최선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단단해진다. 경험 위에 배움을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품격은 ‘이미 안다’는 태도에서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배우고 있다는 자세에서 드러난다.
넷째는 말과 행동의 절제다.
모든 생각을 말로 옮길 필요는 없고, 모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필요도 없다. 경험이 쌓일수록 말은 줄고, 선택은 신중해져야 한다. 이것은 위축이 아니라 성숙이다.
나 역시 이 부분이 쉽지 않다. 답답한 장면이 보이면 말이 먼저 나오고, 어느새 지적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돌아보면, 상대에게도 나름의 고민과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내 말이 언제나 정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상대가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에, 내가 먼저 해답을 내놓으려 했던 경우가 많았다.
수학 문제를 풀 때를 떠올려 본다.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곧바로 해답을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먼저 스스로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충분히 생각한 끝에 답을 마주한다. 그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문제는 내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나의 조언은 때로 상대가 지나가야 할 그 과정을 단숨에 지워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려 한다. 상황을 읽고, 관계를 고려하며, 굳이 상처를 남기지 않아도 될 말은 삼키는 태도. 말하지 않는 선택 역시 하나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이러한 절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필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말과 행동의 절제는,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말아야 할 어른의 품위다.
마지막으로, 자기 삶에 대한 존중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으며, 지금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기 어렵다. 반대로, 자기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관계 속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가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끝까지 지켜낼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에 가깝다. 세월 속에서 변해야 할 것보다,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 결국 가장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