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라는 품격

말보다 태도가 남는다.

by 헌이

어릴 적에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다.
말과 행동이 단정해지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라 믿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세월이 사람을 반드시 성숙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스러운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품격이 없어도 되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나이에는 그에 맞는 태도가 있고,
그에 걸맞은 품격이 있다.


문제는 나이와 상관없이
그 최소한의 품격조차 놓친 채 살아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고에 깊이 빠져 있다.
내가 아는 것이 곧 사실이고,
내가 느낀 감정이 곧 정답이라고 믿는다.


물론 사람에게는 각자의 철학과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철학은
경청하는 태도가 함께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상대의 의도는 보려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입장과 감정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자신만의 기준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하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한 방어에 가깝다.
그렇게 되면 대화는 사라지고, 주장만 남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자신의 억울함뿐이다.


그러다 보면 사실마저 흐려진다.
자신이 억울한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상대가 반드시 가해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부터는
무엇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감정이 사실을 대신한다.


더 문제는
이후에 다시 이야기를 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설명이 주어져도 귀를 닫는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의견을 꺾는 일이 패배처럼 느껴지고,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자신을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사람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로는
결코 품격 있게 타인을 대할 수 없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배웠는지가
사람을 어른스럽게 만든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스스로 눈과 귀를 가린 채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지 않으니 배울 수 없고,
듣지 않으니 달라질 수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품격’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품격이란
높은 지위나 뛰어난 경쟁력을 가진 사람의 몫이라고
막연히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품격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다.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려 한다.
경청할 줄 알고,
나와 타인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품격은 나이와 무관하다.
어린 사람도 자신의 나이에 맞는 품격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반대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품격이 생기지는 않는다.


품격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태도에서 조용히 드러난다.


품격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히려 느리고, 조용하고,
너무 평범해서 스쳐 지나가기 쉽다.
하지만 사람을 오래 보게 만드는 힘은
대부분 그런 태도에서 나온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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