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을 인정할 때 서로 존중하며 대화가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되는 줄 알았다.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들을 보면 흔히
“이 업계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다”는 소개가 붙는다.
그래서 나 역시 경력이 10년쯤 쌓이면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도,
모르는 것은 여전히 모르더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한 업계에서 오래 일했어도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다.
더구나 같은 업계 안에서도
분야는 끝없이 나뉜다.
모든 것을 안다는 말 자체가
어쩌면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아무리 오래 살아온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순한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이런 착각에 빠진다.
나보다 경력이 많으니
당연히 실력이 뛰어날 거라는 생각.
나보다 경력이 적으니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냐는 생각.
이런 생각은 곧 태도가 된다.
나이와 경력만 보고 상대를 얕잡아보거나,
반대로 이유 없이 과하게 우러러보게 된다.
하지만 둘 다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무엇 하나만 몰라도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실력도 없는 사람처럼 단정해버리기도 하고,
말솜씨만 조금 좋아도
대단한 전문가로 착각하기도 한다.
요즘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아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이 맞물려 움직이는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력이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점점 의미를 잃어간다.
사실 중요한 것은 경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서의 생각이다.
사람마다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 생각을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모르는 것은
단지 아직 겪어보지 않았을 뿐이다.
같은 분야에 종사한다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여든 어른도 세 살 아이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했는데,
하물며 인생의 절반도 채 살지 않은 내가
후배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배울 것은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서 배우고,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배운다.
그 과정에서
나이와 경력은 생각보다 큰 기준이 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되는 것도
모르는 것은 정말로 모를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관계는 달라진다.
아는 사람은 설명할 수 있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할 수 있다.
그 사이에서 필요한 것은
우열이 아니라 태도다.
그래서 나는 점점
확신보다는 여지를 남기려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여지.
상대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시각의 경험과 생각일 수도 있다는 여지다.
모르는 것은 모르더라.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그 지점에서부터,
비로소 존중하는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