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쌓이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종종 줏대 없는 사람을 비판할 때 사용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을 꼬집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함께 품고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을 곰곰이 곱씹어 보면, 마냥 틀린 말이라고만 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현실을 꽤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변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며 수정된다.
그때는 정말 맞다고 믿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틀렸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입장이 바뀌어서라기보다는,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훨씬 많다.
나는 군대를 비교적 일찍 다녀온 편이다.
그래서 내가 전역했을 당시, 내 또래 친구들 중에는 이제 이병, 일병으로 막 군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 날, 일병 휴가를 나온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이미 전역한 상태였고, 그 친구는 아직 군인 신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군대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 친구는 일병이었기에, 상병과 병장을 향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들 하나하나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병장까지 경험하고 전역한 내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병장이 되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의 그는 지금의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고, 나 역시 그것을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은 흘렀고, 그 친구도 결국 병장이 되었다.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또다시 군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렇게 비판하던 입장을, 이제는 스스로 설명하고 옹호하고 있었다. 마치 일병 시절에 했던 말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친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느껴졌다. 이병, 일병, 상병, 병장. 각 계급마다 맡겨진 역할이 다르고, 책임의 무게가 다르며,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이병과 일병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상병과 병장의 위치에서는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와서야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바뀌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이 일은 군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도 그렇고, 특히 직장은 더 그렇다. 실무자일 때는 이해할 수 없던 결정이, 관리자가 되고 나면 설명이 되는 경우가 있다. 현장에서 일할 때는 탁상공론처럼 보이던 정책이, 전체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몰랐기 때문에 비판했던 것이, 알게 되었기에 옹호로 바뀌는 것이다. 결국 이것도 입장의 변화라기보다는 인식의 확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이 문장은 변명도 아니고, 자기합리화도 아니다. 오히려 성찰에 가깝다.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생각을 부정할 수 있을 만큼,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리는 너무 쉽게 비판한다. 충분히 알기도 전에, 충분히 들어보기도 전에, 자신의 판단을 결론처럼 내세운다. 그리고 그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판하려면, 알고 해라.”
무조건적인 비난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오히려 관계를 망치고, 상황을 왜곡하며, 결국에는 자신을 소모시킬 뿐이다. 비판이 의미를 가지려면 최소한의 순서가 필요하다.
먼저 들어야 한다.
그 다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생각한 뒤에 판단해야 한다.
그 이후에 비판하면 된다.
그 과정을 거친 비판이라면, 충분히 귀를 기울일 여지가 생긴다.
반대로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고, 상황을 보려 하지도 않으면서 오직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고집이다. 공감도 설득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결국 남는 것은 원망뿐이다. 그리고 그 원망은 대부분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한때는 틀릴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틀림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용기가 없다면, 사람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생각이 바뀌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수없이 많은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순간들을 지나왔다.
그 경험들이 나를 조금은 덜 단정적으로 만들었고,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상황을 마주해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지금의 판단 역시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맞지만, 언젠가는 또 달라질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며 가져야 할 가장 현실적인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