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차 핀테크 서비스 기획자, 먕
권위적이지 않은 상사,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점이 있다면 알아서 해결해 주는 동료이고 싶어요.
안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요. 어떤 순간을 (마냥) 버티기보다는, 전체를 차지하는 부분 중에 재밌고 즐거운 점을 봐야 돼요. 항상 나쁜 일만 오는 건 아니잖아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고, 모든 일은 전체의 일부분인데 그중에 부정적인 모습에만 포커스를 두면 힘들어져요.
터널 끝이 안 보여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저도 그랬고요.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겠지만, 일을 계속하고 싶은 거라면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끝은 금방 오거든요. 터널 안에 있는 사람은 안 보이겠지만, 버티다 보면 끝은 꼭 와요.
첫 회사에서 20년 넘게 근속하신 먕 님. 여러 도메인을 거쳐온 먕 님은 가장 재밌는 서비스로 핀테크를 꼽으셨어요. 전에 없던 기능을 기획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성장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 먕 님은 본인이 가장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도메인을 찾아냈다고 해요.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 재밌고 즐거운 면모를 놓치지 않았던 먕 님을 보며, 소소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법을 아는 참된 어른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 순간,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먕 님의 에너지를 전달드리고 싶어요. 어려운 순간을 견뎌내고 도달한 터널의 끝에서 우리는 모두 행복해질 거예요!
어쩌다 IT 업계로 오게 되셨나요?
정말 '어쩌다' 오게 됐어요. 운 좋게 일하게 되었는데, 계속하다 보니 재밌어지고, 재밌으니까 열심히 하게 되고, 또 열심히 하니까 잘하게 된 거 같아요!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는 메일 주소를 만드는 법을 몰라서 4학년 언니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로 컴맹이었고, 재학기간 내내 관심도 없었어요.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는 여기저기 원서를 많이 넣었는데 다 떨어졌고요. 그러던 중에 (지금 회사의) 채용 공고가 올라왔고, 지원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지원했는데 된 거죠. 메일만 쓸 줄 알았는데 IT업계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다른 도메인도 지원해 보셨을 것 같아요.
이직 준비하면서 연봉 조율까지 마쳤는데, 기획자가 메인이 아닌 업계라서 결국 안 갔어요. 집도 멀고.
이직을 안 하셨다면, 첫 회사에서 20년 넘게 계신 건가요?
맞아요. 커뮤니티 서비스로 시작해서, UX, 서비스 기획, B2B를 해왔고, 6년 전부터는 핀테크 서비스 기획을 하고 있어요. 핀테크가 지금까지 했던 서비스 중에 제일 잘 맞아요.
반면, 커뮤니티 서비스는 제일 안 맞고 힘들었어요. 저는 유저 프렌들리 하지 않아서 공지도 딱딱하게 쓰는 편인데 커뮤니티는 아무래도 사용자 보이스를 들어야 하니까 힘들었죠. 이후로는 기능성/도구형 서비스가 저한테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일에 스트레스도 안 받고요.
회사 내에서 서비스를 바꿀 때 연차가 많이 쌓이면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는지 궁금해요.
네. 저는 제가 직접 왔어요.
오잉: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전사 조직개편 방향에 따라 달라요.
어떤 업무를 하실 때 재미를 느끼나요?
신규 서비스를 기획할 때 제일 재밌어요. 새로운 기능을 생각해서 플로우를 만들고 정책도 세우고, 사람들을 설득해서 서비스의 모양이 갖춰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껴요.
설득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시는 걸까요?
설득하는 건 싫어해요.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쓰면 쓸수록 좋죠. 서비스가 성장하는 것도 보이니까.
디디: 내 머릿속에 있는 게 실제로 가시화돼서 나타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안에서 상호작용 하는 게 엄청 보람찬 것 같아요.
제일 도전적이라고 느껴졌던 과제가 있다면요?
제 능력밖의 일을 해야 했을 때요. 마케팅, 정산, 제휴 영역.
스스로가 잘 못 하는 업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데도 그 일을 해야 하는 건 늘 어려워요. 연차가 쌓이면 어떤 업무에 대해 제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제가 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담당자가 돼요.
스스로랑 안 맞지만 해야 하는 업무가 있을 때, 혹은 부정적인 자극을 받을 때 어떤 마음으로 이겨내시는지 궁금해요.
"어차피 다 끝난다." 하다 보면 끝나요. 결국 끝이 정해져 있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니까.
그래서 출산 후 복직하기 전까지 쉬는 기간이 제일 힘들었어요. 언젠가 이 아이가 기저귀도 떼고 어린이집도 가겠지만, (끝이 없는) 너무 먼 미래 같은 거예요. 회사에서는 장기 프로젝트도 2~3년은 잘 안 하잖아요.
가장 뿌듯했던 경험도 들려주세요.
서비스 출시되면 매번 뿌듯해요. 작은 거든 큰 거든.
뚜까: 1년에 꽤 자주 뿌듯하시겠네요?
먕: 수시로 뿌듯해요. 금방 잊고 또 새로운 거 하고. 스트레스받으면 또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20년 넘게 일을 하셔도 고민이 있으세요?
많죠. 내가 혼자 잘해서 성과를 내는 건 자신 있는데 팀원이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게 정말 어려워요. 지지부진하면 자꾸 내가 하고 싶고. 이걸 참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간섭을 좀 했어요. 제가 성격도 급하고 성과도 빨리 내고 싶어서 재촉하게 됐거든요. 조금만 기다려주면 알아서 잘할 텐데. 그래서 요새는 기다리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조금 기다려주면 언젠가 하더라고요.
어떤 상사가 되고 싶나요?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전에 솔선수범하는 상사를 만나서 많이 배웠거든요.
그럼 본인은 어떤 동료/선배이고 싶나요?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점이 있다면 알아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제가 원래 눈치를 잘 안 보는 스타일인데, 요새는 눈치를 많이 보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많이 봐요. 약간은 쓸모 있는 인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웃음)
듣다 보니 아기를 낳기 전과 후의 먕 님이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아요.
정말 달라요. 그래서 아기를 낳기 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엄청 미안해요. 예전의 저는 요즘 유행하는 MZ 스타일이었어요. 상사가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귀 닫고 사세요?” 같은 말도 서슴없이 하고. 나중에 만나서 사과드렸는데 웃으면서 받아주셨어요.
오잉: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고 제가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니까 ‘그분도 그때 생각이 없어서 나를 그렇게 대한 게 아니었는데 내가 철이 없었구나’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어렸던 저에게 선하게 대해 주신 분한테는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그분들은 우리를 다 참아주신 거죠.
10년 뒤 일하는 먕 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5년 뒤에도 핀테크를 할 거 같아요. 10년 뒤에도 IT 기획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필요한 순간까지만 일하고 그만두고 싶어요.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없어요. 하고 싶은 건 바로바로 하는 편이라.
운동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최근에 운동량을 늘리려고 시작했어요. PT도 받고, 탁구랑 배드민턴을 쳐요.
나무처럼 집에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라서 퍼즐이나 레고처럼 정적인 취미생활을 좋아했어요. 원래 잔병치레가 잦아서 자주 아프고 기운도 없었는데, 운동을 하니까 감기에 안 걸리더라고요. 5년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다니면서 건강해지고 있어요.
자주 쓰는 서비스 1위가 웹툰이시던데요. 최애 웹툰은 어떤 작품인가요?
웬만한 건 다 봐요. 보는 웹툰이 100개가 넘어요. 요일별로 여러 플랫폼에서 보고, 완결된 작품도 다시 보거든요. 회귀물, SF, 일상툰을 좋아해요. 재밌는 작품은 웹소설도 보고, 웹툰으로도 보고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먕 님이 정말 긍정적이라고 느껴졌어요. 타고나신 건가요?
아닌 것 같아요. 인생에서 몇 가지 변곡점이 있잖아요. 저는 6학년 때 경험한 것 같아요.
원래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었고, 집안 사정 상 어릴 때 형제들에 비해서 제가 철이 빨리 든 것 같아요. 6살 때부터 철이 들었는데, 6학년 때 만난 친구가 "너 왜 그렇게 살아?"라고 하는 거예요. 뇌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해맑아졌어요. 그전에는 되게 예민했었는데 마인드가 바뀌었어요.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하면서) 살 필요가 없구나. 좀 철 없이 살아볼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시는 거 보면 충격을 크게 받으셨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은 게 저뿐이더라고요.
저는 남들도 집안 사정에 대해 고민이 많은 줄 알았어요. 다 비슷한 생활수준이었는데 아무도 그런 걱정이 없더라고요. 그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죠.
밸런스 게임: 수업 때 내 이름만 부르는 선생님 VS. 반에서 내 이름만 모르는 선생님
수업 때 내 이름만 부르는 선생님
학생 때 공부만 했더니 항상 제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이 계셨어요.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았고요.
내 이름만 부르는 본부장님은 어떤가요?
딱히 부담 없어요.
오잉: 사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이 프로젝트 네가 해” 이런 의미잖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먕: 안 하면 되니까. (웃음) 시키는 거 다 할 필요는 없잖아요.
사전 인터뷰에서 '10년 후 멋진 하루'에 대해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고 동네 산책하고 소소한 일상으로도 충분히 멋진 하루!"라고 답해주셨어요. 먕님의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요?
살아있는 게 행복이죠.
단 음식 먹고, 동네 산책하고, 씻고 기분 좋게 자고, 안 아프면 행복 거 같아요.
디디: 출퇴근은 없는 하루인가요?
먕: 일은 디폴트로 깔려 있어요. 먹고살 돈은 벌어야죠. 저는 지금까지 일이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가) 정말 일하는 게 힘들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안 그런 일도 분명히 있으니까.
그래도 일하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극복했어요?
어차피 다 끝이 있다. 지나간다.
저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랑 좋은 인프라에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싫어하는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고, 힘든 상사나 동료도 있지만, 안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요. 새로운 게 등장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니까 일도 계속할 수 있는 거죠.
회사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먕님의 행복이나, 고통을 버티는 자세도 색달랐어요.
어떤 순간을 (마냥) 버티기보다는, 전체를 차지하는 부분 중에 재밌고 즐거운 점을 봐야 돼요. 항상 나쁜 일만 오는 건 아니잖아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고, 모든 일은 전체의 일부분인데 그중에 부정적인 모습에만 포커스를 두면 힘들어져요. (힘든 부분 외에) 다른 부분도 함께 보면 일하기가 훨씬 나아요. 그러니까 다른 부분을 의도적으로 봐야죠. 우리 회사는 이런 게 힘들지만 월급이 높다든지, 휴가를 편하게 갈 수 있다든지. 내가 극복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면 힘들어지니까요.
워킹맘으로서 한 마디 부탁드려요.
워킹맘들이 본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도전이 많잖아요. 최근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출산을 하거나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되는 상황이 많았어요. 출산을 전후로 터널 끝이 안 보여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저도 그랬고요.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겠지만, 일을 계속하고 싶은 거라면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끝은 금방 오거든요. 터널 안에 있는 사람은 안 보이겠지만, 버티다 보면 끝은 꼭 와요.
CREDIT
글 파도
인터뷰 디디, 뚜까, 오잉, 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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