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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이티백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도움을 줄 때 보람을 느껴요.

3+a년차 백엔드가 더 좋은 풀스택 개발자, 여니

by 아이티백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로 인해서 편해질 수 있다면 저는 그게 제일 보람이 있다고 느껴요. 내가 어떤 태스크를 완료해서 그걸 누군가 써서 편리함을 느꼈을 때는 대면하지 않을 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여기 와서 혼자 있으면서 외로움보다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인 것 같아요. 혼자 있으니까 어떤 결정이나 작은 거 하나를 살 때도 그냥 내 기준으로만 봤을 때는 되게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되게 신기했어요. 제가 알지 못했던 저를 아는 느낌
그 세션에서 뭐라고 하셨냐면 3년 차 이하 저연차 친구들은 출퇴근만 해도 잘하는 거다. 거기서 그냥 수도꼭지가 펑 터진 거예요. 잘 하고 있는 거구나. 그냥 계속 하던 대로 하면 언젠가 나도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마음이 많이 위로가 됐어요.


오늘 개발자로 일하고 계신 여니님 모셨는데요. 자기 소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니라고 하고요 2년 차 개발자고 지금 핀테크 회사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핀테크 회사에 다니고 계신데 어쩌다 IT에서 일하게 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의류 업계 쪽을 다녔었고요. 저는 항상 일하면서 저 스스로 채워지는 거 그런 것들이 중요했던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을 찾다 보니까 일반 의류 업체를 다니다가 SPA 브랜드로 일을 했었고 그 안에서도 한계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때 저희 지역이 조금은 외곽에 있어서 거기에서 열심히 혼자 공채를 준비하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만난 공채 친구들은 원래 내정자였던 거였죠. 그 안에서 승진 같은 기회들도 내정자 친구들한테 먼저 주어지니까 내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했을 때 그래서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SPA 브랜드에서 교육을 할 때 미래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던 거예요. 어떤 이야기들을 해줬냐면 그때가 한 2014년 15년이었는데 ‘나중에는 고객님들이 피팅하지 않고도 옷을 입어볼 수 있고 계산을 직접 하지 않고도 물건만 가지고 나오면 계산이 된다.’ 그래서 저게 언제쯤 될까 되게 의구심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던 것 같아요. 실제적으로 지금 AI로 가상 시착 같은 것도 이제 많이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아마존에서도 아마존 고라고 마트에서도 계산 안 하고 물건 가지고 나가고 계산이 되고 있으니까 그때 그걸 들었을 때는 이게 되나라고 생각을 했지만 정말 이게 된다면 그런 것들이 꼭 패션에만 국한되지는 않겠다 라고 생각을 해서 그러면 나도 전문성을 그런 쪽으로 키웠을 때 내 스스로의 진짜 전문성도 가질 수 있고 미래에 봤을 때 조금 더 괜찮은 산업이지 않을까 해서 도전을 했던 거죠.

패션 유통 매장에서는 어떤 일을 하신 거예요?

길에서 보이는 옷가게 소매점 인 거예요. 판매도 하고 저희는 지방이었으니까 서울에서 사입하고 물건 내려와서 재고 정리하고 시즌에 맞게 팔고 가격 인하를 저희가 컨트롤 하고 저는 그걸 20살 때부터 했어요. 저는 하고 싶은 걸 다 해 봤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 매장에 취업을 하셨어요?

대학교를 다니다가요. 고등학교는 사실 공부를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저는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었고 친구들은 야자도 열심히 하는데 저는 안 하고.. 근데 너무 감사했던 건 저희 부모님은 그런 쪽으로 푸시를 많이 안 하고 믿어주시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지원해 주시고 그런 부분이 너무 감사해요. 근데 좀 무서웠던 건 ‘이 모든 선택은 다 네가 책임지는 거야. 근데 너 하고 싶은 건 해’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때도 공부 안 하니까 부모님이 ‘다른 거를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라’ 해서 요리학원도 다녔었고 피부 미용도 다녔었고 그랬지만 대학교는 의료 쪽으로 의료 방사선과를 갔어요. 그래서 보건 계열로 가니까 조금 많은 걸 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학교가 너무 안 맞으니까..

대학은 보건 계열로 갔지만 공부는 여전히 흥미가 없었다. 그 매장은 어떻게 취업을 한 건거예요?

원래는 자주 가는 가게였고 저는 그때 내가 멋있는 게 좋을 나이니까 너무 좋았고 그 가게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너무 좋았는데 구인 공고가 나온 거야. 바로 알바로 들어갔어요. 너무 재밌어 하니까 지원을 해 볼까? 학교보다는 조금 더 재미있고 저보다는 위의 레벨인 분들이 계셨으니까 나도 더 많은 걸 하고 싶은 거예요. 윗 레벨의 세계를 맛보고 싶은 거죠.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학교는 휴학했어요? 아니면 다니면서 알바를 했어요?

처음에는 수업을 쨌죠. 수업을 안 가고 하다가 학교보다 그게 더 좋으니까요. 원래 그 매장은 하나였어요. 거기서 열심히 했죠.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싫었을 것 같아요. 제가 일을 만드는 스타일이었으니까요. 왜 그렇게까지 하냐? 그래서 알바 하다가 그냥 이렇게 할 거면 정직원을 해서 내가 조금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몇 살이었어요? 그때는?

20살. 그래서 정직원에 들어갔죠. 거의 21살쯤 됐을 때였던 것 같아요. 일단 열심히 했죠. 너무 재밌었어요. 그때는 정말 재밌었고 일하시는 분들도 너무 좋았고 열심히 해서 사장님도 이게 잘 되니까 매장을 늘리고 해서 제가 3호점엔 22살 전에 매니저가 됐어요. 일반 매장 치고 좀 넓었어요 100평이었거든요. 저희 지역에서는 또 컸고

여니님이 말하는 저희 지역이 어디에요?

제주도요.


매장 일이 되게 좋았다고 했잖아요. 어떤 점이 그렇게 너무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옷들이 많이 있어서 좋았었는데 나중에 생각을 해 보니까 저는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하고 나로 인해서 너무 기쁘게 돌아갔을 때 더 기뻤던 것 같아요. 그런 거에 보람을 느끼나 봐요

그건 사실 여니님 때문이 아니고 그 사람이 산 옷 때문에 그런거 아닌가요?

하지만 내가 권해줬을 때 너무 좋다고 하고 아니면 다른 것도 해주세요 하면 저는 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그걸 권해줄 수 있고 뭔가 더 해줄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그러다가 어쩌다 핀테크 개발자가 되신 건가요?
의류 매장이 있다가 그런 일반 의류 매장은 체계가 없으니까 SPA 브랜드로 넘어가자라고 해서 거기도 두 군데를 유니클로랑 스파오에 있었어요. 특정한 계기라고 하면은 SPA 브랜드 들어갔을 때는 유리 천장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게 사실 제가 느낀 감정이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실력이 정말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노력을 했지만 뭔가 나오는 게 없었고 근데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것들이 결국 전문성인가 기술인가 조금 의문이 들었었던 것도 있던 것 같아요. 그런 서비스업은 기술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전문성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이 가지는 고유한 기술은 아닐 수 있으니까 그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미래 산업 얘기도 듣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다. 들으면서 나도 전문성 있는 거 갖고 싶다. 그러면서 나도 프라이드를 갖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게 IT였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드셔서 갑자기 개발 공부를 시작하신 거예요? IT 업계에 정말 다양한 직무들이 많은데 왜 그중에서도 개발자 공부를 시작하신거예요?

저희가 수기로 엑셀 같은 거를 정리하는 게 있어요. 근데 나중에는 그런 게 자동화가 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런 기술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이런 게 되는구나 그러면 나는?’ 약간 현타가 오는 거죠. 나 이때까지 약간 비생산적이지 않았나 생각 그러니까 이런(개발 같은) 걸 많이 알면 나중에 이런 것들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좀 강하게 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개발 공부를 어떻게 시작했어요?
제주에는 국비 학원도 없고 부트 캠프도 없고 그래서 제일 빨리 시작하는 학원을 연고 없는 곳에 갔어요. 부산. 아무도 모르는데 진짜 연고가 없는데로요. 처음에 수업을 못 듣겠는 거예요. 저도 사투리를 쓰는데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제주 선생님이 전화가 와서 수업은 괜찮으세요? 하는데 ‘선생님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이랬어요. 선생님이 사투리를 친구들이 보기에도 조금 심하니까 수업을 들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건 일로 드가고” 하는데 드가고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제주도도 사투리를 쓰지만 제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거랑 선생님도 남자분인데 높고 빨라요. 캐치를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힘들었지만 나중에 적응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통역을 하고 그래서 적응을 했어요.


제주에서 부산으로 개발 공부하러 유학을 간 거예요.
부산에서 수료를 하면 저는 제주에 취업을 할 생각이었거든요. 선생님께서 극구 반대를 하시는 거예요. 저한테 “서울을 1년만 가봐” 그러니까 저는 처음에 되게 반감이었어요. 왜냐하면 나 이거 빨리 하고 제주에도 산업단지가 있단 말이에요. 산업 단지에도 취업을 할 수 있으니까 집에 강아지도 있고 제 차도 있고 집도 있고 그러니까 사실 저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선생님이 진짜 저를 제가 맨날 남아서 한 시간씩 뭘 했거든요. 복습을 하고 갔어요. 근데 계속 와서 저한테 꼭 1년을 서울을 꼭 가라 꼭 가라. 나중엔 그냥 ‘예, 가야죠’ 뭐 이러고 근데 진짜 가야 되나 라고 했을 때 선생님이 설득을 되게 잘해 주신 게 인프라 네가 이렇게 누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고 어쨌든 너의 시야가 달라지니까 1년이라도 있다가 돌아가.

좋은 선생님이네요. 모든 학생들한테 그런 거예요? 여니님한테만 특별히 더 그랬나요?

저한테만 그랬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타지에서 왔던 걸 알고 선생님도 좀 다르게 보셨던 것 같아요. 어쨌든 여기 부산 친구들은 좀 마인드가 달랐던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그 친구들은 집도 근처고 사실 너보다는 조금 가벼운 마음일 수 있다. 근데 네가 정말 잘 되고 싶으면 딱 1년만 있어.

남아서 매일 한 시간씩 열심히 하고 이걸 하겠다고 제주에서 왔다고 하면 저 같아도 더 관심을 가지고 얘기해 줄 것 같네요.

감사하죠. 그래서 취업 딱 1년 지나고 동기들도 서울에 취업 몇 명 했거든요. 같이 내려가서 선생님 맛있는 거 사드리고 그랬어요.

부트 캠프를 어느 정도 기간이나 다녔나요?

6개월 했죠. 국비 교육이었거든요. 수료하고 이력서를 정말 많이 넣고 준비도 했지만 취업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다 어려웠고 그래도 저희 친구들끼리 ‘그래도 우리 인도 버스에 매달렸다’라고 해서 취업해서 같이 서울 온 부산 동기들이 있어요.

여니님은 개발 공부가 맞으셨나 봐요.

의류 매장에 있으면서 일을 할 때 제가 일해왔던 방식과 비슷하다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희도 큰 행사 같은 거 있을 때 SPA 브랜드 기준으로 했을 때 어떻게 이번 행사의 전략을 잡고 어떻게 레이아웃을 짤 것이며 어디에 어떤 상품을 넣고 그럼 얘는 몇 피스를 확보를 해야 되고 주변은 어떻게 하고 있고 다른 점포나 이런 분석들을 하고 그리고 작업을 누구한테 분배해서 언제까지 끝낸다라고 약간 이런 거를 먼저 잡고 들어가기 때문에 저는 개발하면서 약간 비슷하지 않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을 굉장히 좋아하고 잘 하나 봐요.

잘은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일에서도 목표가 있으면 최대한 해내려고는 하는 편이고 과정이 어쨌든 일단 아웃풋을 내려고는 최대한 노력을 하고 아웃풋을 내고 그렇게 일을 하면 그렇게 일을 하는 제 모습이 좋아요. 검은 화면에서 나 좀 괜찮은 것 같아. 나 이거 너무 좀 멋있는 것 같아. 내가 저번 달에 이거 잘 못했는데 나 좀 많이 컸다.

지금 백엔드 개발하세요?
풀스택이요. 사실 백엔드로 입사를 했는데 규모가 작으니까 어쩔 수 없이 조금 많은 걸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래도 백엔드가 조금 더 좋은 것 같아요. 저한테 맞다. 프론트의 화면 설계는 자신이 없는 것 같고 백 단을 만들 때 설계가 화면 설계보다는 좀 더 잘 서는 것 같아요. 제가 N이니까 그런 게 도움이 되는 게 있어요. 케이스를 뽑을 때 저희는 QA 같은 걸 저희가 하거든요. 그랬을 때 상상력이 풍부하니까 로직을 짤 때 제가 다양한 케이스를 잘 뽑을 수 있어요. 근데 조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너무 멀리 가니까 사수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돼 라고 잡아와 주시죠.


패션 쪽에서 갑자기 핀테크는 너무 다르잖아요. 넣다가 보니까 나의 운명이 핀테크였던 건지 아니면 애초에 핀테크 위주로 넣으셨는지 궁금해요.
전자였어요. 넣다 보니까 핀테크. 그래도 내가 하면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부분 위주로 넣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실 나로 인해서 편해질 수 있는 거 저는 그게 제일 보람이 있다고 느낄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핀테크 쪽이 사람들이 편리함을 크게 느낄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셨어요?

네 그렇죠. 그리고 사실 저희가 사용하고 있는 페이류도 어쨌든 확장이 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요즘에는 어른들도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사람을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뿐이지 내가 어떤 태스크를 완료를 해서 그걸 누군가 써서 편리함을 느꼈을 때는 그것도 그냥 대면하지 않을 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원래 외로움을 잘 안 타시죠? 저도 원래 부산 출신이니까 제 친구들이 다 대학을 서울로 올라오면 부산에 비해서 서울도 또 인프라가 더 좋거든요. 그래서 좋다가도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도 분명히 있는데 그런 걸 안 느끼고 즐거운 것만 얘기해 주셔서 애초에 외로움을 잘 안 느끼시나 싶기도 해서요.
저는 집에 있으면 가족들이랑 있고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제주에 있으면 친구들도 많고 가족도 있고 하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했던 같다라고 여기 오니까 느꼈어요. 사실 여기 와서 혼자 있으면서 외로움보다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인 것 같아요. 혼자 있으니까 어떤 결정이나 진짜 작은 거 하나를 살 때도 그냥 내 기준으로만 봤을 때는 되게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되게 신기했어요. 뭔가 제가 알지 못했던 저를 아는 느낌

제주에서는 물건을 살 때도 가족을 같이 생각했어요?
장을 볼 때라도 같이 먹을 것들 아니면 같이 쓸 거니까 좀 많이, 이런 거 생각했는데 혼자 있을 때 많은 건 조금 불필요한 공간도 차지하니까 차라리 조금 더 적게 사도 되겠구나. 이런 거를 처음 느껴보니까 되게 좀 색다른 기분

일하는 여니님이 조금 더 알고 싶은데 여니님이 만나보고 싶은 상사나 팀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어떤 팀에 제가 속해 있을 때 소속감을 느끼고 나한테 미션이 주어지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뭔가 피드백도 지속적으로 되고 그리고 비전을 심어줄 수 있으면 저는 뭔가 그 자리에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좀 계속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사라고 하면 업무를 알려준다든지 그런 거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줄 수 있잖아요. 그리고 또 그런 방식에선 뭔가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부합하면 좋겠다. 그리고 사실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피드백을 줄 때 부정적인 피드백만 주는 사람도 있고 또는 당근과 채찍 둘 다를 번갈아가면서 주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회사에 있을 때 ‘아 나는 당근도 좀 먹어야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구나.’ 사실 채찍을 좀 많이 맞았던 것 같아요.

패션 유통 매장에 있을 때 일을 굉장히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했다고 했잖아요. 그때 상사가 있었어요? 그때 상사하고 지금 업을 바꿔서 IT 쪽에서 있는 상사 혹은 기대하는 상사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나요?

즐겁지만 다른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기술이라는 뭔가 알아야지만 뭔가 만들 수 있는 건데 근데 의류 매장은 뭔가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단 말이에요. 뭔가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습득의 차이인 것 같아요. 어쨌든 저도 노력을 하지만 이미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랬을 때 그런 사람들한테 더 기회가 많이 주어졌던 것 같고 제가 느끼기에 그러니까 약간 많이 꺾였던 것 같아요.

션 쪽에 있을 때를 얘기하는 여니님과 지금의 여니님이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서 차이가 있는 게 맞나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지? 이게 그냥 궁금해서 단순히 물어보는 거에요.

생각을 해보면 다른 점은 일단 하드 스킬들이 중요한 거. 근데 내가 그 역량을 위에서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았거나 모르고 있을 땐 업무에서 배제를 당할 수 있거나 또는 뭔가 계속 말로 꺾는 그런 상황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직무 전환을 하면서 일 자체는 너무 좋지만 그런 상황들이 좀 많이 속상했고 그랬던 것 같아요. 어쨌든 비전공으로 넘어오신 분들은 그러실 것 같아요. 전공자 분들은 많이 배우셨을 거고 근데 상대적으로 너무 짧은 기간에 왔으니까 그런 부분을 채워 나가야 되는데 사실 일을 하면서 채우려면 본인이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였을 때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조급한 것 같기도 하고 저 사람들이랑 이미 격차는 벌어진 것도 같고 나는 할 게 너무 산더미 같이 보이니까 근데 저도 다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 전공자분들도 많이 채워야 한다고 말씀을 하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럼 난 몇 배를 채워야 되는 걸까?’라는 약간의 부담감이 있는 것 같아요.

2024년 자기를 표현한 키워드로 ‘재정의’를 얘기해 주시면서 많은 기준이 바뀌었다라고 하시길래 그 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좀 궁금했어요.

그 기준이라는 게 단순히 일만 정의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저에 대한 정의도 알게 됐고 제가 어쨌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나는데 그런 모습에서 나도 모르던 나를 알게 되기도 하고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라는 다짐도 하게 되고, 할 말도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개발 직군에 들어왔을 때 팀 간의 협업이라든지 뭔가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 해주고 좋은 피드백 주고 받고 그런 걸 상상을 했는데 내가 처한 현실은 아직 내 이상과는 너무 머니까 그럼 나는 이런 기준들을 겪어봤으니까 다음에는 조금 더 규모가 크고 협업을 할 수 있고 어떤 프로세스가 정의되어 있고 업무에서 어떤 문화가 정기적으로 있고 그런 기준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사실 그러니까 조금은 다양한 세계를 접해보고 싶은 마음인 거예요.

여니님 고향이 제주도라고 해서 궁금해요. 제주도는 뭐가 좋아요?
저는 수영 좋아해서 바다 수영하는 거 좋아해요. 저희는 고등학교 때 친구 집 바로 옆에 방파제가 있거든요. 그러면 옷만 가져와가지고 교복 바로 갈아 입고 합류해요.

제주가 고향이고 가족이 있으니까 돌아가는 게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육지로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안 한 건지가 궁금했어요.

육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실 가고 싶었는데 조금 익숙하니까요. 다 뭔가 세팅 되어 있고 여기로 올라왔을 때는 제로잖아요. 그랬을 때 제가 그렇게 는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정말로 여기 오래 살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모든 게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부모님은 저를 또 강하게 키우시기 때문에 제가 다 모든 걸 알아보고 그랬죠. 처음에 취업 준비할 때는 확실히 여기 살 수 있을지 모르니까 친구 집에서 한 달 신세를 졌어요. 나 여기서 한 달 하고 안 되면 제주도로 갈게. 근데 그 안에 된 거예요. 그 안에 했고 그래서 취업하자마자 바로 집 구하고 제주 짐 미리 싸놨거든요.


제주도민이 제주도에서 좋은 자연이나 뭔가를 즐기고 싶을 때 가는 장소가 있나요? 육지 사람은 잘 모르는 여니님이 즐겨 가는 어떤 장소라든가

저는 드라이브 좋아해요. 해안도로. 한라산을 넘을 수 있는 도로가 있고 거기를 창문 내리고 달리면 그 피톤치드 향이 엄청 들어와서 서귀포 갈 때 이렇게 넘는 것도 좋고 아니면 바깥으로 돌 수도 있는데 저희 집은 애월 쪽 초입이라서 이렇게 가면 그 풍차 해안도로 있는 곳도 있고 신창 풍차 해안도로 있고, 아니면 애월의 한담 해면. 사실 저는 서쪽이 바다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곽지라든지 물이 되게 맑고 초록 파랑 아니 투명하고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해가 질 때 더 예뻐서 그렇치 그니까 윤슬이라든지 반짝반짝하게 노을빛에 붉게 이렇게 들어오는 바다가 정말 예뻐요.

여니님 오늘 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셨어요?
저는 저번 시월애 행사를 통해 가지고 참여를 하게 됐는데 저는 일을 하면서 뭔가 계속 채워야 될 것만 같았어요. 제가 스스로 노력하는 뭔가도 있지만 뭔가 모르겠다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거든요. 올해 들어서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고 그런 부분을 좀 채우려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했어요. 그래서 기술 세미나라든지 여성 어떤 세미나 모임 그런 것도 들었었는데 사실 그런 것들은 좀 일방적인 것 같았어요. 인간미, 약간 마음을 나누는 그런 것들이 없으니까 사실 내가 고민이 있어도 진짜 그런 하드 스킬, 뭔가 이렇게만 하면 돼라고 했지만 사실 제가 어떤 가진 상황에서 그게 다 맞지 않을 수 있잖아요. 저도 노력을 했지만 일방적인 소통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것들만 들었을 때 노력은 하지만 아직도 답답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월애 참여하고 세션들을 들으면서 좀 울었어요. 너무 울면 안 되니까 너무 이상하니까 진짜 꾹꾹 참으면서 진짜 근데 그 세션들이 되게 저한테 그때 필요했던 말들이었거든요.

근데 원래 잘 울어요?
잘 울지 않게 되었거든요.

원래는 잘 울었는데 잘 울지 않게 됐다가 시월애 때 다시 빵 터졌다?
성함을 말씀드려도 되나요? 먕님이 그 세션에서 뭐라고 하셨냐면 3년 차 이하 저연차 친구들은 출퇴근만 해도 잘하는 거다. 저는 계속 확신이 안 들었던 거예요.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내가 그래도 이게 바른 길 이렇게 정도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돌아갈 수 있잖아요. 많이 돌아갈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돌아가는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라고 좀 많이 헷갈렸거든요. 근데 먕님의 말씀을 듣고 출퇴근만 하는 것으로 이미 잘하고 있대요. 거기서 그냥 수도꼭지가 펑 터진 거예요. 힘들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잘 하고 있는 거구나. 그냥 계속 하던 대로 하면 언젠가 나도 뭔가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되게 마음이 많이 위로가 됐고 이후에 따로 모이면서도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 이후에도 제가 개인적인 상황들을 공유를 하면서 서로 솔루션을 해주고 서로 보듬어주고 그런 상황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아무튼 앞서 뭔가 해주셨던 언니분들도 계실 거고 지금 하고 계시는 언니분들도 계실 거고 다 감사하고 최고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니님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씀 해 주셨는데 오늘 이렇게 차 한 잔 마신 소감 얘기해 주세요.

사실 저는 먼저 요청을 주셨을 때 제가 가도 되는 자리인가 좀 많이 고민을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다 비슷하게 살지 않을까 조금 더 하거나 조금 덜 하거나 그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그래도 지금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고 뭔가 이런 상황들이 있고 이런 어려움이 있거나 아니면 이런 것들이 고민이다라고 했을 때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고 뭔가 누군가는 힌트를 얻거나 누군가는 자기 상황에 적용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너무 잘하셨어요. 오늘 너무 즐거웠고 다음에 제주도민 친구분을 꼭 한 분 더 아이티백에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울 친구라도 데려오겠습니다.



CREDIT

오잉

인터뷰 뚜까, 찌니, 오잉


인터뷰 전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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