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 민선
2016년에 왜 여성이 드러나지 않는가에 대해서 담론이 있었던 때였어요. 그런 담론을 통해서 이 행사까지 왔는데 ‘안 할래요’하고 넘어가기엔 아쉬울 것 같아 가지고 인터뷰를 했는데 그걸 계기로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진 거죠.
저는 성격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없고 항상 일상이 잔잔한 편이어서 일기 같은 글은 그냥 똑같아요. 특별한 게 없어요. 일주일 내내 출근했고 퇴근했고 집에 왔다 쓰다가 이걸 쓰는 게 도움이 될까. 흐름을 보려고 쓰는 건데 흐름이 안 보이니까 그래서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나서는 것도, 말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듣는 거 좋아하는데 행사를 굳이 열어가지고 사람들을 모으고 이 힘든 일을 왜 했지라고 생각하니까 아이(I)긴 한데 용감한 거예요. 판을 벌려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판을 벌리고 꾸역꾸역 다 했는데 하고 나니까 힘들긴 한 거죠.
오늘 민선님을 모셨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디자이너 김민선이라고 소개하겠습니다.
민선님의 커리어 얘기 들어보고 싶은데요. 첫 회사는 어떤 회사셨어요?
에이전시에서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시작을 했고요. 첫 회사에서 4년 정도 쭉 근무를 했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시니어까지 올라갔다가 어느 정도 한계점이 많이 느껴져서 직무를 좀 바꿔봐야겠다 해서 프로덕트 디자이너 쪽으로 직무를 변경해서 이제 4년 차 접어들고 있습니다.
인터랙션 디자이너는 어떤 일들을 하는 직무예요?
요즘에는 조금 다른데 그때 당시에는 누군가가 화면을 그려주면 그 화면을 움직이는 일을 했어요. 단순하게 말하면 그게 냉장고나 가전에 들어가는 화면일 수도 있고 모바일 앱일 수도 있고 어쨌든 간에 우리가 디바이스에서 보는 제품들을 실제로 만들기 전에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실제로 터치도 해보고 센싱도 해보고 하면서 이 제품의 UX/UI가 어떤지 혹은 실제 사용성은 어떨지를 테스트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일을 주로 많이 했습니다.
전공은 디자인하신 거예요?
전공은 미디어 디자인을 했는데 그때 당시에는 제가 배웠던 수업이 세 트랙인데 인터랙션 디자인은 그 세 트랙을 조금 야금야금야금 섞어서 만들었다고 보면 될 정도로 제가 전공을 했던 부분을 단일 파트만 쓰는 게 아니라 세 가지 다 쓸 수 있는 디자인이어서 선택을 하게 됐어요.
인터랙션 디자인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결심을 하신 거예요?
졸업을 할 때 세 가지 트랙 중에서 하나만 고르는 게 당연시 되다 보니까 나는 이 세 가지를 좀 잘 다 써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한 가지가 아니고 이걸 다 조금씩 써볼 수 있을까 찾아보던 중에 졸업할 당시에 마이크로 인터렉션이라고 해서 GIF 이미지가 떠돌아 다녔는데 그걸 보면서 ‘아 이거를 하면 되겠다’ 제가 배웠던 UX/UI나 모션 그래픽이나 코딩 같은 것들을 다 접할 수 있는 분야다라고 생각을 해서 그때 결심을 하고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시작을 하게 된 거에요.
인터랙션 디자이너는 모션 그래픽도 해야 되고 UI/UX도 해야 되고 코딩도 할 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걸 완벽하게 100% 하는 게 아니고 UX/UI를 알아야 얘를 움직일 수 있고 모션을 할 줄 알아야 또 움직일 수 있고 그리고 코딩을 할 줄 알아야 개발자한테 이 움직임을 어떻게 전달해야 되는지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세 가지를 적절하게 다 사용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미디어 아트라고 하면 예전에 코엑스에서 파도 치는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미디어 아트 하면은 사이니지 큰 전광판에 뭔가가 막 튀어나오는 것 같고 이런 것들 물론 그것도 미디어 아트인데 제가 배웠던 것들은 실제로 관객들이랑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것들 그래서 단순하게는 화면에 터치를 해야만 작품이 작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관람객이 와가지고 팔을 흔들던지 몸에 포징을 한다든지 하면 그걸 센서가 인식해서 작동을 한다든지 그래서 이런 것들이 조금 더 큰 범위에서 봤을 때 포함이 되는 분야 입니다.
미디어 아트 작가를 하고 싶으셨어요?
관심이 되게 많았어 가지고 제가 했던 동아리가 팡새라는 이름으로 있는데 팡새 동아리가 그런 미디어 아트를 중점적으로 했던 동아리예요. 그래서 졸업을 하고 난 다음에도 한 2년 정도는 같이 작품 만들고 전시도 하고 그랬었는데 다들 생업이 있어야 되니까 직장인이지만 작업을 하는 그런 식으로 진행을 했었죠.
미디어 아트 작가로 생각하셨었는데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취업을 하신 이유는 생업을 위해서 인가요?
그것도 있지만 뭐랄까 제가 작가를 하기에는 좀 깊이가 없다고 느꼈어요. 주변에 작가로 아예 전환한 친구나 선배들을 보면은 한 우물을 되게 깊게 팔 줄 알아야 자기의 작가 세계가 나오는데 저는 그 당시에 여기까지는 못 들어가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건데 내가 이걸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취업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다가 에이전시로 취직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신 거예요.
그때 당시에는 제가 에이전시를 가겠다가 아니고 인터랙션 디자이너 뽑는 데를 가야겠다 그렇게 접근을 했어요. 인터랙션 디자이너 지금도 풀(Pool)이 많지 않은 직업인데 그때 당시는 더 적었기 때문에 인터랙션 디자이너를 뽑는 회사가 손을 꼽았어요. 그래서 거기에 다 지원했는데 에이전시였던 회사가 저를 불러주셔서 거기에서 근무를 하게 된 거죠.
어떠셨어요? 잘 맞으셨어요?
네, 잘 맞았어요. 잘 맞았고 재미있게 잘 했습니다.
4년을 다니시니까 한계를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한계가 느껴지셨어요?
에이전시 특성일 수도 있고 당시 인터랙션 디자인하는 직무의 특성에서 온 한계일 수도 있는데 모션을 입히려고 하면 의도가 있어야 돼요. 이 버튼이 왜 눌려야 되고 이 이미지 리스트가 왜 움직여야 되고 이런 것들이 의도를 갖고 해야 되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 의도를 갖고 만든 화면을 움직이게만 하니까 깊이가 없어지는 거예요. 나중에 되게 기계적으로 그냥 코드 짜서 움직임을 심고 그게 끝이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제가 남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내가 의도를 담은 화면에 내가 움직이는 게 훨씬 더 좋은 퀄리티가 나오겠다 라고 생각을 해서 그러면 화면을 움직이는 거 말고 화면을 일단 그리는 거를 해야겠다 해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직무를 바꾸게 된 거예요.
인터랙션 디자이너로서 에이전시에서 일을 하시다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전향하셨는데 다음 회사는 어떤 회사였어요?
두 번째 회사는 핀테크 회사였어요. 이제 막 나오던 프로덕트였고 그래서 화면을 좀 많이 고치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유지 보수를 하면서 개선을 해가는 정도의 프로덕트였어요. 그래서 제가 신규로 작업을 할 분량은 많지 않아서 오히려 조금 더 좀 편했죠. 왜냐하면 제가 화면을 그리던 일을 처음 해보는 거니까 디자인 시스템을 파악해서 그 시스템을 활용해서 화면을 그릴 수 있었는데 시스템부터 만들려고 하면 좀 어려웠을 건데 거기서는 시스템은 이미 있었고 이걸 활용해서 화면을 설계하는 일 정도다라고 해서 좀 잘 맞았어요. 그리고 제가 화면만 설계한 게 아니고 하던 버릇이 있다고 해야 되나 그래서 화면 설계하고 인터랙션까지 다 설계를 해가지고 개발자분들이랑 소통을 잘 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괜찮게 봐주셨어요.
에이전시에 계실 때는 다양한 거 하시다가 핀테크라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고 정적일 수 있는 도메인을 옮기셨는데 그 부분은 어떠셨어요?
핀테크이긴 했는데 캐릭터도 나름 있었고 해서 사용자들한테 친근하게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이 좀 많았어요. 그래서 엄청 딱딱하다기보다는 캐릭터도 제가 캐릭터 움직임을 좀 준다든지 아니면 다른 UI의 움직임을 줘서 좀 더 재미있는 요소로 바꿀 수 있는 게 많았어서 오히려 좀 괜찮았던 것 같아요. 핀테크였어도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을 하시면서 기획의 의도를 갖고 싶다라는 그런 한계는 많이 해소되셨나요?
오히려 좀 더 넓어진 게 느껴지는 게 화면만 그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전향을 하긴 했지만 요즘 추세가 디자이너가 기획도 같이 해야 되는 거다 보니까 기획도 같이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다 할 수는 없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서 기획을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는 있었죠.
그다음에는 어떤 회사였어요?
정신 건강 관련된 멘탈 헬스케어 프로덕트였는데요. 그 서비스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제가 그 이전에서 핀테크를 하면서 화면 설계나 이런 거에 좀 익숙해져서 그다음 회사인 멘탈 헬스케어 서비스에서는 화면도 직접 제가 다 설계를 하고 시스템도 정리를 하고 인터랙션 구조도 설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직전 회사인 거기에서 오히려 더 넓어져서 기획도 거의 같이 하는 수준으로 많이 작업을 했고 디자인 작업한 다음에 개발자한테 넘기는 것까지 그래서 폭넓은 플로우를 제가 가지고서 일을 했었어요.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여쭤봤을 때 전에는 일 자체를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하는 일 자체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라고 적어주셨는데 그 회사에서의 경험 덕분일까요?
제가 에이전시에서 일했을 때는 저한테 와닿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어 냉장고든 TV든 이런 프로토타입을 해도 제가 뭔가 릴리즈 하는 게 아니고 그래서 큰 프로젝트에 들어가도 그냥 그게 끝인 거예요. 그리고 제가 핸드오프 하면 클라이언트사 안에서 또 어떻게 프로세스가 돌고 하는 건지는 모르다 보니 그래서 핀테크로 와서 사용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것들을 보면서 디자인하는 거를 좀 그때 익혔고 아 이게 중요하구나. 이 다음 단계에 내가 디자인하고 나서 어떻게 됐고 그리고 이걸 어떻게 쓰고 피드백 받고 이거 정말 중요하다라고 느꼈고 멘탈 헬스케어 쪽 도메인으로 옮겼을 때는 단순하게 사람들이 잘 쓰는 게 아니고 이걸 써서 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도메인이 되면 좋겠다를 차근차근 익히게 된 것 같아요.
나로 인해서 일이 편해졌다 이런 얘기 들어서 좋았다고 하셨는데 내가 일을 잘하는 것이 저 사람의 일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이런 것까지 다 생각하면서 일을 하시는 편인 거예요?
그거를 몰랐는데 이번에 퇴사를 하면서 코멘트를 받다 보니까 그런 코멘트를 좀 많이 받았어요. 아무래도 인터랙션 디자인 경험 때문에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인터랙션 디자인을 하다 보면은 앞뒤에 있는 사람들이랑 계속 진동하면서 바꿔줘야 돼요. 예를 들어 UI가 1세트 왔는데 제가 막 하고 있는데 피드백을 받아서 다시 업데이트된 UI가 온다든지 하면 다시 의도를 물어보고 이런 것들도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되고 그리고 바뀐 것을 제가 적용을 하면 왜 이걸 이렇게 적용했는지 또 딜리버리를 해야 되다 보니까 앞뒤에 있는 팀한테 되게 영향을 많이 주고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게 좀 버릇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 때문에 다른 팀에 가도 기획자가 뭐가 어려워하면 왜 어려운지 물어보고 개발자한테 이렇게 하면 쉬운지 또 물어보면서 제가 한 작업 들을 또 왔다리 갔다리 하게 되는 거죠.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 침묵의 비중이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는데 혹시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그걸 본인이 느끼고 계신지 궁금해요.
원래가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닌데요. 오히려 일을 할 때는, 일할 때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좀 필요한 말만 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 말은 필요해, 이 말은 필요 없어라는 판단을 그냥 자연스럽게 하신다는 거잖아요.
네
민선님은 평소에 얘기하실 때 뭔가 어려움이 있으세요? 나 스스로 얘기하기 어렵다 이런 걸 느끼신 적 있으세요?
그것보다는 뭐라고 해야 될까? 저는 이렇게 제가 껴서 말을 하는 것보다 관람하는 걸 좋아해요. 다른 사람들이 얘기를 신나게 하고 있으면 어 하면서 잘 들어주는 편인데 그러던 와중에 제가 이 얘기는 내가 하고 싶다라든지 저 얘기는 아닌데라든지 해서 어떻게든 제 의견을 말해야 될 때는 거기에 껴가지고 얘기를 하는 편인 거죠. 그래서 말을 안 하는 것도 있지만 보통 그렇게 관람하는 느낌으로 그걸 보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이 의사소통 어떻게 하고 이 사람의 버릇은 뭔지 이런 것들. 그런 걸 좋아해서 제가 말을 잘 안 하지만 또 그런 자리는 좋아해서 말 많이 하는 분도 진짜 좋아해요.
ISTJ라고 적어주셨는데 아이(I)의 성향이 조금 높으신가요?
저는 ISTJ에 거의 90%가 몰려 있어요. 다 극단적으로 몰려 있어서
아이(I)인 친구들한테 항상 물어보는 것 중에 하나인데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든지, 있는 건 괜찮은데 네가 여기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싫은 건지 이게 궁금한데 민선님은 어떤 스타일이세요?
저는 그냥 있을 수 있어요. 저는 좀 용감한 아이(I)인 것 같아요. 제가 과거에 행사를 하나 열었었는데 행사 회고를 쓰다 보니까 내가 이걸 왜 했지라는 생각이 막 드는 거예요. 앞에 나서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듣는 거 많이 좋아하는데 행사를 굳이굳이 열어가지고 사람들을 모으고 이 힘든 일을 왜 했지라고 생각하니까 아이(I)긴 한데 용감한 거예요. 뭔가 판을 벌려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판을 벌리고 어쨌든 꾸역꾸역 다 했는데 이제 하고 나니까 힘들긴 한 거죠.
그 행사 뭔지 여쭤봐도 되요?
제가 작년에 2개 했는데 괄호 밋업이라고 해서 그때는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세 직무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너희들끼리 잘 놀아봐. 그래서 팀도 짜주고 네트워킹 주제도 만들어주고 해서 그때 오신 분들이 되게 친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렇게 행사를 하고서 행사 당일 날 다른 분들은 너무 분위기가 좋았어요. 저는 너무 힘든 거예요. 참가자분들은 너무 신나서 뒷풀이를 가셨어요. 저를 막 부르시는데 주최자는 집에 가고 나머지는 다 뒷풀이 가셔서 놀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인터랙션 디자인 좋아해서 그걸 가지고 행사를 또 만들었는데 그건 연사가 필요해서 저 포함 3명을 연사로 세워서 사람들한테 인터랙션 디자인 관련해서 얘기를 하고 해산하는 그런 행사를 했었어요.
인터랙션 디자인 세미나는 민선님의 경력이나 이런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데 밋업은 어쩌다 주최하시게 되신 거예요. 뭔가 관찰하고 싶어서?
네
진짜요?
저는 그러니까 제가 직접 나서서 디자인 얘기하고 기획 얘기하고 이런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기획 얘기 무슨 얘기하고 무슨 디자인 얘기하고 무슨 개발 얘기하고 이거 듣는 게 더 좋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스피커들을 모은 거죠. 말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저는 그때 뭐 했냐면 테이블이 6개였는데 6개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얘기를 들었어요. 조금씩 반응은 했지만 주로 이렇게 끼지 않았고 계속 그렇구나 하면서 들으러 다녔어요.
제일 기억나는 순간이 있어요?
디자이너시긴 한데 저희처럼 어떤 프로덕트를 담당해서 하시는 IT 디자이너가 아니신 분이 오셨어요. 그래서 그분은 노션 이런 거랑 되게 친밀하지도 않으시고 해서 아직 엑셀 쓰시고 그다음에 손으로 많이 작업을 하신다고 해서 ‘아니 이분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지’ 하면서 되게 신기해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분이 나눠주신 경험이 되게 신기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노션도 알고 그러니까 IT 업계에서 온 사람들은 다 익숙한 얘기들을 하는데 그분 혼자서 되게 어렵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 테이블에 있던 분들 우리가 되게 IT에 너무 녹아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언어를 쓰고 있구나 우리끼리 그래서 막 말하다가 리소스 했다가 이게 아니고 인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순화를 막 하면서 대화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좀 신기했어요.
강의도 하시잖아요. 근데 강의는 내가 계속 얘기해야 되는 거잖아요. 힘들지 않으세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근데 제가 몇 회 계속 했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넣을 건 넣고 이런 게 조절이 되다 보니까 제가 말을 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말을 하고 실습 시간이나 이런 것들을 사이사이 넣어서 저의 목을 좀 아꼈다가 또 말을 막 하고 이런 식으로 구성을 바꾸게 되더라고요.
민선님은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한테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는 분 같은데 원래부터 그러셨는지 아니면 이 업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익혀진 에티튜드인지 궁금해요.
저는 일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4년 동안 일하면서 팀장님한테 이런 태도를 좀 많이 배웠어요. 그전에는 거의 그런 태도가 없었죠. 근데 일을 할 때 이 사람한테 어떻게 전달해야 되는지 아니면 어떻게 소통을 해야 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태도를 그분한테 좀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분이 뭔가 특별히 가르쳐줬다기보다는 민선님이 관찰을 통해서 알아낸 건가요?
관찰도 있는데 체화도 한 거죠. 왜냐하면 그분이랑 같이 일을 하려면 그걸 익혀야 되니까 그 에티튜드를 익혀서 그 팀장님이랑 일을 해야 했으니까 배우기도 배웠고 관찰도 하면서 ‘아 이때는 이렇게 푸는구나’ 이런 것도 좀 알 수 있고 그랬어요.
민선님은 아끼는 후임이 생기면 어떤 조언을 해 주실 것 같으세요?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일하면서 만난 좋은 상사나 후배 동료는 어떤 사람인지 안 써주셨는데 이유가 있으세요?
큰 이유는 없고요. 너무 장황하게 쓰게 될 것 같아서 안 썼어요. 아까 잠깐 나왔던 그 팀장님도 4년 내내 같이 일했으니까 그분 얘기를 해도 끝이 없고 또 최근 직장에서 만났던 기획자분이나 개발자분 얘기도 적자면 또 계속 적을 것 같아가지고
일기를 쓴다거나 글을 쓰는 취미 비슷한 그런 것들이 혹시 있으세요?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지속성이 없어 가지고 그래도 꽤 오래 쓰긴 했는데 최근에는 안 쓰는 편이고요. 글은 가끔씩 정보성 글을 씁니다. 기억해 놔야 되는 정보들에 대한 거. 제가 어떤 밋업에 갔다 왔으면 밋업 후기라든지 뭐에 참여했으면 참여한 후기 같은 것도 쓰고 아니면 그냥 생활 속에서 이사를 했는데 알아야 되는 것들에 대해서 정리를 한다든지. 미디엄에는 커리어 관련된 거 좀 쓰다가 요즘에는 안 쓰고 있는데 그런 건 그쪽에 모아놓고 다른 정보성 글은 포스 타입이라는 거기다가 올려놨어요. 저는 성격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없고 항상 일상이 잔잔한 편이어서 사실 일기 같은 글은 그냥 똑같아요. 특별한 게 없어요. 그래서 쓰다가 한 일주일 내내 뭐 했다 출근했고 퇴근했고 집에 왔다. 크게 그런 게 없어서 쓰다가 이걸 쓰는 게 도움이 될까. 흐름을 보려고 쓰는 건데 흐름이 안 보이니까 그래서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일상 자체가 감정까지 포함해서 고요하다는 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다는 생각이 좀 드는데 많이 화날 때나 이럴 때가 있나요?
저 근데 화는 좀 있거든요. 있는데 표출을 잘 못해요. 표현을 잘 못해서 그럴 때 좀 작업에 몰입한다든지 아니면 글로 막 쓴 다음에 글을 지워버려야지. 이거 너무 화가 났고 이런 건 화가 났고 이 짜증 나는 것들 막 쓰고 그냥 지워 버려요.
언제 제일 행복하세요?
잘 때. 하루가 다 끝나고 샤워하고 딱 이불 덮었을 때가 요즘은 제일 좋아요.
왜 행복 여쭤봤냐면 고양이 키우시는 것 같아 가지고 고양이는 어떤 성격이에요?
저희 집 고양이는 착한데 참지 않는 고양이. 착하다고 느끼는 점은 고양이들이 되게 까탈스러운 성격이면 뭔가 만지거나 이렇게 좀 스킨십을 했을 때 싫어하는데 가만히 있어 주거든요. 제가 스킨십을 하거나 뽀뽀를 한다든지 냄새를 맡는다든지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 댄다든지 하면 가만히 있어줘요. 근데 자기가 뭔가 화가 나거나 마음에 안 들거나 하면 또 화를 엄청 내고. 그래서 저희 집 고양이는 대표적으로 화낼 때가 밥 먹고 싶을 때 화내고 나 지금 배고프다 하면서 막 소리를 질러요. 그러면 밥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금 밥을 주면 또 잦아들고, 요즘에 또 환기를 좀 시키면 추우니까 춥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막 뛰어다니거든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따뜻하게 해 주니까 얌전해져서 환기할 때는 따뜻하게 해주고 환기를 좀 시켜요.
요즘 시간과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게 피크민 블룸이라고 하셨어요. 아이티백이 피크민 블룸 유행의 시초인 거 아시나요?
정말요?
민선님은 피크민블룸 언제부터 하셨어요?
안 지는 꽤 됐는데 외면하고 있었어요. 하면 되게 잘할 것 같아 가지고 그러니까 제가 빠져들 것 같아서 외면하고 있다가 이 외면을 좀 거둬야겠다 해서 다운을 받았고 예상대로 엄청 빠져들어 가지고 이 가방에에도 인형이 있어요.
어떤 점에서 빠져들 것 같으셨어요?
이 게임 좋아하는 분들은 보통 수집력이 있는 것 같아요. 꽃들 모으려고 피크민 자체를 모으는 거에 열정이 있다고 해야 될까요? 이 게임에서 수집할 수 있는 게 피크민 자체를 수집하는 거랑 꽃 수집하는 거랑 그다음에 엽서라는 걸 수집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수집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잘 빠지는 것 같고 또 이런 엽서들 친구한테 보내주고 친구가 또 답장을 해줘요. 그럼 그때 오고 가는 엽서가 달라지니까 친구도 모으는 분들도 있거든요. 외국에 있는 친구 유저들 그래서 내가 가지 못하는 외국에 있는 엽서를 막 모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수집을 좋아하면 많이 이끌리는 게임인 것 같아요.
이 게임 전에 빠져들었던 게임도 있었다는 얘기잖아요. 그건 뭐였나요?
포켓몬 고요. 근데 조금 다른 거는 포켓몬 고는 포켓몬 자체가 중요한 게임이라면 피크민은 피크민 하나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아요. 그냥 피크민 덩어리들이 버섯을 부신다든지 해서 팀워크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임이라서 피크민 하나하나를 포켓몬 고처럼 포켓몬 하나하나 관리하듯이 할 필요는 사실 없거든요. 그래서 좀 덜 신경 쓸 수 있지만 또 모으는 건 잔뜩 있고 해서 콘텐츠가 많은 게임이에요.
현실에서도 수집하시는 게 있어요?
요즘은 없는데요. 예전에는 저도 장난감 이런 작은 장난감 같은 거 많이 모으고 특정 브랜드 같은 거 굿즈 나오면 모으고 그런 걸 좋아했어요.
피크민 블룸에 돈을 쓸 게 뭐가 있어요?
아이템을 사야 될 때가 있는데 하루에 한 번씩 무료 충전되는 아이템들이 있는데 이걸 더 쓰고 싶을 때 아이템을 구매해가지고 사용을 해야 돼서. 근데 그거를 사기 위한 코인을 현질을 해야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코인을 긁어서 코인으로 아이템을 사고
아이템으로 뭐 하는 거예요?
피크민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거든요. 이 지역에 숨어져 있는 피크민을 찾는 기능이 있어요. 그래서 그 기능이 하루에 한 번은 무료인데 한 번 이상 되면 아이템을 사야 돼요.
세계여행 같은 거 보면 맨날 사야겠다. 거기서 최대한 많이 찾고 가야 되잖아요.
예를 들어서 강남에 오면 여기는 고층 빌딩이 많고 하니까 도심에서 나올 수 있을 만한 카테고리에 피크민이 나오거든요. 근데 숲이나 바다에 가면은 그 숲이나 바다에서 나오는 피크민이 있어요. 그래서 지역마다 특색 있는 피크민을 모으고 싶다 하면 그 아이템을 구매를 해서 막 쓰는 거죠.
앞으로 도메인에 대한 고민하시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어떤 도메인 관심 있으세요?
제가 이전이 멘탈 헬스 케어다 보니까 관련된 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안타까운 얘기지만 사실 시장성이 아직 없어요. 멘탈 헬스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아직 터부시 되는 주제다 보니까 크게 어떤 도메인이 밀어주는 도메인이 아니고 그래서 이런 걸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 봤을 때는 쉽지 않은 도메인이어서 그럼 다른 관련된 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가 개입을 한 서비스가 사람들의 삶을 진짜 실제로 도와줄 수 있는 그런 도메인은 뭔지 고민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되게 일맥상통한 것 같아요. 그러면 요새 어떤 일들을 좋아하세요?
저는 일단은 비슷한 맥락으로 강의하는 거를 계속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강의도 강의지만 저 나름대로 커피 챗이나 포트폴리오 리뷰도 받아서 가끔씩 하고 있어요. 이 업계에 제가 엄청 크진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게 뭔지 계속 고민하면서 접근을 하려고 하고 있고 그리고 아까 열었던 행사 같은 것도 단편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지속적으로 해서 좋은 행사로 남았으면 좋겠어서 그 행사도 요즘에 다시 기획을 하고 있는 중이고 그래요
개발자나 기획자나 디자이너가 아니면 참여할 수 없나요?
작년에 했던 거는 약간 트라이 하는 거여서 그렇게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오픈하려고 해요. 근데 IT 업계인 거는 가지고 가야 될 것 같은 게 너무 다른 업계에서 오시면 말을 또 다르게 하니까 어려워하셔서 아예 다른 업계보다는 그래도 IT 업계 안에서 운영을 해보셨다든지 CS를 하셨다든지 여러 분들을 모시고 행사를 진행하는 게 좀 더 맞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살면서 이건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로 여러 가지 제안들에 도전해 본 일을 꼽아주셨는데 민선님에게 가장 도전적이었던 제안이 뭐였을지도 궁금해요.
첫 도전은 테크 팸이라는 그룹에서 만든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가 있었어요. 2016년이었나 근데 거기에 저는 기획자가 아닌데도 갔었어요. 그 행사 너무 궁금하고 해가지고 갔었는데 어떤 기자분이 인터뷰를 하자고 하는 거예요. 근데 인터뷰를 원래 성격이면 안 했을 텐데 약간 도전하는 느낌으로 인터뷰를 했어요. 그 기자분이 쓴 기사에 딱 한 줄 나와요. 제가 했던 한마디, 한 줄이 나오는데 그게 시작인 것 같아요. 그 인터뷰를 최초의 도전으로 보고 그다음부터는 제가 직접 컨퍼런스 디자인도 하고 다른 행사 또 그 주체들이 같이 열었어서 그래서 거기에 팀에 들어가서 행사 여러 개 디자인을 하고 행사도 만들어보고 하는 경험도 쌓게 됐고 그리고 거기를 통해서 연락을 받아서 강의도 해보고 그다음에 멘토링도 해보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행사 간 거 그리고 그 행사에서 인터뷰를 했던 거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기자분이 '인터뷰 하시겠어요?' 했을 때 그 순간에 할까 말까 갈등이 있으셨을 거잖아요. 근데 내가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주된 생각은 어떤 거였어요?
익명성을 벗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 2016년에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왜 여성이 드러나지 않는가에 대해서 담론이 있었던 때였어요. 그래서 그런 담론이 있을 때 마침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가 있다 해서 갔던 거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그런 담론을 통해서 이 행사까지 왔는데 이 행사에서 그냥 안 할래요 하고 넘어가기엔 좀 아쉬울 것 같아 가지고 인터뷰를 했는데 그걸 계기로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진거죠.
저도 아이(I)인데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민선님 얘기 들으면서 ‘그래 나도 저런 마음이지’ 이렇게 동의한 게 굉장히 많았고 결정적으로 민선님이 ‘지금 익명성을 벗어나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훨씬 더 많이 떠들어야지 이런 생각, 이런 다짐을 하게 됐어요. 우리 같이 많이 나대고 떠들어 봐요.
좋아요.
오늘 이렇게 차 한 잔 같이 마시면서 얘기해 봤는데 소감 어떠세요?
초반에 많이 떨었는데 그래도 말씀하신 대로 나중에 좀 많이 풀려서 말을 잘 한 것 같습니다.
CREDIT
글 오잉
인터뷰 뚜까, 찌니, 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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