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 창업가, CEO 현진
하티웍스는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적인 표현력을 활용을 해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로 만들고 있는 회사예요. 교육 회사이기도 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도 하고 있고 장애인 표준사업장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픈 애였어요. 동네에서 유명한 아픈 애. 그래서 ‘너는 아프니까 이거 못하겠다’라는 편견을 많이 당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나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의 좋았던 기억, 슬펐던 기억들은 다 저희 쌤들이 우리 사업의 주인공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이분들이 있어서 계속 버틸 수 있는 것 같고 또 이분들이 있어서 당연히 너무 힘들기도 해요.
아이티백 현진님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김현진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하티웍스의 김현진 대표라고 합니다.
하티웍스는 어떤 회사인지 본격적인 인터뷰 전에 살짝 여쭤봐도 될까요?
하티웍스는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라고 시작한 회사이고요. 지금 총 8년째 운영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이고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을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적인 표현력을 활용을 해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로 만들고 있는 회사예요. 그래서 교육 회사이기도 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도 하고 있고 장애인 표준사업장입니다.
현진님 커리어를 간략하게 먼저 말씀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개발자 출신은 전혀 아니고 저는 대학교 학사 때 신방과를 졸업을 했고요. 그리고 MBA를 갔어요. 그리고 지금도 개발을 제가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회사에서 개발팀을 꾸리면서 개발 팀장님이랑 계속 가깝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하시자마자 MBA 가셔서 MBA 졸업하고 바로 창업하신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정확히는 대학교를 졸업을 하고 그 사이에 한 2년 정도 이것저것 준비를 했었다가 그다음에 창업과 동시에 MBA를 갔어요.
신방과 갔을 때는 그쪽으로 취업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거예요?
네. 저는 언론이 재밌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영상을 편집하고 영상 촬영하고 광고 쪽으로 되게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인턴십도 다 그쪽으로 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거는 사회의 부조리한 것을 조명해서 찍고 내가 만드는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그런 기획자의 역할을 제가 하고 싶었던 거더라고요. PD 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그런 거를 되게 좋아했었어요. 그런데 그거를 전공으로 하다가 되게 재미있게 했었는데 이거 말고 좀 더 임팩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는데 자연스럽게 그걸 약간 어깨 너머로 보면서 사업이 비즈니스라는 게 되게 재미도 있으면서 세상을 좀 더 이롭게 만들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고 기술이 여기에 접목이 됐었던 건 한참 나중인데 제가 하고 있는 이 작은 일이 결국에 임팩트를 더 크게 내고 영향을 더 크게 하려면은 기술이 그때 필요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공부를 해가면서 기술을 접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창업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MBA 가신 거예요?
네. 저는 아버지가 사업을 오래 하셨는데 그게 멋있어 보이진 않았거든요. 항상 아버지가 늦게 오시고 힘드시고 이런 모습을 보니까 요즘에 스타트업 붐이 되게 많았잖아요. 지금도 있지만 그래서 저도 그렇지만 저희 또래 친구들이나 지금 후배들을 보면은 그냥 사업 자체가 멋있어서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완전 반대로 난 이게 되게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걸 하는 회사가 아무도 없어서 제가 하게 되는 그렇게 좀 어쩔 수 없이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케이스여서 사업이 멋있어 보여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 미션이 처음부터 되게 구체적이셨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에 마음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아토피가 되게 심했거든요.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온몸에 아토피가 있었고 이게 대학생 때였어요. 그러니까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되게 아픈 애였어요. 동네에서 유명한 아픈 애. 너무 드러나는 병이 있다 보니까 피부병이라는 게 있다 보니까 아픈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저런 생각을 많이 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너는 아프니까 이거 못하겠다’라는 편견을 제가 많이 당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나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했고 장애인이나 소외계층, 여성, 노인, 이런 소위 말하는 약한 사람들 한테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분들이 되게 좋고 그래서 그분들이랑 같이 일하는 거를 많이 했었어요. 대학생 때부터도 무급으로 인턴 생활을 4년을 한다거나 저는 너무 즐겁게 일했어요. 장애인이랑 일하는 거, 유네스코랑 같이 제3국에 가서 봉사하고 오는 거 이런 게 돌아보니까 제가 밟아 왔던 길이었더라고요.
어떤 면이 즐거우셨어요?
제가 장애인이랑 처음으로 일을 했었던 순간이 대학교 1학년 때 정신장애인을 카페 바리스타로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 있어요. 그곳에서 그냥 이름만 매니저로 이렇게 들어가서 선생님들이랑 같이 카페에서 커피 만들고 말동무 애들이랑 같이 밥 먹고 이런 거를 하는 일이었는데 그냥 너무 이분들이 순수하신 거예요. 그리고 너무 장난기도 많고 근데 그분들이랑 있으면 내가 그냥 재미있었어요. 오히려 되게 인정받고 내가 여기서 존재감을 느끼는 듯한 느낌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어떤 보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편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신방과 4년 동안 인턴도 하시고 다양한 경험도 하시다가 2년 동안 다른 거 준비를 하시다가 창업을 해야겠다 마음먹음과 동시에 MBA를 입학하신 거예요?
거의 그래요. 대학생 때 제가 아팠잖아요. 저는 대학생 때까지 계속 아토피가 있었는데 저도 아픈 애였는데 장애인이랑 같이 일을 한다 하면서 즐거움을 되게 많이 느꼈고 근데 동시에 나는 여기서 너무 즐거운데 이 바깥을 나가면 사람들이 나도 그렇고 장애인에게 너무 박한 거죠. 이게 되게 부당하다고 느꼈었고 저는 화가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이거를 왜 나만 알고 있지 이걸 왜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을 안 하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드릉드릉하다가 졸업할 때쯤 되니까 저는 영상학과 출신 친구들도 옆에서 보면은 맨날 밤새서 술 마시고 놀고 4학년 때 되선 이제 뭘 하고 살아야 되지라는 고민을 하잖아요. 저도 그중에 한 명이었고 그래서 그러다가 저도 욕심이 많고 그래서 뭐 많은 준비를 했어요. 사기업 준비, 공기업 준비 그리고 창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 들고 대학원도 관심 있고 이래서 막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하다가 제가 그때 신촌으로 스터디를 새벽에 다니면서 제가 쓰러진 거예요. 공황 장애가 와서 그래서 기억이 안 나요. 그날은 제가 과호흡 오고 그런 생각은 다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에 제가 들것에 실려서 병원에 갔나 봐요. 그래서 우울증 검사 받고 이러다가 공황 초기다. 이건 너가 되게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된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그때 놀라서 우시면서 이야기를 해보니 제가 취업 준비가 너무 너무 힘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저한테 ‘현진아 너가 하고 싶은 거 해라 그냥 행복한 걸 했으면 좋겠다.’ 근데 제가 또 K 장녀예요. 그러니까 마치 무슨 우리 집안의 모든 짐을 그럴 필요도 없는데 제 책임이라고 이상한 책임감에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했었나 봐요. 그래서 ‘그게 아니고 그냥 네가 행복한 걸 했으면 좋겠다. 네가 언제 행복했니?’를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장애인이랑 있을 때가 너무 행복했었고 그래서 난 그럼 그거 해야겠다. 그럼 넌 그거 해도 된다. 그래서 오케이 그럼 나는 장애인이랑 일했을 때 행복했고 즐거웠으니까 내가 돈을 못 벌고 힘들지언정 이분들이랑 일하면 즐겁겠다 그래서 그때부터 시작을 한 거예요.
뭐 할 때 행복해 한다고 해서 그걸로 바로 사업해야지라고 이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처음에 시작했을 때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도 듣고 싶어요.
그때 당시에는 그런 게 있었어요. KT&G 상상 스타트업 캠프 제가 17년도에 했었던 것 같아요. 가을, 겨울에 그래서 그때 그냥 아이디어 없이 들어가서 아이디에이션 하고 졸업을 하면서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이랑 MBA를 같이 시작했어요.
장애인들하고 같이 일하겠다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떤 서비스를 할지는 없었던 거네요.
그때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완전 초기 팀이라서 다 그냥 헤어졌지만 되게 인텐시브한 과정이 저랑은 되게 잘 맞았어요. 밤새서 계속 리서치하고 인터뷰하고
첫 시작한 아이템이 지금 아이템이랑 동일하신 거예요?
그때 했던 아이템이 아직까지 하고 있고 제가 일단은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강했어요. 근데 어떤 장애인 그리고 그 장애인이 뭘 할 수 있는데 이게 너무 아이디어가 없는 거죠. 그래서 찾아보니까 시각장애인이 우리나라에 되게 많아요. 25만 명이나 있는데 90%가 중도 실명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생각을 해봤을 때 나도 언젠가 시각장애인 될 수 있는데 근데 지금 이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 안마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거는 되게 기분 나쁘고 난 너무 싫겠다. 그래서 실제로 저희가 복지관 가서 인터뷰를 했을 때 정말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고 물론 안마라는 직업이 너무 훌륭한 직업일 수 있죠. 만족하는 분들도 너무 많고 근데 논문이 있어요. 시각장애인 중에 안마를 하는 분 중에 98.5%는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이 일을 안 하고 싶다 그럴 그래서 저희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을 했고 그럼 이분들이 원하는 게 뭘까를 찾아보니까 너무 지적으로 훌륭하시거든요. 시각장애가 지적 장애는 아니에요. 그럼 이분들이 잘할 수 있는 거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뭘까 찾아보다가 저희가 커피를 대접을 해드리면서 인터뷰를 하는데 선생님 뭐 잘하세요 뭐 취미가 뭐예요? 이전엔 뭐 하셨어요? 대답을 하시는데 그냥 제가 듣고 있는데 뭔가 배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이 이렇게 말씀을 잘하시고 그럼 누군가에게 이런 말씀을 통해서 뭔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우리는 한국인이고 그때 막 엑소(EXO)가 나온 때였어요. 방탄도 나오기 거의 전에 그래서 엑소 붐을 막 탈 때 그래서 그럼 이분들이 영어도 잘하시고 말씀도 잘하고 그리고 웹 접근성만 잘 되어 있으면 스카이프를 쓰건 그때 스카이프였거든요. 스카이프를 쓰건 줌을 쓰건 이런 거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미국에서도 고등학교를 졸업을 했는데 그때 당시에 친구가 저한테 ‘나 한국에 가서 뭐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싶은데 한국어를 좀 해야 된다고 하더라. 네가 영어도 하고 한국어도 할 줄 아니까 나한테 좀 한국어 좀 가르쳐줘’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오케이 할 수 있어. 근데 나보다 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한번 해볼래?’ 그랬는데 오케이 오케이 받은 거죠. 그래서 저는 그때 스카이프로 시각장애인분한테도 한번 해보시겠느냐 해서 그때 화면 가리고 제가 급하게 만든 한국어 교재로 두 명한테 주고 그러니까 비대면으로 한 거죠. 수업을 근데 그게 워킹하는 거예요. 그러 그래서 두 명한테 다 물어봤어요. ‘너 이거 돈 주고 살래?’ 사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한테도 ‘그럼 얼마 받으시면 하겠느냐?’ 하겠다 해서 그때부터 이 아이디어가 계속 디벨롭이 됐고 지금도 하고 있고요. 이렇게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 지금 전국에 170명 정도 있어요. 지금은 아예 중국 쪽에 마켓이 있어서 저희 중국 학생들이 많아요. 그래서 중국에 올해 4월에는 법인을 내고 왔어요. 저희도 투자를 해서 법인을 내서 지사를 세우고 거기 직원들도 채용하고 본격적으로 마케팅도 하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창업 2년 동안은 MBA 다니면서 이 모든 걸 하신 거죠? MBA는 왜 가고 싶었어요?
제가 너무 무지하다고 느껴서 저는 왜냐하면 경영 배운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고 그래봤자 그냥 영상 찍고 뭐 한 것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네트워크도 필요했고요.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네트워크적으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했습니다.
그러면 MBA 추천하나요?
저는 지금 또 더블 MBA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게 모든 분들한테 맞는 답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MBA라는 거는 저한테는 맞았어요.
어떤 점에서요?
학문적으로도 정말 그렇고요. 네트워크로도 정말 저는 도움이 돼서 제가 MBA를 2018년도에 했으니까 졸업을 20년도에 했다고 해도 벌써 5년이 지났잖아요. 저는 한국 초기 시장에서는 이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을 하고 저희는 이제 미국 진출도 하고 싶어서 미국 MBA도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
창업하신 지 8년 되셨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 말씀을 드리면 아무래도 저희는 어떤 대단한 아이디어나 대단한 기술이 있어서 사업을 해봐야지라고 시작을 한 팀이 아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뭐든 해보겠다라는 팀이었기 때문에 문제의 당사자들 그러니까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이 우리를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그게 되게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코어였으니까. 근데 중간에 한 번 저희 고객 그러니까 수혜자일 수 있죠. 시각장애인분들. 그분들이 저희한테 ‘이 직장은 안마보다 별로여서 차라리 안마를 하는 게 낫겠다’라고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근데 그때 당시에는 그게 너무 저한테는 충격이었어 거 같아요. 진짜 완전 거의 기반이 무너지는 그런 멘트였는데 돌아보니까 결국에 그냥 그분들이랑 저희랑 안 맞았던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는 왜냐하면 노트북도 쓸 줄 아셔야 되고 톡백도 쓸 줄 아셔야 되는데 왜냐하면 비대면이잖아요. 그랬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층 자체가 있으시다 보니까 그게 너무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그럴 수 있겠다라고 생각도 해요.
너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 게 느껴졌는데 8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을 직접 듣고 싶었어요.
같은 답변인 것 같아요. 선생님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이분들이 없었으면 전 안 했을 것 같고 이분들이 없었으면 힘들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의 좋았던 기억, 슬펐던 기억들은 다 그냥 저희 쌤들이 우리 사업의 주인공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이분들이 있어서 계속 버틸 수 있는 것 같고 또 이분들이 있어서 당연히 너무 힘들기도 해요. 근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계속 중심이 이분들이 여기에 있어야 되는 것 같고 만약에 사업을 계속하다가 근데 대표님 이건 우리한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내지는 이거 우리한테 진짜 별로 우리를 위한 회사는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하면은 저희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야 되는 회사가 맞는 것 같고 그래서 그런 소통을 되게 많이 해요. 저희가 되게 자랑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는 우리 회사가 돈을 많이 주는 회사도 아니고 복지가 너무 대단한 회사도 아니거든요. 근데 저희 회사는 들어주는 회사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회사에 어떤 건의 사항이 있거나 불만이 있으면 그거를 진짜 많이 들어요. 많이 듣고 아 오케이 그럼 그거는 우리가 잘못했다. 그럼 이렇게 고쳐볼까 하고 같이 고치고 그래서 그거는 되게 자부심인 것 같아요.
그러면 현진님 얘기는 누가 들어줘요?
그러니까요.
창업하신 이후에 힘든 과정이 많았을 텐데 우신 적도 많아요?
운 적도 있죠 최근에도 울었어요. 차 안에서 혼자 불과 한 2주 전 왜 울었냐면 그거인 것 같아요. 내 얘기는 누가 듣지? 제가 느끼는 대표로서의 외로움이나 책임감은 어떻게 보면 마땅히 그냥 제 몫인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근데 저희 쌤들을 저희가 너무 사랑하고 물론 주인공으로 모시고는 있지만 되게 단호하기도 하거든요. 저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봐주거나 그러면은 사실 더 큰 이후에 올 임팩트 어떤 영향력을 본인이 아니면 후배들을 본인이 깎아 먹는다고 생각을 하고 그 책임감을 엄청 주거든요. 그래서 그게 이용자건 고객이건 우리의 수혜자건 상관없이 계속 그런 교육을 시키고 성장을 해야 너가 좋은 저희 회사는 그래요. 좋은 일을 하는 회사가 아니고 좋은 일을 잘하는 회사가 되어야 된다. 그래서 네가 좋은 일만 하려고 오는 회사는 여기는 아니다. 여기는 복지관이 아니다. 그거 하고 싶으면 복지관으로 가야 된다. 우리는 주식회사고 법인이고 잘 해야 되기 때문에 그 자신이 없으면 여기서는 남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렇게 좀 단호하게도 하고 있어요.
그 말씀을 들으니까 어떤 방식의 사랑인지 좀 더 이해가 됐어요. 사랑을 해도 무조건적으로 편들고 감싸 안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사랑하기 때문에 아니야 이제 똑바로 서, 너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사랑도 있을 수 있잖아요. 후자의 사랑에 더 가까운 건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저희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데 좋은 일을 제가 대학교 때 그런 인턴십도 했지만 NGO에서도 그냥 유급 인턴 생활도 하고 그 NGO든 NPO든 어쨌든 그런 좋은 일 소위 우리가 말하는 좋은 일을 하는 회사들한테 저는 항상 마음이 많아서 많이 경험을 했어요. 근데 저는 하나같이 다 실망을 하는 이유가 너무 지속 가능성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복지관이든 NGO든 비영리든 좀 더 책임감 있게 하려면 비즈니스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영리하게 영리 사업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어서
그런 식의 접근을 하실 때 잘 받아들이고 나는 성장을 하겠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분도 계시잖아요. 그런 해피 케이스에서 같이 일하시는 분이나 아니면 선생님으로 일을 하시는 분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을까요?
저희 지금 직원이 26명 정도 계시는데 가장 최근에 들어온 경력자 한 분이 그런 마음으로 오셨어요. 나를 위해서 그러니까 본인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도 너네 같은 회사가 잘 돼야 되고 그런 마음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희 회사에 그래서 그런 책임감과 그런 어쨌든 미션 베이스의 분들이 진짜 많이 오시고 그래서 저희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회사에 그리고 저희가 위에서 계속 제가 막 이렇게 공부해야 되고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되고 멈춰 있으면 안 되고 자꾸 이런 스트레스도 주고 주변 동료들도 그런 마음들을 갖고 있는 분들이 오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세대 교체가 돼요. 나는 그래 여기서 안 맞는 사람이지 그러면 그런 사람들만 계속 오는 그렇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일하면서 만난 좋은 상사 후배 동료는 이사님이다. 어떤 분이신지 샤라웃 해 주시죠.
저희 이사님은 그냥 회사 그 자체예요. 회사 그 자체. 어쩌면 회사보다 좀 더 큰 사람. 왜냐하면 이분이 학교 후배거든요. 대학교 후배고 대학교 때부터 되게 친했어요. 같이 프로젝트도 많이 하고 제가 너무 예뻐하는 동생이고 너무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 그런 친구여서 같이 술도 먹으러 다니고 같이 프로젝트 하고 그런 친구였는데 제가 이 사업을 개시를 하고 나서 혼자 거의 한 반 년을 하다가 사람이 필요해질 때가 돼서 제가 여러 번 러브콜을 보냈는데 그때 이분이 다른 스타트업에 있었어요. 근데 이 스타트업도 투자 많이 받고 막 성장하는 스타트업이었는데 또 회사라는 게 잘 됐다가도 또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근데 그 회사가 망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었던 단계였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 마침 이분은 나는 스타트업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 이렇게 인정하고 그래서 언니 너무 고마운데 나는 좀 고민해 보겠다. 근데 제가 삼고 초려를 한 거죠. 그리고 또 중간에 나 이만큼 해왔어 또 보여지고 이만큼 해서 또 보여주고 그리고 제가 그때 저희는 투자를 아직 한 번도 안 받았거든요. 그래서 다 그냥 저희 돈이에요. 저희 돈으로 한 건데 그때 처음에 사람들을 어쨌든 누군가를 데리고 와야 되잖아요. 저희 이사님이 첫 직원이었는데 저도 돈이 없으니까 저는 26살에 사업을 했어요. 돈이 어디 있어요? 하나도 없는 대학생 막 갓 졸업한 친구가 이 사람은 데리고 와야 되는데 투자는 없고 그래서 저는 은행에서 4억을 빌렸거든요. 그래서 그 돈으로 제가 저희 경희님, 박경희 이사님인데 경희님한테 나 이제 너한테 월급 줄 수 있어 같이 가자 그래가지고 같이 바로 앞에서 나 대출받는 거 보여주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확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돈은 지금 다 갚았어요. 제가 근데 되게 좋아하는 말이 이게 욕일 수도 있고 칭찬일 수도 있는데 김 대표는 진짜 무모하다 아니면 용감하다 이런 말을 제가 너무 좋아해요. 근데 무모하고 용감했었던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저희 회사 아직 너무 작긴 하지만 되게 재무 건전하고 그렇거든요.
후배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말씀하실 때 묻어나는 것 같아요. 어떤 점 때문에 훌륭한 거예요? 일을 탁월하게 잘한다?
일도 너무 탁월하게 잘하는데요. 사람을 대할 때 따뜻한데 단호한 그게 있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은 안 따뜻하고 단호한 편인데 이분은 따뜻한데 단호해서 제가 너무 많이 배워요. 저는 약간 사람을 울리는 편이고 그러니까 이번에도 이 친구가 이제 울면서 이사님한테 가서 이제 그만할래요 그러니까 이제 ‘그래 근데 대표님 말이 맞아’ 하는. 그렇게 해서 너무 이렇게 든든한 파트너가 없죠.
그동안 계속 맞춰 나가셨겠지만 이런 부분이 달라서 잘 맞는다 이런 것도 있겠죠?
그분은 에스(S)시고 저는 엔(N)이에요. 그리고 그분은 에프(F)고 저는 티(T)거든요. 근데 앞뒤는 다 똑같고 그래서 이제 일을 할 때 일 케미도 너무 잘 맞고요. 제가 막 갑자기 뜬 구름을 잡으면 그냥 탁 잡아줘요. 이거 지금 아니야, 지금 아니야 근데 또 너무 그 사람이 뭐랄까 양보를 잘 해 주시는 분이라 나중에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하냐면 내가 그때 대표님 이렇게 아 그거 아니다 이거 지금 하지 말자 이거 이렇게 이렇게 말렸는데 돌아보면 그걸 다 우리가 하고 있더라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해주는 분이에요.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 완전한 솔직함이라고 써주셨어요. 현진님이 생각하시는 완전한 솔직함이란 뭘까요?
사랑이 베이스가 된 것이 비로소 완전한 솔직함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신뢰가 없고 사람에 대한 어떤 기대가 없고 관심이 없으면 굳이 내가 솔직하게 말할 필요 없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근데 진짜 예를 하나 들면 우리 직원이 일을 못해요. 그러면 근데 진짜 내가 너를 위해서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근데 내가 진짜 너라면 지금 되게 경험이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 회사에서 줄 수 있는 경험보다 차라리 다른 SI 회사들한테 가서 경험을 진짜 네가 1~2년 배워서 오면 좋겠다. 네가 필요하면 내가 추천서도 써주겠다 면접도 준비해 주겠다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라는 식의 완전한 솔직함인 것 같아요. 근데 만약에 그 당사자도 싫어요 하면은 왜 싫은지 이런 이야기를 진짜 서로 신뢰 기반의 파트너십인 것 같거든요. 언제나 솔직함이라는 거는 너무 어려워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요. 감정 소모도 되게 클 것 같아요.
너무 크죠. 마음을 많이 써야 되니까 많이 써야 되고 그래서 못 해요. 제가 그리고 또 그런 게 있더라고요. 저는 제가 되게 솔직하게 잘 다가간다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어쨌든 대표다 보니까 우리 직원들이 마음을 여는 데 항상 이렇게 벽이 있고 한계가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참 어려운 과제인 것 같아요.
앞으로 하티웍스는 어떻게 나아갈 예정이신지도 궁금해요.
저희는 되게 천천히 그래도 단단하게 크고 있는 회사인 것 같거든요. 근데 이게 재미있고 즐겁고 적어도 우리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너무 재미있고 그리고 너무 감사한 것 중에 하나가 저희가 되게 필요한 걸 잘 해결하고 있다고 느껴져요. 그리고 이제 타이밍이나 시간대에 맞춰서 필요한 게 좀 달라지면 그거에 잘 대응을 하고 예를 들면 처음에는 장애인의 일자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지금 일자리를 개발을 하고 있는 회사인데 지금은 기술을 개발을 해서 시각장애인이 웹 접근이 좀 더 쉽게 하는 엔진을 만들고 있어요. 근데 이게 전 세계적으로 문제고 아직 되게 포화되지 않은 시장이라서 가능성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고 이거는 한국에서만 하면 안 되는 사업이고 그래서 제가 미국 MBA도 생각을 하고 있는 거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좀 단단하게 적은 인원이 재미있게 일하는 회사로 남고 싶은데 저희가 하는 일은 그래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게 앞으로의 바람입니다.
장애인이라고 안 하고 장애우라고 한다던가 그렇게 써야 하는 단어들이 잘못되고 제대로 되고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근데 현진님이 그냥 장애인이라고 말씀을 해 주셔서 요즘은 장애우라고 많이 하는 것 같던데 난 뭐라고 불러야 맞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맞는 표현은 장애인이 맞아요. 장애우도 쓰는 분들이 있는데 장애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뉴스나 공공기관에서도 다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고 그렇습니다.
회사에서 발달장애인들 친구들을 자주 봤어요. 우리 주변에 장애가 있는 분들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장애인에 대해서 불편하다는 느낌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장애인이 주변에 많이 안 보이거든요.
맞아요. 저도 너무 동의를 합니다. 그러니까 시각장애인이든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이든 사실 그런 말이 있어요. 저희 장애인 선생님이 한번 해 주신 말씀인데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하는 것보다 장애인 한 명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훨씬 장애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분들을 만난 적이 없고 대해본 적이 없으니까 벽이 생기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그게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저희 선생님들이 이렇게 어쨌든 사회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받으면서 그 일을 이렇게 직접 근로를 하신다는 게 이분들에게 너무 큰 사실 귀감이 되고 이분들한테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너무 좋아해요.
너무 안 보이는 거 아닌가 실제 그분들은 집에 더 많이 계시니까 예전에 비해서 더 많이 계시게 되나요?
장애인의 수 자체를 말씀을 드리면은 아주 조금씩 많아지고 있어요. 왜냐면은 일단 시각만 말씀드려도 우리가 더 오래 살잖아요. 근데 시각은 어쨌든 소모되는 능력이라 많아지고는 있어요. 근데 동시에 이분들이 사회생활 경험이 더 많아지냐 적어지냐 이거는 아직 데이터가 많이 없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기회들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맞아요. 사회에 나가서 뭘 할 수 있는 게 아직도 없어요. 우리가 이런 사업을 합니다. AI가 그래서 이런 게 필요합니다라고 하면은 아니 기술은 옛날부터 발전했는데 이거 기술이 대체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럼 저희는 기술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아직도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도 해결이 안 됐고 장애인의 생활이나 이런 것도 개선이 안 됐다 이렇게 똑같이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기업도 되게 많이 관심을 가져줘야 되고 개인도 되게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기업도 장애인을 일정 비율로 고용해야 하는 법이 있잖아요. 근데 고용해서 드는 비용보다 벌금 내는 게 더 저렴하다고 해서 그냥 벌금을 내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희의 매출의 90%가 B2B 사업에서 나오는데요. 기업이 돈으로 그렇게 환산을 해서 계산을 하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접근한 거는 그럼 장애인 채용하는 게 비용적으로 이득이면 그럼 장애인 채용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저희는 벌금 내는 것보다 3분의 1 가격으로 더 싸게 장애인을 채용 하는 방법을 만들어서 그래서 40개 정도 기업이랑 계속 거래를 하고 있고 기업은 기업대로 좋고 장애인 직원 많아지고 장애인분들이 저희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수익을 가져다주시면 그걸로 기업이 수익화하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현진님 서두에 하신 말씀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이건 나랑 상관없는 장애인의 얘기가 아니고 그냥 내 얘기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러면 아직은 장애인이 아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현진] 당장 드는 생각은 막 신기하다고 보지 않는 거 다르다고 보지 않는 거 그거면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우리 그냥 평범한 이웃처럼 생각하는 거 그리고 그거는 어떤 뜻이냐면은요 장애인을 처음 보실 수 있고 시각장애인이 혼자 길 걷다가 이렇게 뭐 그런 거 많이 보실 수 있잖아요. 그러면은 그냥 가서 말을 거는 거 그러니까 어렵거나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가 길 물어보듯이 그냥 어 뭐지 도와드릴까요? 그냥 이런 거 하나 그런 왜냐하면은 너무 배려받는다고 느끼는 부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시각장애인 장애인분들이 자체적으로 그래서 그냥 말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인 것 같아요.
[써니] 지하철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기억이 나가지고 제가 동행하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오시던 시각장애인분이 저희한테 지하철 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야 되냐 이렇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방향이라고 말씀을 드리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근데 저가 어디서 그런 프로토콜을 봤었거든요. ‘여기 잡으세요’ 이렇게 손을 이렇게 이끌어서 제 팔에 이렇게 얹어서 그전에 ‘제가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여쭤보고 이렇게 제 팔에 얹어서 이렇게 그냥 가드리는 그런 걸 하는데 제가 같이 있던 분은 이거를 몰랐어 가지고 엄청 우왕좌왕 이분을 뭔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러고 이분은 막 깨질 것처럼 이렇게 어깨를 이렇게 만져도 되나 이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그때 그 말을 건넸었거든요. 손을 대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구나 처음으로 알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프로토콜이 좀 더 알려져도 좋을 것 같아요.
[현진] 근데 너무 잘하신 거예요. 어디서 읽었었어요? 진짜 너무 잘하셨고 저희는 그러니까 오히려 좀 저희한테도 교육이 방금 된 것 같은 게 우리가 너무 우리만 알고 있었나라는 생각도 좀 들어요. 그래서 저희는 선생님들 만나면은 다 그냥 바로 이렇게 하고 다 할 줄은 아는데 이거를 공유할 생각을 못했네. 그래서 차라리 저희가 고객사들이 있으면 고객사들이랑 이벤트를 연다거나 오프라인 행사를 연다거나 그런 거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교육도 해드리고
[오잉] 제가 말씀 듣다가 생각해 보니까 잡월드 있잖아요. 이런 경험은 사실 어린이였을 때 하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교육으로 들어가서 장애가 있는 또래 친구들 어떻게 대하는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뚜까] 근데 저도 그 경험이 진짜 도움이 많이 됐던 게 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매년 반에 장애인 친구들이 있었어요. 당연히 사회 구성원들 사실 당연히 비율로 보면 있을 만하잖아요. 그렇게 크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서 뭔가 눈에 안 보이더라고요. 근데 동생 때는 또 아예 특수반이 생겨서 거기만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생은 훨씬 낯설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같이 있더라도 저는 사실 특수반이 엄청 도움이 필요한 애들 빼고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현진] 근데 그게 진짜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 같아요 회사 1층에 장애인이 하는 카페가 있는 회사랑 아예 눈에 안 보이는 회사 채용도 안 하는 회사랑의 조직원들의 그런 성숙도가 너무 차이가 나는 거는 맞죠. 그래서 기업이 그걸 위해서라도 진짜 장애인 채용에 좀 더 적극적으로 해 주셔야 되는 거 같아요.
10년 후 나의 멋진 하루를 DJ라고 써주셨는데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테크노랑 힙합 좋아합니다. 음악 좋아하고 DJ를 해본 적은 없는데 언젠가 배우고 싶었고 언젠가 하고 싶어요.
지금도 멋진 하루가 뭔지 모르겠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이때부터 좀 슬퍼졌거든요.
그러니까요. 이거 되게 저한테 좀 큰 문제인데 제가 MBTI가 ENTP고 그냥 성과주의자 그냥 성취주의자예요. 그래서 제 성향이 이걸 성취에 달성을 하면은 잠깐 기쁘고 보통 또 안 되잖아요. 잠깐 성취를 달성하는 순간이 너무 짧으니까 그래서 잠깐만 행복하고 대부분이 안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되게 열심히 살고 아침부터 제가 최근에 혼자 차 안에서 울었다는 날도 새벽부터 대표님들 조찬 모임 가고 오전에 미팅하고 오후에 교육 듣고 밤에는 대표님들이랑 술자리 하고 이러고 한 10시쯤에 집에 오는데 나한테 지금 남는 게 뭐가 있지 이런 생각이 그냥 문득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근데 또 울면 뭐 해 내일 또 출근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집에 와서 공부하고 자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방금 말씀해 주신 MBA보다 디제잉을 하는 게 나에게 좀 더 오래 할 수 있는 나의 지속 가능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좀 드네요.
오늘 이렇게 얘기를 나눠봤는데 현진님 혹시 하시고 싶으신 말씀 있으세요?
재미없는 이야기였을 것 같은데 너무 재밌게 이야기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그리고 제가 저에 대한 이야기 저의 비전 이런 이야기 로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저는 힐링도 많이 받았고 그리고 위로도 받은 것 같아요. 진짜 그리고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내 문제나 내 이슈들을 본 것 같아서 내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이 일을 하려면 이런 방법이 진짜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감사해요.
하티웍스의 다음은?
장애인이 일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고 좀 더 큰 범위로 말씀을 드리면 그냥 좀 약간 실패하는 게 용인되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현진님이 되고 싶은 5년 후 현지는 어떤 모습이에요?
5년 후 그냥 여전히 저는 사업을 하고 있을 것 같고요. 근데 그땐 좀 더 재밌게 건강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나의 행복을 좀 찾으면서
CREDIT
글 오잉
인터뷰 뚜까, 써니, 찌니, 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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