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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Dec 11. 2017

후회를 짊어지고 사는 삶에 대하여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연말이다. 이맘때만 되면 한해를 결산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1년을 되돌아보며 자기반성 시간을 갖게 된다.  올해는 작년보다 덜 후회를 했던가. 나는 나이를 먹으며 조금이나마 후회를 덜하는 인간이 되었나.

 13살의 후회는 집앞 버스 정류장 장면이다. 초등학생 때, 치매가 오신 친할머니와 2,3년 정도 같이 산 적이 있다. 할머니는 손녀손자들 가운데서도 나를 정말 예뻐했는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관심이 싫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집앞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 할머니가 정류장에 쭈그려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내 하교시간에 맞추어 나를 데리러 나온 것이었다. 나를 발견한 할머니의 얼굴엔 반가움이 번졌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기다리는 할머니를 못 본 척 지나쳐 바로 집으로 향했다. 골목 모퉁이가 꺾어질 때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언덕에는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할머니는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계셨다.



 17살엔 친구가 좋아하던 사람과 몰래 데이트를 했다. 친구가 오래 짝사랑하던 상대였다. 그와 나는 대외활동에서 만났는데, 나는 그를 알았고 그는 나를 몰랐다. 우연히 같은 조가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같이 공연도 보러 가고 앨범도 선물 받았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관계는 자연히 정리되었다. 아직도 친구는 그 사실을 모른다. 처음 보았을 때, 그를 좋아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21살의 후회는 한국의 기숙사방에 홀로 앉아 있는 니콜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2인 1실 기숙사 생활을 한 적 있는데, 나의 룸메이트는 스위스에서 온 니콜이란 예쁜 친구였다. 성격도 밝고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니콜은 나와 죽이 꽤 잘 맞았고 한학기가 지나고 니콜은 떠나기 아쉽다며 한학기를 더 연장했다. 그리고 그 겨울, 남자친구가 생긴 나는 기숙사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술에 절어 방에 들어가면 니콜은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쓸쓸한 얼굴로 “주연 얼굴 좀 보자.” 고 얘기했다. 1년 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떠나는 날, 한식당에 마주앉아 어색하게 밥을 먹었다. 그 후 나를 ‘드런키~’라 부르던 어눌한 한국어를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스스로를 감당하느라 벅찼던 시절, 내가 떠나보냈던 스위스 친구 니콜.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보며 들었던 감정은 ‘안타까움’ 이었다. 17살에 두 사람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내내 생각했다.  둘만의 아지트를 위해 쓰러져가는 집까지 구할 정도로 서로가 소중했던 칠월과 안생의 우정은 17살에 남자 때문에 틀어져 버린다. 이후 안생은 고향을 떠나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칠월은 남자친구와 쭉 연애를 하면서 결혼까지 계획한다. 둘은 서로에게 계속 엽서를 쓰는 등 관계를 지속하지만 이미 상처 난 관계는 돌이킬 수가 없다. 결국 23살에 상하이 여행을 함께 떠나서, 서로를 잘 아는만큼 가장 상처가 되는 말로 서로를 공격하며 크게 싸운다.


 17살 때 칠월과 안생 둘 다 남자를 포기하거나, 아예 서로를 포기하거나, 혹은 그 일에 대해 확실하게 매듭짓고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10대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시기니까.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대사처럼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다. 이제는 후회를 남기는 것이 인생의 디폴트 값이려니 받아들이게 됐다.


20대 초반의 목표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였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빼곡이 그날의 후회와 자기혐오로 점철되어있다. 그리고 항상 결론은 다음부턴 이러지 말아야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로 끝이 난다.


요즘은 내가 더 나아질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한다. 올해처럼 내년 역시 내 삶이 바빠서 부모님을 서운하게 하는 딸일 것이고, 고집이 세고, 변명하며 살겠지. 나의 단점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을 테고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견고해질 것이다. 계속 지나간 실수들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삶을 산다는 건 비관적이지만 그리 틀리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후회할 일을 저지르고 나서도 스스로를 탓하기 보다는 ‘아이고, 또 사고쳤네’ 하며 조용히 뒷수습을 한다. 올해의 후회를 돌아보자면 역시나 새롭지 않은 것들이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내뱉었던 말실수들, 지나고 나서야 알게되는 엄마의 서운함들, 주변 사람들에게 쏟아냈던 답없는 징징거림들... 얼굴이 화끈거리는 실수들을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건 연말을 핑계로 참회의 편지를 쓰는 것 뿐이다.


다만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지금보다는 나빠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 기왕 나빠지는 거 천천히 나빠져서, 후회할 일을 조금이라도 천천히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의 2018년 새해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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