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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Dec 20. 2021

Dear me. 번아웃이 찾아왔을 때 보시오

첫번째 편지 - 5년 뒤 나에게


안녕, 미래의 주연. 요즘만큼 너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날들이 있을까 싶어.


 지금은 푸어링아웃 카페에서 아침으로 커피랑 팬케이크를 먹으며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 오전 9시 필라테스 수업 가기에 성공하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지. 곧 점심을 먹고 인터뷰 원고를 쓰거나 영상 편집을 하러 학교 도서관에 갈거야. 요즘은 주2-3회 학교 도서관에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거기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 창 너머로 흔들리는 플라타너스 나무 잎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좋고, 과거에 도서관에서 치열하게 살던 시간들을 돌아보는 것도 좋아. 너는 지금쯤 아마 회사에 들어가 출퇴근에 매여 있을 것 같은데. 부디 네가 재택근무와 자율출근이 가능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길 바란다..

 

음 요즘의 내 고민이 있다면 경력 업그레이드를 위해 퇴사를 한 만큼 이제는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들어오는 프리랜서 일들을 거절해야할지 말지야. 쓰고보니까 진짜 배 부른 고민들이네.

 

 있잖아, 프리랜서 생활 생각보다 괜찮다? 5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주변에서 "너 프리랜서 잘 할 것 같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음에도 프리랜서로 살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 언제 일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을 너무 많이 받아서 몸이 축날 것 같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고, 일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불안정성도 싫었어.

 근데 막상 프리랜서 생활을 해보니까, 우선 몸이 축날 정도로 일이 들어오지 않고, 물론 한꺼번에 마감이 몰릴 때가 있어서(왜 일은 차례로 들어오지 않는걸까?) 지난 여름 휴가 때는 노트북을 싸들고 울릉도 민박집에서 일을 했긴 하지만, 나름 스케줄을 잘 조절하고 있는 것 같아.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독한 사람이 아니더라고. 운동하고 일기 쓰는 루틴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하고 만족도의 기준을 낮추는 방향으로 일하고 있어. 동료와 상사의 평가를 의식하면서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으로 결과물에 영혼을 갈아넣으며 일했던 회사원은 어디 갔는지!

 일을 하면서 상사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 프리랜서는 상사가 바로 자기 자신이잖아? 양주연이란 상사는 기준치가 높은 편이지만 기분 파라서 "내가 번아웃 오지 않는 게 중요해요! 오래 일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라고 항의하면 바로 수긍하거든. 그래서 뭐랄까, 프리랜서 하면서는 무리를 하지 않게 돼서 그런지 돌려보고싶을만큼 만족스러운 퀄리티가 안 나오네. 회사 다닐 땐 내 이름 걸고 대중들을 만나는 거니까, 이정도 받는덴 이정도 해야지 하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퀄리티를 높이려 했거든.


 사실 난 아직 번아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만약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최대의 퍼포먼스를 내야할 때 또 번아웃이 찾아오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더라고.

 근데 최근에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는 힌트를 알아냈어. 바로 루틴의 중요성이야.

 너는 요즘 불안하면 어떤 행동을 해?


31살의 나는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을 다 없애버리더라고. 가장 줄이기 쉬운 부분이니까.우선 운동하는 시간을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하고, 일기도 안 쓰려고 하고, 청소, 요리 포기. 일이 많다는 이유로 옷을 아무데나 벗어서 쌓아두고 일 다 끝나면 한번에 치워야지, 하고 다짐한다? 하루에 10분만 청소하면 치울 수 있는데 말야. 10분 청소한다고 일을 못하는게 아닌데 말이지. 정확히 말하면 일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서 움직이지 못하는 거야.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내 하루를 6가지 색깔로 구분해보는 시간 관리 리추얼을 매일 하고 있는데 강의가 있는 주에 내 하루를 컬러링해보니 루틴들이 다 망가져 있더라고.

 하루를 색으로 칠해보면 내가 나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확연히 보여. 나를 위한 시간을 나는 진한 초록색으로 표시하는데, 내가 부담을 느끼는 일을 하는 기간엔 초록색이 거의 없어. 그러다보면 숨 돌릴 타이밍을 놓쳐서 과호흡이 오고 쓰러지고 마는 것 같아.

  그래서 나의 솔루션은, 바쁜 기간엔 나를 위한 최소의 시간을 루틴으로 실행하려고 해.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10분 청소라든가, 자기 전에 컬러링&일기 30분 쓰기. 얼마전에 B를 만나서 얘기하는데 B는 일과 본인의 생활이 50:50 이였으면 좋겠는데 잘하고 싶은 욕심에 그게 잘 안 되서 요즘 괴롭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B는 강아지 산책이 본인의 퇴근 리추얼이래. 산책만큼은 꼭 지켜야하는 리추얼로 정해두고 일이 남았더라도 딱 끊고 환기를 시키고 오는거지. 퇴근 이후에는 회사가 아닌 나의 자아에게 집중하고.

 

 사실 내가 꿈꾸는 것도 그런거였는데 말이지. 5년 동안 한번도 나는 생활에 있어 자아와 회사의 비중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언제나 내 최대치를 하고 싶어서 야근은 당연했지. 고민한만큼 결과물에 드러난다는 걸 경험으로 아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주어진 시간 내에서 일을 마치는 것도 능력이라는 걸 알아. 그래서 내가 설정한 워킹 타임 안에서 일을 마치는 걸 연습하는 중이야. 거기까지가 내 능력이라고 인정하고 오버해서 더 해내는건 내 능력으로 쳐주지 않기로 했어.

 초심자라면 내가 이 일을 할 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니까 예상시간보다 2-3배가 더 걸리는게 맞는데 콘텐츠 만든 경력이 5년차잖아. 여기서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건

 1) 내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거나 2) 욕심을 부리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

그러니까 내 솔루션은 목표치를 조절하겠다는거지. 효율적으로.


또, 쉬는 걸 미루지 않기로 다짐했어. 일을 몰아서 한 뒤 한없이 풀어지는 것도 분명 매력이 있지만 그것보다 충분히 주어진 시간에 집중하고, 쉴 땐 제대로 푹 쉬는걸 매일 연습해보려고. 그래서 하루에 의도적으로 휴식시간을 끼워넣었어. 누워서 유튜브 30분 보기라든가 산책하기라든가. '나중에' 청소하기 말고 지금 틈틈이 청소하기. '나중에' 쉬지 말고 지금 쉬기! 생각보다 쉬는 방법을 잘 몰라서 어려운 미션이지만 노력하고 있어.


요즘의 나는 이렇게 지내. 왠지 5년이 지나도 나는 똑같이 번아웃을 겪고 몰아서 쉬고를 반복하고 있을 것 같긴한데. 경력 10년차가 새롭게 알게된 번아웃 관리 방법은 뭘지 궁금하다. 지금의 내가 알게된 것들을 미래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었어. 머릿 속으론 분명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관성처럼 남 눈치 보느라,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느라 어떻게 일해야 행복한 지 잊고 있을 너에게 말이야.


종종 편지할게.


P.S. 나의 희안한 불안 증세 중 또 하나는 강의쇼핑이야. 지금도 클래스101과 코드잇 강의를 하나도 듣지 않았으면서 또 다른 강의를 찾아보고 있네... 강의도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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