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같은) 나의 이야기 14.

똑! 똑! 내 머리는 이상무?!

by 앤바라기

민폐를 끼치는 것은 정말 싫은데, 심지어 민폐를 끼치는 것조차 모르는 치매는 그 어떤 병보다 무섭다. 그런데 요즘 난, 내가 무섭다. 핸드폰을 두고 나오고, 자동차 키를 찾으러 다시 집에 갔다가 다시 핸드폰을 두고 오는 일이 잦아져 많게는 세 번을 집에 들어갔다 나와야 비로소 차에 시동을 걸 수 있다. 대화 중에 단어가 막혀 서울 토박이가 “거시기”만 몇 번 부르다 이야기를 흐지부지 끝내버린 적은 셀 수없이 많다. 그래서 몇 년째 연중행사처럼 뇌 사진을 찍고 있다. 괜찮다는 말을 들어도 안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멍청해지기 전에 읽는 뇌과학』이라는 제목은 지나치게 유혹적이었다. 마치 내 마음을 알고 제목을 지은 책처럼.


“뇌의 노화는 평소에 뇌를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해 왔는지에 따라 개인차가 달라진다. 헬스장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처럼, 누군가는 무거운 중량을 들고 누군가는 가벼운 아령에도 숨이 찬다. 뇌도 마찬가지다.”

잦아지는 건망증과 체감되는 기억력감퇴를 겪으며 노화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며 걱정만 가득했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과 안심을 주는 문장이었다. 적어도 아직은 선택지가 있다.


사실 나는 원래 소설만 골라 읽는 독서 한정 굉장한 편식 가다. 특히 과학책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재미도 없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슬픈 이유였는데, 이 책은 어려운 용어는 줄이고 헬스장 같은 일상 언어로 풀어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고 심지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뇌의 기능이나 능력을 너무나 과학적일 낯선 상황 등으로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내가 이미 겪었고 또 겪을 법한 익숙한 일상에서 뇌가 등장한다.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뇌는 단순히 “저장장치”가 아니라 “편집자”였다. 같은 일을 겪어도,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 이유이다. 뇌가 사실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 감정, 관점을 섞어 매번 다시 써 내려가는 것이다. 물론 정확성은 조금 떨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답게 편집한다는 점에서 내 두뇌에 대한 소유성이 느껴지기도 하고 많은 경험을 통해 유능한 편집자로 만들어야겠다는 도전 의식도 생긴다.


“뇌는 멍하게 있을 때 기억의 조각들이 ‘관계’를 맺으며 가장 활발한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생각이 많을 때 걷는다. 멍하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문제의 실마리가 떠오르곤 한다.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쓰고 ‘멍 때리는 시간’이라 읽을 수 있는 뇌의 재정비를 위한 브레이크타임. 복잡한 마음에 ‘나도 모르겠다’라고 내려놓았던 순간이 사실은 뇌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뇌 속 길에 우회로가 많으면, 항구에 여러 개의 닻을 내리고 단단히 정박해 있는 배처럼, 기능을 갑자기 잃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수녀원 이야기였다. 한 수녀원의 수녀들을 사후에 연구했더니 생전에 치매 증상이 없던 수녀들 중 상당수의 뇌에서 이미 치매 병변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수녀라는 직업적 특성으로 이들은 모두 규칙적인 신체활동과 균형 잡힌 식사를 하였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상당히 긴밀하게 함으로써 뇌의 우회로가 많이 탑재됐었을 거라는 예측. 치매 환자처럼 살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나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공포를 조금쯤 내려놓았다. 뇌가 망가져도 삶은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을 쳐내고 집에 가면 다시 할 일이 가득 채워지는 워킹맘이다. 퇴근길이 제2의 출근길이다. 특히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는 남편 놈과 아들놈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 집 엄마는 극한 직업이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덜 무겁길 바랐다. 이 책은 말한다. 반복되는 일은 습관이 되면 뇌 에너지를 덜 쓴다고, 덜 힘들게 할 수 있다고.

나는 그 문장에서 아주 소박한 희망을 얻었다. 내 삶의 피로도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