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랑 여행하고 계시나요?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다녀왔다. 멤버는 시어머니, 남편 그리고 아들로 최근에 일본어공부를 시작한 남편의 제안이었다. 심지어 배운 거 제대로 써먹어 보고 싶은 남편 놈 욕심으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었다.
나가면 고생이라고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시어머니와 밤낮이 바뀐 시간과 미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 이 둘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계획을 짤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 가자는 남편 놈의 말 따윈 들은 척도 안 하려고 했는데, 성격이 팔자라고 입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어느새 여행계획을 짜고 있었고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최선책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차선책으로 조식, 석식이 괜찮으면서 온천이 가능한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숙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외부 일정은 최소화로 하기로 한 것이다. 숙소에 일찍 들어가서 시어머니랑 나는 온천을, 아이는 지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일정을 계획하면 일본 여행에서 뽕은 못 뽑겠지만 최소한 평화로운 여행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포공항에서 새벽 7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쯤 날아가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 일정은 세계 최대급의 칼데라가 있는 활화산 아소산이었다. 지난 1월 20일 발생한 관광 헬리콥터 추락사고 처리로 아소산 분화구는 입산 금지였다. 기대했던 모락모락 연기는 볼 수 없었지만, 과거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 낸 울퉁불퉁하고 쩍쩍 갈라진 검붉은 화산지형이 몽골 초원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아소산 자체가 훌륭한 볼거리였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외로운 감상일기, 가족들은 그냥 일본에 있는 높은 산 취급을 했기에 나는 저평가된 아소산에게 미안했고, 흥미를 제공하지 못했음에 자책했다.
나는 후쿠오카가 세 번째 여행이다. 이십 년 전에 언니와 함께 왔었고, 작년에 직장 동료들과 왔었는데, 아소산은 작년에 처음 오고 좋았던 기억으로 자신 있게 넣은 일정이었다. 그때도 아소산의 분화구는 볼 수 없었다. 활화산이라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서 기상상태에 따라 입산규제를 하는 데 그날도 날씨가 좋지 않아서 입산 금지였었다. 그래서 이번에 보게 됨 내가 날씨 요정이었다고 동료들에게 으스대 볼 생각이었는데 다른 이유로 실패하고, 오히려 비바람에 마구 불어댔던 그때의 아소산을 그리워했다고 고백해야 했다.
대다수를 만족시키지 못한 채 이번 일본여행의 첫 숙소로 이동했다. 구로카와 온천마을에 신메이칸 료칸으로,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숙소의 형태이고 심지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120년 전통의 료칸이니, 설욕전으로 나쁘지 않다고 나름 자신했다. 도착해서 만난 료칸은 예쁜 개천 위에 걸쳐진 나무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정취 가득한 일본식 목조건물로 기대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저녁식사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다 같이 마을을 산책하기로 했다. 개천이 흐르는 숲 속에 30여 개의 목조건물이 료칸과 온천 등을 운영하며 모여있는 작은 관광마을로 아기자기한 재미가 쏠쏠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유황 냄새가 기분 나쁘지 않게 폴폴 풍겼다. 가벼운 산책으로 배는 기분 좋게 고파졌고, 료칸으로 돌아오니 모닥불 같은 느낌의 화로에서 맛있는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제는 온천을 즐기고 기분 좋게 잠들 일만 남았으니, 성공을 앞두고 있었다. 신메이칸에는 일반탕은 물론, 가족만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탕과 동굴탕 등 입맛대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온천탕이 있기 때문에 그중 하나는 시어머니 마음에 드실 거라는 근거 있는 확신. 하지만 결과는 아주 평범한 일반탕만 이용한 아쉬움. 예약제로 운영되는 프라이빗탕은, 저녁식사에 감탄한 남편 놈이 신나서 사케를 마구 즐겨주신 통에 뻗어버려 말이 통하지 않는 나와 다른 가족은 이용 방법을 몰라서 갈 수 없었고, 동굴탕은 시어머니가 낯설고 울퉁불퉁한데 어둡기까지 하니 싫다고 하신 이유였다. 이렇게 일본여행의 1일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