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죄를 사하노라
드라마정주행 중, 문득 집안이 너무나 조용함에 등골이 싸해졌습니다. 이 집에 흐르는 게 드라마 소리뿐임을 알았을 때 말이죠.
발밑에서 조용히 자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굉장히 드문 일로, 제게 엥기거나 무언가를 물어뜯고 있어야 틀림없는 우리 집 강아지 뽀삐거든요.
조금 전에도 어서 끄집어냈는지, 초록색 옷솔을 남김없이 물어뜯고 있다가 제게 압수당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다니요. 분명합니다. 또 어디선가 사고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드라마를 멈추고, 뽀삐를 불러봅니다.
"뽀삐야"
오지 않습니다. 무서운 확신이 듭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가 보는 곳은 현관입니다. 안전문이 있지만, 가끔 제대로 안 닫는 바람에 물을 열고 나가 쓰레기통을 싹 다 엎어 뒤지고 있거나 현관에서 신발을 물어뜯고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화장실 앞 쌓여있는 옷 더미에 앉아 볼 일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치우고 아이는 벗어놓고, 그 위에서 뽀삐는 사고를 칩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아요.
제가 부르는 소리에 숨 죽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세탁실로 가 보았습니다. 안전문보다 더 가끔, 세탁실 문이 열려있으면 그곳 또한 아이에게는 노다지입니다. 세탁물 더미가 한가득이니 그 푹신한 곳에서 볼 일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러다 목마르면 열린 세탁기에 묻어있는 물기를 신나게 핥아댑니다.
아,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갔을까요? 진땀이 납니다. 무슨 무서운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씁니다.
"뽀삐, 간식 먹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파 밑에서 기어 나옵니다. 제 핸드폰을 입에 물고서요. 순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다가 결국 터져버렸습니다.
"야, 이 개**야!!!*
이로써 세 개를 해 드셨습니다. 제 핸드폰만 벌써 세 개째. 아. 진짜. 육두문자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아니 먹으라는 사료는 안 먹으면서 리모컨이나 핸드폰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 녀석도 너무 밉지만, 이런 녀석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핸드폰 보험을 안 들어 놓은, 아니 아니 또 핸드폰을 소파에 둬 버린 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저란 멍청한 사람은 좋은 핸드폰을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핸드폰 매장으로 갔습니다. 무료폰이나 받아 볼 생각이었는데, 위약금이 50만 원이랍니다.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그나마 다행으로 30만 원 액정교체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알았습니다. 오늘, 국제 강아지의 날이라네요.
하, 운이 좋은 녀석입니다. 지갑과 제 마음은 여전히 쓰라리지만, 그래도 지 생일과 같은 날이니, 뽀삐의 죄는 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