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찌 살아가는 걸까요
전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우울증 때문일 수도 있고 비겁해서일 수도 용기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죠. 타인에겐 어리석게 또는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전 제 나름대로는 충분한 변명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죽지는 않으면서 죽을 때까지 아픈, 그리고 아플, 희귀병을 앓고 있거든요.
누군가는 말하겠죠. 아직은 살아있지 않냐고. 그러면 살아가는 거라고. 그런데 저는 그걸 정말 모르겠어요.
오늘은 그냥 버티는 하루고 내일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살아가는 걸까요? 병이 아니어도, 저는 삶이 너무 재미가 없거든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은 찾지 못했고 갖고 있는 재주나 능력은 거의 없어서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갔듯, 상황에 맞춰 구했던 직장을 20년째 생계형으로 다니고 있어요.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피곤함을 넋두리하는 뻔뻔한 남편, 고3이지만 조금도 쉼 없이 게임과 남이 만든 SNS 콘텐츠에 매진할 뿐인 아이 그리고 분리불안증으로 온종일 저만 졸졸 쫓아다니며 잠시라도 안 보이면 문을 박박 긁고 짖어대는 강아지와 살고 있어요. 하지만 시어머니가 낳은 남편 놈이야 모른척한다고 해도,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와 가슴으로 낳은 강아지에 대한 책임만으로 오늘 하루도 버티는 삶.
그래서 저는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이해되고 솔직히 부럽기도 해요. 먼저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고는 있지만, 원망하지는 않아요. 그 친구가 지금은 평안하기를 바랄 뿐.
그런데 오늘 지인으로부터 영상 하나를 공유받았어요. 신문 배달하는 팔십 대 할아버지.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는 60만 원을 벌어 20만 원은 책을 사 읽는 당신의 삶을 사랑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펴지지 않는 오른손도 더한 사람이 있지 않냐며 문제없다고 말씀하시네요. 심지어 당신이 읽은 신문은 고물상에 팔아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할아버지. 제가 아무리 병으로 아프다고 해도 할아버지보다 아플까, 우울증에 딸린 무기력증으로 몸이 아무리 무겁다고 한들 할아버지의 아침보다 더 무거울까를 생각하면, 제 오랜 변명거리가 옹졸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몰랐던 건 아녜요. 저의 옹졸함. 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가 있어요. 친구에게 말할 수는 없는 절대 비밀 한 가지, 제가 그 친구를 사실은 너무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예요. 네, 저도 알아요. 정말 나쁜 생각이라는 것을요.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 병과 싸워가면서 현실 속 삶을 살아내고 있는 친구에게 잔인한 이야기겠죠. 나라면 그렇게 힘들게 싸워내지 않고 기분 좋게 패배할 거야라고 더더욱 말할 수 없어요. 그냥 그 친구의 병도 부럽고, 그냥 열심히 이겨내고 있는 그리고 살아내는 친구의 의지도 부러워요. 차마 말 못 할 부끄러운 질문임을 알면서도 제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 너는 어떻게,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니.
그럼에도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를 보면,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별거 있나.’ 하고 툭툭 털어내고 그냥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야지 싶긴 한데, 맞나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
다들 어찌 살아가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