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차라리 저녁을 제대로 먹을 걸...
이 말은 사실 엄청 식상한 후회 중 하나죠.
하지만 그래도 '후회'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지금도 또 저질러버렸는걸요.
그 시작은 이래요. (아, 지금은 새벽 12시 33분이에요. 해 없는, 달마저도 자러 가 없을 것 같은)
늦은 '줌' 모임이 끝나고 서재에서 나와보니, 아이가 야식으로 제육볶음 밀키트 하나를 해 먹으려다가 살짝 태워서 (지 몸 되게 끔찍하게 여기는 애라) 버리려던 참이더라고요.
"아, 아, 안돼! 왜, 왜 버리려고?"
"태워서. 못 먹잖아."
저는 다급하게 아이의 행동을 저지했고, 그 애는 틈을 놓치지 않고 야식배달을 요구했어요.
그렇게 시작됐어요. 오늘의 아니 어제부터 이어진 긴- 후회가.
하지만 처음부터 먹겠단 의지는 아녔어요. 그저 아주 살짝 탄 제육볶음을 버릴 수는 없었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면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알뜰정신의 발현이었다고 생각해요.
물을 끓였고 조금쯤 타버렸으나 제대로 익지 않은 제육볶음을 넣어 조금 더 끓여주었어요. 탄 부분이 익으면서 떨어져 나왔고 저는 재빨리 제육만 건져 미리 육수내어 끓여놓은 다른 냄비에 넣고 다시 끓이기 시작했어요. 뽀글뽀글, 거품과 연기 속에 언듯 언듯 발그스름한 제육이 나왔다 들어갔다 또 빙글 뱅글. 이건 누가 봐도 고기 고명 넣은 김치말이국수가 떠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조금 면발을 넣어봤는데 진짜 영락없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죠. 후회의 입트임은.
처음엔 김치말이국수 같았은데, 먹다 보니 면으로 아주 조금쯤 걸쭉해져서 김치칼국수를 먹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러면 김치만두칼국수는 또 별미잖아요? 아, 만두 안 좋아하시나요? 전 원래 찐만두파고 국물만두파는 아녔는데, 지금은 둘 다 없어서 못 먹어요. 나이 들수록 성격이 둥글둥글해져야 하는 데, 입맛과 몸만 둥글해지네요. 여하튼, 그래서 집에 마침 만두도 있겠다 넣어봤더니. 전 그저 저의 소생술이 감탄스러웠네요.
그렇게 이어진 2일에 걸쳐진(!) 후회의 입터짐이었고, 그 '후회'의 끝은 과연 제육볶음 밀키트 한 봉의 소생이 옳았냐 하는 번민까지 오게 됩니다. 그 녀석 한 봉만 버렸다면, 제 기분도 면발도 그리고 만두까지 살아있었을 텐데말이죠.
지금은 곧 쌓일 제 살만 살아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