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같은) 나의 이야기 4

봄바람 보다 무서운 겨울바람

by 앤바라기

"모모 씨, 진짜 많이 속상하셨겠다"

의사 선생님의 이 한마디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한마디 말을 위해 나는 그동안 그렇게 많은 정신과 병원을 떠돌았고, 이 한마디가 열 알의 약보다 나을 거라는 확신. 그래서 난 그동안의 정신과 떠돌이 생활 청산하고 이 병원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나는 다른 병을 앓게 되었다.


이 주 마다 가는 병원, 평상시에는 증세가 그냥 그냥인데 이상하게 병원에 도착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유난히 긴장되는 것이 역시 난 낫지 않고 있는 건가 싶은 날의 계속이었다.


오늘도 역시 대기하는 동안 내 심장은 두근거렸고 병원 안의 적당한 온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두 다리는 불안증세처럼 달달달, 내 입은 어느새 손톱을 잘근 잘근 씹어먹고 있었다. 손톱이 없어지기 전에 다행히도 간호사선생님의 호명이 있었고 난 진료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이에요. 모모 씨.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제주도에 좀 길게 다녀왔어요. 길게 간 덕에 여유롭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오기 전날에 아무리 약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아서 혼이 났었어요.”


“아이고. 우리 모모 씨 진짜 오기 싫으셨나 보다. 그만큼 제주도가 정말 좋았었나 봐요. 제주도에서의 모모 씨 보고 싶어 지네요.(미소)”


순간 알았다. 왜 병원에만 오면 내 심장은 더 두근거리고 긴장감은 더 높아졌었는지. 바로 저 호칭과 미소 때문이었다.


사무실에서도 “모모 씨”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우리 모모 씨는 아니었을 것이며(그러고 싶지도 않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저 미소는 더더욱 아니었다. 집에 있는 사람, 남편놈은 모모 씨처럼 사랑스러운 호칭은 고사하고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미소와 같은 미소는 (일단 ‘미소’라고 부를 수 있다면) 초콜릿 백만 개를 처먹어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구차한 변명이겠으나, 마음의 병도 앓고 있는 나로서는,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감싸 주는 듯한 목소리와 미소로 부르는 “모모 씨”는 내게 봄바람 보다 무서운 겨울바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물론 의사 선생님께는 봉변과 같을 그리고 남편놈한테는 많이 미안할 금지된 생각임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냥 조금 겨울바람 좀 시원하게 맞으면서 병원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다닐 수 있다면 먹는 약 대신 행동 약 또는 플라세보 효과의 일종이라면 괜찮지 않겠냐고 조금만 우겨볼까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의사 선생님과 뭘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조금만 겨울바람을 시원하게 맞겠다는 것뿐이다. 원체 바람을 좋아해서 제주도가 좋은 나이니(그냥 같은 바람이라고 치자).


그래도 너무 심각하게 나쁜 년으로만 보지는 말아 줄 것은 나의 즐김(?)은 여기까지 일 것이라는 점이다. 한 놈이랑만 살아봤지만(살 거지만), 결국 남편은 남(의) 편이라 결국 다 그놈이 그놈인 것을 그동안의 (많지는 않지만) 집적남들을 통해 충분히 자~알 알고 있다. 나한테 잘해 주길래 집적거리는 것은 싫어도 ‘오, 스윗남. 부인이 불쌍한데 부럽기도 하네’ 싶긴 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지 부인한테는 내 남편 놈과 똑같은 놈들인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역시 그놈이 그놈이지, 그놈들 종자가 그러한 것이라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설령 모두가 그렇지 않고 현실에도 양관식이 있다고 해도 굳이 찍어먹어 보고 된장이지 똥인지 알고 싶지 않은 나이 45세이고, 의사 선생님이 이걸 읽으신다면 병원 문을 닫을 뜨악스러운 이야기인 것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45세이므로.


겨울바람은 봄이 오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겠지 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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