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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Dec 24. 2020

독자는 서평을 만들고 서평은 독자를 만든다

서울리뷰오브북스 0호를 읽고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사람들이 책을 더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오랜 고민에 대한 새로운 시도다.
정기구독 여부는... 고민 중.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1인당 평균 독서권수는 7.3권이다. 생각보다 많은데?! 책 말고도 재밌는 게 많은 세상에서 이 정도면 선방한 거 아닐까. 눈여겨봐야 할 건 독서인구수다. 같은 기간 독서인구, 그러니까 교과서나 수험서 등을 제외한 종이책을 1년에 1권 이상 읽는 사람은 50.6%(2013년 62.4%)다. 두 명 중 한 명은 1년 내내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거다.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독서인구’들이 1년에 14.4권(2013년 17.9권)을 읽어서 평균이 7권 넘게 나온 거였다.


그냥, 좀 아쉽다. 책에는 책만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책이 우월하다는 게 아니다. 좋은 영화, 좋은 음악이 저마다 다른 감동을 주듯 좋은 책에도 첫 장을 펼치고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치밀하게 쌓이는 논리나 감정들이 주는 특유의 재미가 있다. 책이 재미로 밀리는 건 아닌데! 혹시 재미있는 책을 접하기가 어려워서 책 자체를 멀리하게 된 걸까? 재밌는 책, 흥미로운 책을 조금이라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독서인구가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이 중요한... 것 같긴 한데. 당장 서평이라 하면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이야기, 단행본에 실리는 추천사, 번역서 옮긴이의 말, 신문에 실리는 신간 소개 정도가 생각난다. 문학상 평론은 흥미롭지만 일 년에 몇 번 접할 뿐이다. 단행본 추천사는 인맥 대잔치 수준이라 읽을 가치가 없지 싶고, 옮긴이의 말은 가아끔 좋다가도 ‘왜 이 책에 자기 에세이를 넣나’ 싶은 게 대다수다. 신간 소개 기사는 출판사 책 소개랑 뭐가 다른가 싶어 읽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책이랑 상관없는 일을 하지만 책 읽는 낙으로 사는 독자로서, 저런 서평을 읽고 책을 고르느니 직접 책을 들춰보는 게 나았다.



그럼 이번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왜 샀느냐. 순 덕심이었다. 좋아하는 김영민 작가의 소설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매번 에세이를 재밌게 읽었는데 소설은 어떻게 쓸까 궁금했다. 결과는 대만족, 생각지도 못한 가전체 느낌에 문장마다 특유의 희한한 유우머가 돋보여서 많이 웃었다.


조금만 더 덕심으로 이야기를 이어보자. 김영민 작가의 글에는 종종 '제대로 된 서평이 필요하다'는 구절이 나왔었다. 그런 그가 함께 꾸렸다는 서평지에는 어떤 글들이 담겼을까, 소책자에 실린 짧은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본권까지 펼친 건 그 때문이다. 사실 별 기대하지 않았다. 서평이라니. 차라리 나랑 취향 맞는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소개글이 책 고르는 데 더 도움되겠다. 하지만 인스타의 짧은 후기는 대부분 본문 소개, 책을 읽고 난 다음의 감정 묘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긴 글이 드문 플랫폼이다 보니 좋고 나쁜 이유가 명확한 글은 드물다. 맨날 보는 책만 보게 된다는 심각한 단점도 있고. 이왕 산 김에 읽어보지 뭐, 정도의 새침한 마음으로 책을 잡았는데. 오...오!...음...


오...

물성이 좋은 책이다. 일반 문고본보다는 조금 큰데 양손에 쥐고 쫙 펴서 읽으면 기분이 좋다. 적당한 폰트 크기에 적절한 자간, 넉넉하지만 과하지 않은 상하좌우 여백까지 안정감을 주는 본문 디자인도 굳굳.

오!...

편집장의 말에 의하면 이 서평지에는 철학, 역사, 문학, 한국어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자연과학, 과학기술사, 건축학, 미디어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고민이 담겼다고 한다. 다채로운 분야에 마음이 웅장해지다가도 곧 쪼그라든 게, 너무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지레짐작되어서다. 읽어보니 의외로 그렇진 않았다. 굉장히 다양한 책, 심지어 한국에 번역도 되지 않은 책까지 등장해 ‘배우신 분들이 고르는 책은 역시 다른 건가’ 싶은 와중에 쉽고 재밌는 글이 많았다. 특히 좋았던 서평은 '가난 사파리가 가난 수용소가 될 때', '기회의 평등은 불가능한가?' 였다. 가난과 평등이 평소 관심 주제여서 그런가? 서평 덕에 장바구니에 담긴 책이 늘어났다. 다양한 책에서 말하는 코로나19를 흥미롭게 설명해준 '코로나19, 공포를 활용하는 자는 누구인가',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삶이 가능할까' 도 재밌게 읽었다.

음...

전형적인 노잼 서평을 벗어나지 못한 글도 몇 편 있었다. 문장이나 논리가 영 매끄럽지 않은 글도 보였고 한두 편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싶기도 했다. 좋은 글이 더 많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하는 지식을 얻은 만큼 혹평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봄에 나온다는 1호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인 건... 재밌는 글이 앞쪽에 많아서다. 편집위원들이 쓴 뒤쪽의 글은... 음... 내 취향이 아닌 것들이 몇 편 있었다. 음... 다음 권은 어떠려나... 음...

그러다 나만 음... 인가? 싶어 다른 독서인구는 이 서평지를 어떻게 봤을까 찾아봤다. 긍정적인 후기가 많았지만 ‘이 돈 주고 볼 만한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평소에 학문적으로 깊이 있는 책을 많이 읽는 소수의 사람이라면 이 서평지가 다루는 내용이 얕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초에 이 서평지는 다수를 위해 만들어졌다. 편집장은 한 인터뷰에서 “최종 독자층은 일반인들이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딱딱한 문체를 버리고 ‘읽는 재미’를 함께 추구해야 서평 전문지가 생존할 수 있다”라는 의견을 남긴 바 있다. 일반인을 위한, 책에 관심을 가지게 할 만한 서평이라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책이라는 걸 읽는 사람만 계속 읽는 이 시대에, 관련 산업이 건전하게 살아남으려면 책에 대한 재밌는 글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책의 재미를 알아가는 사람이 늘어나면 독서인구가 늘지 않을까? 그렇게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면 책값도 더 낼만해지지 않을까? 그럼 나도 책을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니, 나도 가끔씩은 모자란 의견이나마 어딘가에 정리해 남겨두고 싶어졌다. 서평이라고 하긴 그렇고, 이 책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려두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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