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과 외면의 풍경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여러분은 자살하고 싶은가?
지난 2017년 기준 대한민국의 총 자살자 수는 12,463명, 인구 10만명 당 약 24.3명이 자살하는 수준이다. 이는 한달 안에 300세대 아파트 전 가족(1,200명)이, 8개월이면 울릉도 주민 전부(10,000명)이 자살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약 13년간 OECD 자살률 1위를 달성한 전력이 있다. 2017년에 2위로 내려간 것도 자살률이 줄었기 때문이 아닌 원래 자살률이 대한민국보다 높았던 리투아니아가 OECD에 신규 가입했기 때문이다. 1994년 문민정부로의 민정이양 직후에는 지금처럼 높은 수준은 아니었으나 IMF 사태 이후 급증하여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 수준의 자살률에 이르렀다. 우리는 왜 자살하고자 할까?
이강백의 작품 <자살에 관하여>는 이 문제를 파고든다. 이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본 건 1995년이므로 1994년 자살자 수는 4,277명이었다. 2017년에 비하면 약 1/3 수준인데도 이강백은 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파고든다.
<자살에 관하여>에는 다양한 이유로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내 말을 안 들어줘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서,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등 개개인이 자살하려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살에 대한 욕구를 공유한다. 조금 더 사회적으로 확장시키면 자살에 대한 욕구를 국가적으로 공유한다.
자살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부장과 유경화가 통화할 때, 작가는 유경화의 입을 빌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도 자살하고 싶지?”.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을 순수함의 갈고리로 후벼 파내는 듯한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머뭇거리다가도 ‘그렇다’는 대답 외에는 할 수 없다. 부장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부장은 결국 유경화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뒤 ‘그렇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부장에게 자살 상담 능력을 인정받은 유경화는 자살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유경화는 자살 상담 프로그램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본인 스스로가 다수의 자살 시도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살자의 심리를 가장 잘 알았다. 게다가 국가적으로 자살 욕구를 공유하고 있는 사회에서 타인의 자살 욕구가 위로 받는 모습은 국가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결국 프로그램은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결국 프로그램은 폐지되고 만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유경화는 단골 내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살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방송국에 마지막으로 전화해 자살 상담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자살하지 않고, 결국 유경화의 화려했던 커리어도 막을 내리고 만다.
이 작품이 공개되고 지금까지 약 2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죽음을 껴안고 살고 있다. 오히려 그 때보다 더 죽음과 한 몸이 되어 살고 있다. 그러나 <자살에 관하여>는 과연 이 ‘죽음’에서 멈추는 이야기인가? 절대 아니다. 이 이야기가 유경화의 입을 빌어 말하고자 하는 건, ‘당신도 자살하고 싶냐’는 질문을 통해 정말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일본 가수 Amazarashi가 쓰고 Nakashima Mika가 부른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죽는 것만 생각하는 건 분명 살아간다는 일에 너무 성실하기 때문에’. 자살 시도는 죽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람을 잡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등, 오히려 정말 그 무엇보다도 삶에 가까운 동기를 가진다. 극 중 유경화는 ‘자살 실패 후 식욕과 성욕이 가장 왕성하다’고 하며, ‘자살의 색은 검은색이 아니라 가장 다채롭고 화려한 색’이라고 한다. 자살은 오히려 그 무엇보다도 삶에 맞닿아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결국 자살에 대한 욕망은 죽음을 원하는 것이 아닌,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욕망이자 집착이며, 죽고자 하는 이는 누구보다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자살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