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지난겨울, 꽃샘추위와 함께 간간히 따뜻해지는 날씨가 2월의 끝자락을 알려올 때, 성북마을극장에선 <2019 인권 연극제 이어가기>의 일환으로 <뱀파이어와의 하룻밤>이 상연됐다. 조명이나 연기 기초 등, 공연 내내 아쉬운 점이 안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준 공연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것이 성애이든 아니든, 우리에겐 ‘사랑’이라고 불리는 보편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때로는 연인에게, 때로는 가족에게, 때로는 친구에게, 때로는 어떤 타인에게 우리는 ‘사랑’이라고 불리는 감정을 느끼며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모두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리고 모두 같은 형태로 표현돼야만 하는 것일까? 다른, 그러나 여전히 우리인 사람들의, 또 다른 어떤 형태의 사랑에 대해 <뱀파이어와의 하룻밤>은 말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극 중에서 리자는 뱀파이어로서 혜신의 말에 따르면 눈빛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 리자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 줄까?’, ‘뭐가 필요해?’라며 물어본다. 리자는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해 주고 그 대가로 피를 살짝 받아간다. 그리고 리자에게 자신의 소망을 의탁하는 모든 이는,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설령 자신이 모르고 있었다 하더라도. 미나는 끝없이 사랑과 소통을 갈구한다. 모든 SNS를 확인하고도 실시간 검색어까지 확인해야 하는 미나는 끊임없이 세계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 윤오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나서 다른 것이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로운 다리는 원래의 다리가 아니고, 점차 자신을 갉아먹는다. 혜신은 뱀파이어를 강하게 증오한다. 어릴 적 뱀파이어에게 한 번 매혹당한 혜신은 강한 반발심으로 모든 뱀파이어를 없애고자 한다. 뱀파이어를 모두 없애야 사회를 어지럽히는 존재가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자는 이 모두를 관망한다. 리자는 불멸자의 영원에서 유한한 인간의 평생을 바라본다. 인간이 한 평생에서 욕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리자가 보기에 별 것 아니다. 그래서 리자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미나와 관계를 가지고, 윤오가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윤오의 변화를 바라본다. 혜신이 뱀파이어를 찾아다니는 것을 관망하며 적절히 피해 다니며 자신의 삶을 지속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나와 윤오, 혜신은 모두 달라진다. 미나는 윤오와의 관계가 달라지고, 윤오는 삶에 대한 애정이 달라지며 혜신은 뱀파이어에 대한 증오감이 달라진다. 달라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인 미나와 윤오와 혜신은 뱀파이어인 리자에게 감염되어 달라졌는가? 아니, 그저 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뱀파이어로 존재하고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나는 다른 존재와의 사랑에 빠지고 혜신은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고 증오한다. 그리고 윤오는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다른 존재에게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사랑을 느끼는 것은 올바른 것일까?
우리는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미나, 윤오, 혜신 모두 달라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을 달라지게 만든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을 통해 그들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다른 형태의,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사랑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