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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Jan 18. 2021

삶이 벅찬 이들에게

연극 <아들> 배우 이석준 이주승

가장 가까운 사이가 가족이라고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연극 <아들>의 인물 중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얽히고 얽혀 서로가 서로를 병들게 만든다. 누군가는 잔인한 악인을 두고 “이게 현실이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진짜 현실’은 이렇지 않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인이 되고 아이를 가져도 우리는 여전히 관계 맺는 법에 미숙하다.

작품 속 피에르와 니콜라도 그렇다. 두 사람의 서툰 관계 맺기로 야기된 비극은 관객의 경험을 파고들고 숨겨둔 것들을 들춰 놓는다. 누군가의 과거, 현실, 미래. 수많은 기억이 뒤엉킨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들은 어떤 광경을 마주할까. 피에르 역의 배우 이석준, 니콜라 역의 배우 이주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대본을 접하셨을 때 어떠셨나요?
이석준 : 쇼킹했던 것 같아요. 우울증 자체를 이렇게 섬세하게 다룬 작품을 본 적이 없었고, 모든 인물에게 당위성이 있어 보였어요. 누군가 악역을 맡는다던가 니콜라를 몰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현실에서 잘못 바라보고 있는 지점이 동시다발적으로 보였죠.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이주승 : 한 번 읽는 것만으로 훅 들어온 무언가가 있었어요. 니콜라의 마음을 단번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극에 대한 이해가 빨리 들어오는 작품이어서 연기했을 때 많은 공감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석준 씨는 대사량이 방대했던 연극 <라스트 세션>에 이어 또다시 힘이 많이 들어가는 극을 선택하셨어요. 두 작품을 연달아서 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석준 : 사실 힘든 건 어떤 작품을 만나도 힘들게 느껴져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거든요.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유일한 이유는 ‘좋은 작품’이에요. 제게 있어 좋은 작품은 대본에서 정답이 아닌 물음표를 던져주는 순간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 많다는 이야기니까. 그런 점에 있어서 <아들>은 확신이 들었어요.


먼저 니콜라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건의 중심에 선 니콜라를 연기하는 배우는 끊임없이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와 같은 상황을 겪어본 관객은 쉽게 빠져들겠지만 전혀 관계없는 이들은 그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연기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이주승 : 외부 상황이나 니콜라를 대하는 가족들의 방향이 저를 좌지우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니콜라 안에 있는 병이 가족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걸 자기 자신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어떠한 사건들이 그의 감정을 변화시키면 안 되는 거죠. 가족의 잘못으로 니콜라가 변화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신경 썼어요. 또 니콜라는 굉장히 불안한 상태인데 본인도 무엇이 원인인지 몰라요. 다만 어렸을 적 자신을 잡아줬던 중심들이 현 상황에서는 사라졌다고 여기죠. 그리고 남아있는 것들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존재해요. 그런 부분에 집중했어요.

공연 중간중간 암전과 함께 니콜라의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니콜라에게 산책은 어떤 행위라고 생각하세요?
이주승 : 니콜라에게 해소를 주는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부모님께 들키지 않고 학교에 가지 않는 방법 중 할만한 게 없으니까 산책을 선택한 것 같아요. 또 글을 쓸 것도 없으니 가만히 앉아서 세상 사람들이나 바라보고. 그게 니콜라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글을 쓸 것도 없었다’는 것은 니콜라가 실제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의미일까요?
이석준 : ‘죽음이 기다리리라’(La Mort Attendra)라는 책은 피에르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거죠. 저는 니콜라가 걸어온 과정이 책이 되었을 순 있겠지만, 산책하며 쓴 글이 책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공책에 적힌 글이 최소한의 모티브가 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건 글이라기보단 흘려보냄이 맞지 않을까요. 시간과 상태, 관계를 흘려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극 내에서 인물들은 모두 니콜라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요. 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지 니콜라를 위한 최선은 아니지 않았을까요?
이석준 : 모든 상황이 오해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니콜라가 벌이는 일이 탈선 같은 문제라면 이들의 행위가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게 단순한 일이 아니잖아요. 보이지 않는 다고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닌데, 마음의 작은 생채기 정도로 생각하는 게 문제예요. 니콜라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 니콜라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거거든요. 가족들이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상황을 상태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던 거죠.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각자가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 없는 부모도 아니었고 니콜라를 배제하는 새엄마도 아니었단 말이죠. 모두가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게 커요.

반면 피에르는 니콜라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줬다고, 다 가졌으면 서 왜 이러냐고 외치죠. 자신이 받지 못했던 아버지의 보살핌을 제공해주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이석준 : 이게 모든 어른이 갖고 있는 착각 같아요. “너는 다 할 수 있는데, 왜 그러냐.”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거든요. 저는 이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요.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아이에게 “나는 이런 게 부족했는데, 너는 무엇이 부족하니?”라고 물어볼지, 그 눈높이를 찾아갈지.

그렇다면 니콜라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주승 : 니콜라 역시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본질을 누군가 알려주는 게 가장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저도 연기하면서 아빠(피에르)가 제게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게 가장 상처가 되거든요. 아빠가 이해를 못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마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친구한테 너무 많은 부담감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한때 나도 다 겪었던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라는 태도로요. 이런 점을 항상 경계하려고 하지만 저도 모르게 같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두 분은 어떠세요?
이석준 : 저도 저런 말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새로운 관점이 생겼어요. 누군가의 상처나 상태나 힘듦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 갖춰진 게 없다. 누군가에겐 마음의 작은 생채기가 너무 아프게 느껴질 수 있고, 누군가는 피가 철철 흐르는 상황임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죠. 이겨낼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전부 다른 거예요.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의 상태가 모두 다른데 이것을 나의 잣대, 기준에 맞춰 충고할 수 없죠.
이주승 : 저는 제 상황을 잘 해결하질 못했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웃음) ‘답정너’라는 말이 있잖아요.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너는 대답만 해. 이게 사실 너는 듣기만 해 달라는 말이거든요. 저는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최대한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공연이 시작되고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두 번은 보기 힘들겠다는 것이었어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너무 잘 만든 극이기 때문에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죠. 이 비극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두 분도 힘들지 않으실까 궁금했어요.
이석준 :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힘들긴 힘든데 아주 오랜 시간 이런 식의 작업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무대 밖에서는 안에서 느낀 감정을 끊어내려 해요. 내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 가끔 인간이라는 동물이 참 신기해요. 이렇게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가족이나 친구들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에도 차이가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제 아들과 집에서 신이 나게 놀다가도 2시간 뒤에 죽어가는 아들을 무대에서 마주해야 해야 하죠. 그런데 저는 이미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고, 극장 문을 여는 순간 자연스럽게 감정이 흘러가요. 오히려 원캐스트로 감정을 쭉 가져갈 수 있으니까 편한 부분도 있어요. 사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힘들다고 해야 하나 고민이 드는데.(웃음) 관객분들은 처음 볼 때의 충격이 크니까 공연을 연결하는 배우들을 걱정하는 것 같아요.
이주승 : 저는 힘들긴 한데, 작년 <킬롤로지>보다는 안 힘든 것 같아요. 무대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중요한데 가끔 ‘어? 너무 좋은데?’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웃음) 저는 원캐스트인 배우분들에 비해서 (강)승호랑 번갈아 가면서 하니까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오히려 재밌어요. 그리고 <아들>은 두 번은 볼만 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반전이 아닌 반전이 있잖아요. 그걸 안 상태로 보는 것과 모르는 상태로 보는 것에 있어 생각할 거리가 확연히 달라요. 그래서 두 번은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석준 : 저도 덧붙이자면, 저는 이 작품을 두 번째 읽을 때가 더 좋았어요. 앞에서 작품 속 인물들이 놓쳤던 부분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일상으로 흘러가던 것을 역순으로 보니까 새로운 지점들이 많이 보였어요. 제 상황에서도 주변인이 보내는 SOS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죠.


우울증을 다루는 극이 앞서 전무했던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유독 <아들>이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주승 : 가족 이야기라 더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어 그런 것 같아요. 니콜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고, 누군가는 니콜라의 입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가깝게 느끼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석준 : 저는 우울증으로 인한 사건을 다루는 것을 봤어도 이렇게 우울증 자체를 깊게 다루는 극은 처음이라고 생각해요. 앞선 작품들은 대부분 우울증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명확하게 담고 답을 제시하려 했었죠. 이번에 정말 많이 느낀 건 우울증이 어느 날 갑자기 손님처럼 찾아온 병이라는 거예요. <아들>은 이미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모든 세대가 우울증의 전 단계인 ‘우울감’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러한 가정환경 패턴을 모두가 가지고 있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 관객들이 자신이 느끼는 괴로움을 무대에 끌어올린 듯한 느낌을 받아서 더 고통스러워하고 공감하고 많이 우는 것 같아요.

우울감을 느낄 때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이석준 : 솔직히 말하면 저는 방법이 없다고 느꼈던 사람이고. 니콜라가 한 말 중에 ‘그 누구도 자기를 모르는 것 같다’가 있어요. 심지어 의사를 향해서도 자신을 모른다고 하잖아요. 결국 살아가면서 아픔을 고치고 없애는 방법을 알기보다는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고 생각해요. 맞다 보면 맷집이 생겨서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내가 모르는 사이 커다란 딱지가 앉길 바라는 정도.
이주승 : 극복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정신과 의사가 됐을 것 같아요.(웃음) 정확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대부분 최면에 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꺼풀이 한 겹 벗겨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을 계속 모르고 살아갈 순 있지만 아는 걸 모르고 살아갈 순 없거든요. 그래서 최면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 최면을 찾는 게 중요하죠.

니콜라 본인과 가족들이 니콜라의 상태를 조금 더 이해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요?
이석준 :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작품은 끝없는 절망만 남아요. 휘어져 버린 것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죠. 거기까지가 연극의 몫이에요. 사실 모든 것들이 이해와 공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두 가지가 완성되면 사회가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법을 찾아야 하거든요. 우울증이나 동성애 등 우리가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다루는 방법이 낯선 것들이 있는 것처럼, 연극은 이러한 화두를 던지고 고민의 장을 만들어주는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연극이 매력적인 이유는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것에 있죠.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어떤 것을 얻어갔으면 하나요?
이주승 : 가족의 무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내 생각처럼 돌아가지만은 않잖아요. 서로 이해가 필요하고 그 과정이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석준 :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한 마을에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이 스스로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주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 100명 이상이 교육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함께 배우며 살아가야 공존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우울증도 마찬가지예요. 성장하며 부딪히는 현시대의 다양한 문제들 때문에 많은 청년이 우울증과 마주하면서 살아갈 거란 말이죠. 그것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문제를 직시하는 초입에 있지 않을까요.



*해당 인터뷰는 공연문화월간지 시어터플러스 2020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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