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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Jan 18. 2021

푸르른 불꽃처럼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배우 이상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소에 빗대어 ’소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배우 이상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달리며 여가시간 틈틈이 반려 물고기를 돌보는 부지런함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그의 열정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가득했다.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의 몬티는 어느 날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분 상승을 위해 제거해야 할 여덟 명의 인물들. 몬티는 열정 하나로 다이스퀴스들을 단숨에 무장해제시킨다. 배우 이상이도 몬티 같은 열정의 소유자였다. 길어지는 촬영에도 지친 기색 없이 신난 표정으로 힘껏 팝콘을 던지고, 인터뷰 도중 반려 물고기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늘어놨다. 옆에 있으면 덩달아 힘이 나는 정도의 열정. 흔히 열정을 불꽃에 비교하곤 하는데 그의 불꽃은 푸른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불꽃보다 더욱 뜨거운,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물을 닮은 푸른 불꽃.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통해 ‘국민 사돈’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무대, 예능까지. 정말 바쁘면서 동시에 즐겁기도 한 한 해였을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배우라는 직업에 있어 관심과 사랑,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런 걸 꿈꾸고 시작하기도 했고. 장편 드라마를 통해서 이전보다 조금 더 알아 봐주시니 감사하죠. 또 작품을 통해 집에서 쉴 때 보던 예능에도 출연할 수 있게 되어서 신기하기도 하고요.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잘해야겠다는. 저를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아진 만큼 이전보다 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에요.

차기작으로 드라마가 아닌 무대, 그것도 <젠틀맨스가이드>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정말 단순해요. <젠틀맨스가이드>를 봤던 한 사람으로서 “저건 정말 해보고 싶다, 재미있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죠. 그리고 이제는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생각해요. 무대를 하는 배우라고 해서 무대에만 오르지 않잖아요. 심지어 최근엔 ‘부캐’라는 말도 열풍이고요. 제가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무대가 그리웠던 마음도 있었어요.

초연부터 큰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지만 아직 생소한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분들께 작품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말하고 싶나요.
새해를 맞이하다 보니 카드나 선물을 많이 준비하시는 것 같아요. 공연 티켓 선물은 어떠실까요. 선물용으로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일반 관객에게 뮤지컬이 아직까지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장르일 텐데, <젠틀맨스가이드>는 개그와 아기자기함이 골고루 담긴 작품이거든요. 드라마든 뮤지컬이든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보게 되잖아요. 작품은 몬티가 자신도 몰랐던 신분을 찾아가는 여정을 참 재미있게 그리고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 맡게 된 몬티 나바로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인간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평범하게 살아가던 몬티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가문과 신분을 알게 되고 점점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변해가죠. 그게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요. 일을 잘하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그런 욕심들. 그런 것들을 대변하고 뚜렷한 이야기로 담아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몬티를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나와 같은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내면인 거죠.

몬티는 시벨라와 피비 두 여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인물이죠. 몬티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뮤지컬 배우 출신의 아버지 덕분에 겉으로 보이는 매력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을 대하는 예의 바른 태도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 당찬 모습도 있죠. 그런 다양한 매력 중 시벨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노골적인 모습에, 반대로 피비는 몬티의 일개미 같은 진중한 모습에 반하지 않았나 싶어요. 공통적으로는 몬티의 ‘순수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겠죠.

그런 매력 중 어떤 것이 본인과 가장 어울릴까요.
일개미 같은 모습이 저한테도 있는 것 같아요. 팬분들이 쉬지 않고 일한다며 저를 ‘소상이’라고 부르기도 하거든요.

몬티처럼 바라는 바를 위해 전투적으로 나서는 편인가요?
예능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올린 UCC 영상들이 회자됐는데, 그때마다 “왜 하게 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재미있어서, 하고 싶어서’라는 단순한 동기였거든요. 그런 동기가 생길 때마다 거침없이 실행하는 편인 것 같아요. 내가 이루고 싶고 만들어 내고 싶을 땐, 저도 몬티처럼 확 나서는 모습이 있죠. 거기에 좋은 반응과 칭찬을 얻게 되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배역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부분이 있을까요.
배역보다는 행동에 있어서 노력이 필요했어요. 코어 힘이 필요했 거든요. 2막 ‘I’ve decide to merry you’에서 문 잡고 하는 연기가 있는데 보통 허리, 팔 힘으로는 하기 힘들어요. 몸을 숙이면서 노래도 불러야 하고. 그래서 플랭크로 코어 힘도 늘리고, 개막 전 이 장면을 정말 많이 연습했어요.

몬티와 대적하는 인물인 다이스퀴스로 네 분의 배우와 만나고 있어요.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진 것 같나요.
저랑 첫 공연을 한 최재림 형 같은 경우는 정말 커요. 그래서 연기할 때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기분이에요. 저도 작은 편은 아닌데 유일하게 우러러보면서 연기를 하게 되죠. 또 재림이 형이 평소에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잠깐씩 치고 나오는 형만의 아재 개그가 다이스퀴스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이규형 형 같은 경우는 정말 아기자기해요. 새콤달콤한 캔디류 같은 장난이 있는 형이라 잔 펀치가 많은 다이스퀴스죠. 정상훈 형은 시한폭탄 같은 다이스퀴스예요. 코미디 장르이다 보니 약간의 애드리브가 허용되는 부분이 곳곳에 있는데, 이 형은 예측을 못하겠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요. 순발력이나 재치가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오만석 형은 확실히 무게감이 있어요. 이 극의 흐름을 조종하는 항해사 같은 다이스퀴스. 실제 제 연기 선생님이셨기도 하거든요.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페어 첫 공연을 하고 나서 형이 ‘제자랑 공연을 해서 뿌듯하고 기분이 이상했다.’라고 하셨대요. 저도 정말 신기했어요.

다이스퀴스 중 누구와 만나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다 다른 것 같아요. 재림이 형은 헨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 각기 춤을 추거든요. 가장 큰 사람이 가장 큰 춤을 추니까 웃음이 나요. 규형이 형 같은 경우는 에제키엘 목사를 할 때 가장 요란스럽게 웃음을 줘요. 상훈이 형이랑 만석이 형은 레이디 살로메를 연기할 때. 혼자서 다 이끌어 가야 하는 부분인데 독백 연기의 신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혹시 웃음을 참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을까요.
최재림 형의 ‘소라게’. 각자의 다이스퀴스가 해석으로 채우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중 한 장면인데, 연습실에서 했던 건데도 너무 웃긴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형이랑 할 때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바로 헨리 다이스퀴스가 양봉하러 가자며 오토바이에 타라고 말하는 장면. 그야말로 진짜 형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모르겠어요. “엄청 빠르다. 꽉 잡아.”라고 말해놓고 엄청 느리게 갈 때도 있고. 이 형들이 저를 골탕 먹이려고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정말 어려워요.(웃음)

다이스퀴스 가문의 후계자들 가장 해보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확실히 나이에서 나오는 경험이 누적되어야 할 수 있는 역할들 같거든요. 선배들은 저보다 많은 작품을 해오신 분들이잖아요. 9명의 역할 중 분명 자신이 창작한 인물도 있겠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차용한 것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아직은 어떤 다이스퀴스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자신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넘버는 어떤 것인가요.
‘I’ve decide to merry you’죠. 이건 어쩔 수 없어요. 문을 잡고 몸을 기우는 각도, 땅에서부터 재면 예각이죠. 아마 몬티들 중 제가 예각이 제일 낮을 거예요.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그 장면을 어쩔 수 없이 가장 좋아합니다.(웃음) 또 1막에서 몬티가 점점 변화하잖아요. 그 변화된 모습과 변화하기 전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예전 몬티를 아는 사람은 시벨라고, 바뀐 몬티를 아는 사람은 피비일 텐데 그것을 문 사이에 두고 보여준단 말이죠. 우스갯소리로 각도 이야기를 꺼냈지만, 몬티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기에 가장 좋아해요.


이야기는 몬티가 쓰는 일기장에서 시작됩니다. 혹시 일기나 메모 같은 걸 자주 하는 편이세요?
요즘 늘었어요. 작품 하면서 외울 게 많아지고, 생각할 게 많아져서 조금 벅찬가 봐요. 손으로 쓰는 것보다는 핸드폰에 저장을 많이 해두죠. 공연하면서 스스로 느낀 것이나 대사 노트,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도 써두고. 지금은 헬스장을 못 가지만 ‘헬스장에서 벤치프레스 몇 세트를 했다’ 이런 이야기도 써요.

반려 물고기를 키운다고 알려져 있어요. 예전에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테마로 어항을 꾸몄다고 한 적 있는데, 최근에도 작품을 모티프로 꾸민 어항이 있나요?
일이 바쁘다 보니 손이 많이 안 가는 쪽을 택하게 되더라고요. 탱크 어항이라고 해서 바닥재 없이 두는 어항이 있는데, 돌멩이 몇 개만 해서 요번 주제는 ‘심플’ 괄호 열고 ‘청소하기 편한’ 이런 식으로 하고 있어요.

<젠틀맨스가이드> 테마로 꾸민다면 어떤 장면을 고르고 싶나요.
만든다면 피비랑 만나는 그네 장면이겠죠. 그 장면에 식물이 나오잖아요. 어항 꾸미기는 수초로 표현을 해야 하거든요. 미니어처 몇 개 넣고 끝낼 수 있겠지만, 수초를 키우는 건 실력이니까 그 장면이 도전해볼 만하지 않나 싶어요.

몬티와 닮은 물고기도 있을까요?
프론토사라는 어종이 있어요. 서열을 잡으면 그 물고기의 이마 혹이 커지거든요. 권력을 잡으면서 변하는 모습이 몬티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벌써 2020년을 지나 2021년이 다가왔습니다. 2021년은 어떤 해가 되었으면 하나요.
공연 취소 없이 공연하고 싶어요. 정말 솔직하게 2021년에는 불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고 싶죠. 공연뿐만 아니라 촬영도 그렇고요. 마음 편히 연기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공연이 재개되고 공연장을 찾아주실 관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도 보러 와주신다는 게 감사하죠. 관객분들도 공동의 책임을 느끼고 계신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힘든 상황인데, 더욱 주의하면서 공연을 본다는 것은 용기이자 책임감을 가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용기에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공연하려고 하고요.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큽니다.

배우 이상이로서 2021년 다짐이 있다면?
‘초면 배우’라는 별명처럼 매번 그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하자는 마음은 변함없어요. 그리고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실 자신의 결과 가장 맞는 연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더 주목받고 사랑받고.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자고 다짐하고 싶습니다.



*해당 인터뷰는 공연문화월간지 시어터플러스 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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