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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Jan 25. 2021

사랑할 수밖에 없는

뮤지컬 <호프> 배우 김경수

짧은 휴식을 가지고 무대에 선 배우 김경수는 한결같았다. 처음 무대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



책을 읽다 보면 문장이 무척 마음에 들어 종이 끄트머리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틈만 나면 그 페이지를 열고 문장을 읽고, 시간이 지나 닳고 닳은 종이를 볼 때면 ‘이만큼 이 문장을 사랑했구나’ 싶다. 달달 외울 정도로 문장을 사랑하고 나면 그것은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어쩌면 뮤지컬 <호프>의 에바 호프가 현대 문학 거장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싸고 벌인 소송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도 이 과정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던 원고가 자기 자신이 되기까지. 페이지를 엮는 과정은 조금 달랐을 테지만, 결국 완성된 한 권의 책을 손에 쥔다. 그런 호프의 책을 평생 지켜온 원고지 K 그리고 배우 김경수. 호프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를 보며, 일방적으로 보였던 외사랑이 결코 외롭지는 않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팬레터> 이후 짧은 공백기를 가졌어요.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것에 보상이 되는 휴식이었을 텐데 어떻게 보내셨나요.
사실 휴식보다 자기 계발 시간을 가지고 싶었어요. 휴식기 이후 참여하기로 한 작품들이 이미 다 정해져 있던 터라 일부러 그런 기간을 만들 수 있었죠. 쉬는 동안 다음에 만나게 될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해외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준비들로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많은 것을 취소하고 결국 거의 집에만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했죠. 요리도 하고, 평소에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도 챙겨보고. 또 제 와이프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남편으로서 집안일을 도맡아 내조도 잘하려 했어요. 헛되게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방역에 있어서 정말 최선을 다한 사람이 아닐까. 누군가 만나자고 유혹해도 절대로 만나지 않았어요.

오로지 방역만을 위해서요?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여나 문제가 생겨서 저로 인해 파생되는 상황을 상상하면 너무 두렵더라고요. 일단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제가 고향이 부산인데, 고향에서 찾아오신 부모님이 밖에서 식사하자고 해도 무조건 집에서 요리를 대접했어요. 그리고 저는 무대 위에서 마스크를 벗고 관객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는 강박감이 생겨서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했어요. 운동 같은 것도 집 앞 산책 정도. 무조건 마스크는 하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 가면서.(웃음) 사실 그 시간을 잘 보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절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상은 보내지 않으려고 했죠.

공백기 이후 작품들이 이미 정해진 상황이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머더발라드>에 이어 <호프><스모크>까지. 쉬는 동안 무대가 많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무대는 많이 그리웠어요. 그런데 무대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서 쉰 것도 있고, 제가 너무 소모되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저도 기대가 됐어요. 다시 돌아왔을 때의 제 모습과 마음가짐은 어떻게 될지, 무대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질지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예전에 본의 아니게 공연을 오래 쉰 적이 있어요. 그때는 되게 괴로웠던 것 같아요. 쉬면서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라고 생각했죠. 그때와 지금이 많이 다르기는 해요. 이번엔 조금 더 계획적인 휴식이었고, 마음가짐이나 입장들이 많이 달라져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과거의 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원래 생각이 많은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돌아왔다.’ ‘오랜만에 무대를 만난다.’ 이런 건 거창하게 느껴지고요. 무대가 저에게 많은 의미를 주는 직업이자 공간이어서 결국 ‘돌아오니 역시 좋구나. 사랑스럽구나.’라고 느꼈죠.

사실 <머더발라드>로 돌아왔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과 전혀 다른 캐릭터였잖아요. 나름의 이미지 변신이었을까요?
예전에 뮤지컬 <인터뷰>라는 작품에 참여하면서 김경수라는 한 사람 안에도 정말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그 어떤 캐릭터도 내가 못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인물을 내가 만났구나 정도의 체감이지 ‘나는 이제 파격적인 나의 모습을 보여줄 거야!’ 이런 의도로 작품을 대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연기도 하나의 미션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있고, 연출님이 원하는 인물의 모습도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잘 수행하려 하죠. 단, 스킨십 같은 것들에 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었어요. 제가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 결혼하지 않은 망나니 같은 캐릭터를 만나다 보니 내적으로 부딪히기도 했고. 분명히 저랑은 너무나 다른 캐릭터거든요. 제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인데, 나름대로 제 입장에서 그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것들을 꺼냈어요.


이제 <호프> 이야기를 해볼까요. 초연부터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인데 재연에 새롭게 함께하게 됐어요. 작품의 어떤 부분에 끌리셨나요?
먼저 과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호프> 초연 때 제의가 왔었어요. 너무나 하고 싶었는데 스케줄 때문에 할 수 없게 되어서 아주 안타까웠죠. 함께 하게 될 배우분들이나 창작진을 보면 안 할 수가 없는 작품이었거든요. 또 제가 호프 역 김선영 선배님의 굉장한 팬이기도 하고요. 다행히 다시 기회가 생겼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다시 만나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고 더 아쉽기도 했어요. 왜 초연부터 참여하지 못했을까 하고요.

<호프>는 어떤 작품인가요.
실존 인물이 모티프가 된 작품이에요. 주인공 호프는 작가 요제프 클라인의 원고를 두고 국가와 30년 가까이 소송을 벌이게 돼요. 이 극에서는 마지막 재판 장면을 그리고 있고요. 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재판을 이어왔는지,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원고를 놓지 못하는지. 호프에 대한 이야기가 과거 회상, 호프와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그려져요. 결국 호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눈여겨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정말 따뜻한 작품이고, 지금 이 시국에 잘 어울리지 않나 감히 생각해봅니다. 참여하는 저에게도 스스로 위로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거든요. 남녀노소 누구나 찾아오셔서 편한 마음으로 보셨으면 좋겠어요.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게 될지도 몰라요.

이번에 맡게 되신 K는 어떤 역할인가요.
말 그대로 원고지죠. ‘나는 그냥 종이야.’라는 대사도 있고, 인물 설명에도 원고지 자체를 의인화시켰다고 표현하고 있거든요. 굉장히 기발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다 보면 책한테 말을 걸 때가 있을 거예요. 일상 대화를 건다기보다 문장이 마음에 안 들면 ‘참, 나!’ 이런 반응을 내뱉는다던가. 이런 부분을 대화라는 형식으로 만든 거죠. 저는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호프가 늘 ‘이 원고가 나야. 나라고.’라고 하잖아요. 저도 연기하면서 제가 호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호프와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호프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인물. 그래서 호프의 감정에 저 역시 동요하고, 공감하고, 더 나은 삶을 찾게 도와주려고도 하고. 결국은 호프를 떠나고 싶어 해요. 그게 호프를 위한 일이니까요.

그동안 <스모크><사의찬미><팬레터>처럼 원고에 모든 것을 쏟아내는 역할을 경험했기에 호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점도 있었을까요?
혼자만의 재미는 느끼고 있어요. 글을 쓰다가 글이 되어버렸구나. 하지만 작가 역할을 해본 경험이 극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입장이 너무 다르니까요. 지금의 저는 쓰여지는 인물이잖아요. 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저한테는 주어진 미션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는 행동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했죠.

연기하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면요?
다 마음에 들어서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워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작품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저도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고르자면 호프가 자기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는 ‘호프’라는 넘버가 있어요. 그 넘버를 들으면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행복해지더라고요. 극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기도 하고, K로서 너무 바랐던 순간이기도 하고. 특별하게 어떤 부분이 좋다기보다 후반부 부분에 다다르면 모든 것이 행복한 것 같아요.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나네요.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분이 그럴 거예요. 마지막 넘버를 부를 때 사실 울면 안 되는 배우들까지 울고 있을 때가 있거든요. 계속 호프를 적대시하고 비난하던 역할의 사람들도 울고 있단 말이죠. 그들도 의도한 것이 아닐 텐데. 그 정도로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가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극 중 마음에 드는 요소가 있을까요? 전개에 큰 영향을 주는 부분이 아닌 아주 사소한 것도 괜찮습니다.
저는 종이잖아요. 원고지가 놓인 자리를 봐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저를 봐서는 안 되는데, 이건 우리 팀 디스인지 모르겠지만 저랑 눈 마주친 사람이 몇 명 있어요.(웃음) 사실 제가 눈앞에 돌아다니고 있으니 쳐다보지 않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제가 가까이 다가가면 ‘절대 눈앞에 없는 사람이다.’라고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우는 모습이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눈길이 갈 것 같은데, 다들 대단하신 것 같아요.
대단하죠. 극은 보통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서 대화가 확장되는데,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면 안 되거든요. 대화가 이어지지 않음에도 이어지는 것 같은 특이한 형식을 갖고 있어요. 이걸 경험해보지 못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작품에 이 형식을 잘 도입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게 K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K가 작품에 계속해서 개입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방법이 아닌가. 그래서 정말 모든 배우가 대사 타이밍을 위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밥 먹었니?’ ‘밥 먹었어.’가 일상적인 대화잖아요. 그런데 ‘밥 먹었니?’라고 말하는데 그사이에 ‘뭐?’라며 끼어드는 대화를 하니까, 그걸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굉장히 힘든 연기예요. 배우들 모두가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야죠.

단합이 요구되는 미션이네요.
무언가 사소하게라도 잘못되면 모든 배우의 머릿속에 느낌표가 뜨는 게 보여요. ‘어? 뭔가 문제가 있는데?’ 하고요. 그런 순간들을 잘 대처하기 위해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죠. 그래서 어렵지만 재미있기도 해요.

다른 배우들보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할 것도 같은데 어떠세요?
저도 나름의 고충이 있어요. 제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모든 배우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거든요. 그런 위험부담이 있는 공연이기도 해요. 흘러가듯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흘러가지 못하고 잠깐이라도 멈추게 되면 공연 자체에 영향을 주니까요. 또 연출 의도를 건드리는 상황이 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조심스러운 공연이에요.


호프처럼 평생을 무언가에 몰두해봤다면 그 대상이 무엇인가요.
호프만큼은 아니지만, 제 일에 몰두하는 편이긴 해요. 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데 잘하는 순간에 집착하게 되죠. 개인적으로 무대 에 만족한 적이 없거든요. 잘한다는 생각을 저 스스로 어떻게 감 히 할 수 있을까 싶어요. 누군가가 좋은 평을 해주실 순 있겠죠. 속으로 다행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순간을 계속 고민하면서 살고 있어요.

글과 관련된 역할을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으신가요.
써보고는 싶어요. 제가 예전에 작곡, 작사도 했었기 때문에 창작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있거든요. 글을 단숨에 다 써 내려가고 싶어도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각 작품 인물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아파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이걸 완전히 본업으로는 못하겠다 싶어요. 저도 강박관념이나 집착이 있고,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기도 하다 보니 그들처럼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지금 <스모크>를 하고 있어서인지 열변을 토해가며 글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아주지 못하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이해는 하지만 저는 자기만족선에서 해야 될 것 같아요.

작품을 관람한 관객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위로’ 예요.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도 위로일 텐데, 2020년의 <호프>가 관객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미션은 ‘극복’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지칠 만큼 지쳤을 거예요.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생활의 변화를 겪으며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분들이 많더라고요. 작품 속 호프도 지칠 대로 지친 사람이잖아요. 호프는 원고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거라고 두려워하지만, 여러 이야기를 거치며 점점 변화해요. 그 변화를 통해 ‘지켜내는 것과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겠죠. 이 시국이기 때문에 이런 메시지를 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떠한 시대를 만났을 때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작품들이 있거든요. <호프>가 거기에 해당하죠.

메시지와 연관 지어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사나 넘버가 있을까요.
‘수고했다.’ 이건 제가 말하면서도 스스로 위로받아요. 진부하고 뻔한 말,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큰 위로가 되구나 하고 체감해요. 일상의 언어라고 볼 수 있잖아요. 제가 호프에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 일상을 포기하면’이라고 말하면 호프가 대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도 함께 떠오르네요.

2021년에는 오는 2월 개막 예정인 <검은 사제들>도 함께하게 되었어요.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 뮤지컬 초연 멤버로 함께 하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연습 시작을 앞두고 있어요. 저도 당연히 원작 영화를 봤고, 영화에 나오신 분들도 너무 유명한 분들이고.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끝이에요. 뮤지컬과 영화는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니까, 무대에서 구현하는 <검은 사제들>이라는 작품은 관객들께 어떤 인상을 드리게 될지 기대가 되죠. 또 <호프> 창작진 대부분이 참여하셔서 함께 작품을 할 수 있으니 더욱 좋아요.

코로나19로 공연계가 많은 타격을 입었지만, 특히나 이번 사태가 크게 와 닿으실 것 같아요. 올 초 결정된 해외 콘서트가 취소되고 난 뒤 광화문 집회로 <머더발라드>가 직격타를 맞기도 했고, 현재 <호프>와 <스모크>는 잠깐 동안 관객과 만나지 못하게 되었잖아요.
기분이 유쾌하진 않죠.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해요. 왜 우리는 멈춰야만 하는가. 물론 세밀하게 이유를 따지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에요. 공연장은 다른 시설보다 위험하다는 시선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현실적으로 ‘쇼 머스트 고 온’이라는 말을 밀어붙이기보다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한다고 봐요. 누군가 다치고 아플 수 있는 상황에서 저 또한 편히 연기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연장이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객분들과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가 노력하고 있어요. 공연장 내 2차 감염자가 없는 것도 모두의 결실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내부 상황을 모르는 분들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쉽죠. 많은 이들의 노력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도 무대에 오르는 배우로서 감당하고 극복해나가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해요.

2020년은 돌아본다면 어떤 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없었으면 하는 해.(웃음) 제 인생에서 빨간 줄을 그을 수 있다면 생각 없이 긋고 싶은 한 해예요. 눈물겨워지는 순간들이 정말 많아요. 먼 미래에 이 순간을 되돌아보고 웃을 수 있는 날도 오겠죠. 이후에 더 나은 삶이 찾아오길 바라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2021년은 어떤 해이길 바라나요?
2020년은 빨간 줄을 긋고 싶은 한 해였다고 했잖아요. 2021년은 그 빨간 줄을 지울 수 있는 한 해였으면 좋겠어요.



*해당 인터뷰는 공연문화월간지 시어터플러스 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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