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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Jan 29. 2021

[팬데믹 특집 #1] 내가 있는 자리

연극 <제인> 배우 김이후

팬데믹 특집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은 코로나 19 확산 속에서 묵묵히 무대를 지키는 배우들과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팬데믹 이후 위축된 대학로의 의미를 되새기고,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내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배우를 꿈꾸던 어린 김이후에게 대학로는 별세계였다. 무대 위에서만 볼 수 있었던 배우가 평범한 차림으로 거리를 걸어 다녔으니 말이다. 힘든 시간이 올 때면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이곳에 녹아드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는 그는 당당히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존재가 되었다. 천천히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때쯤 마주한 팬데믹. 어수선한 분위기 속 공연 중단을 겪으면서도 김이후는 좌절하지 않았다. 곧 만나게 될 연극 <제인>을 위해 로체스터를 비롯한 6명의 인물들을 연구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토록 자신이 사랑했던 그곳에 남아.


<제인>으로 연극 무대에 처음 서게 되었어요. 그동안 뮤지컬로 관객을 만나왔으니 설레는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연극 무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좋은 기회로 <제인>을 만나게 되어서 감사하고 설레는 마음이 커요. 연극은 뮤지컬과 달리 노래가 없어서 음악이 주는 분위기가 대사와 연기로 표현 되잖아요. 그래서 더 사실적인 부분이 있고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기도 해요. 하나의 도전처럼 여기고 있어요.

관객들이 <제인>을 기대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여성 2인극’이라는 점이에요.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로서는 어떠신가요.
여성 2인극이라서 더 기대해주시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마 흔치 않아서일 거예요. 저 역시 기쁘게 생각하고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죠. 무엇보다 좋은 여성 동료들을 얻게 된 점이 가장 좋아요. 연습실에서 언니들을 지켜보면서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함께 연기하면서 배우는 부분이 정말 많아요.

원작과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에요. '제인'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책이나 영화에서 받은 제인의 인상은 자기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단단함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공연 연습을 하면서 느낀 제인은, 제가 상대역으로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더 생생하고 인간미 넘쳐요. 딱 보자마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

제인의 상대역인 로체스터를 포함해 7명의 캐릭터를 맡게 되었는데, 어떻게 표현하고 계신가요.
제인에게 새로운 사건을 던져주고 가는 인물들이라 각자 성격이 뚜렷해요. 물론 모두가 저와 다른 유형의 인물이다 보니, 하나를 이해하면 또 다른 과제가 생겨나길 반복해서 쉽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표면을 뜯고 한 꺼풀 들어가 보면 결국 사람이잖아요. 분명 저에게 있는 면도 존재할 거란 말이죠. 연습 기간 내내 그들과 저의 공통점을 찾고 있어요.

뮤지컬 <알렉산더><아킬레스>를 통해 한 작품에서 여러 인물을 연기한 바 있어요. 감정이나 캐릭터 전환이 조금 수월해졌나요?
하나의 극에서 여러 인물을 연기할 때와 하나의 인물로 무대를 꾸며나갈 때의 차이점은 ‘명확성’이에요. 이걸 처음으로 접한 게 <알렉산더>였어요. 옷만 갈아입고 다시 무대로 나가야 하거나, 눈물만 닦고 바로 연기를 해야 했죠. 짧은 시간 안에 제 안의 인물을 전환해야 했는데, 장면마다 명확한 목표를 정해놓지 않으면 제가 누구인지 흐려지더라고요. 이런 부분들을 깨닫고 배워가며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어요.

곧 관객과 만날 텐데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면요?
제가 의상 체인지를 하고 처음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기대되어요. 이 부분이 무대 예술의 매력이지 않을까요. 김이후라는 사람이 사라의 옷을 입으면 사라가 되고, 브로클허스트의 옷을 입으면 브로클허스트가 되고. 관객들에게 ‘저 옷을 입었을 땐 저 역할이다.’라는 마법을 걸어놓는 거잖아요. 잘 변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 기억에 떠오르는 대사가 있을까요.
제인의 친구 헬렌이 하는 말인데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너를 오해하고 비난해도 중요한 건 너의 양심이야.”라고 말해요. 이 대사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빨간 머리 앤>에서 먼저 만났거든요. 그때 보면서 ‘이 말 너무 멋지다!’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그 대사를 하게 된 거예요. 그런 기억 때문인지 헬렌의 대사가 참 좋아요.

요즘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계에 많은 변화가 생겼잖아요. <아킬레스>도 중단되었다가 거리두기 좌석제를 강화해 재개된 상황이고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고 생각해요. <아킬레스>가 3주 중단되었지만, 연장되면서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 있었잖아요. 공연 중단이 끝나고 무대로 돌아갔을 때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어요. 같이 하는 배우들도 공연 재개 첫날 정말 많이 신났었고, 공연하는 도중에도 서로가 정말 열심히 공연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죠. 배우에게 무대가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고, 이걸 뺏어가는 상황이 너무 속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대한민국 공연계를 이야기할 때 대학로는 빠질 수 없는 장소예요. 대학로의 첫 추억을 떠올린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연극영화과 입시 준비 당시 혜화에 살고 싶었어요. 대학로가 가진 기운과 에너지가 고등학생인 저에겐 너무나 열망의 대상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입시 준비를 하다가 지칠 때면 공연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있곤 했어요. ‘나도 여기 평범하게 지나다니는 사람 중 한 명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말하고 보니 지금은 소원대로 됐네요.

무대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이유를 저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하면 정말 마음이 힘들어요. 저 스스로 저를 봤을 땐 완벽하지도 않고 훌륭한 걸 만드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무대를 이어가는 게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요. 그런데 제가 어디서 힘을 얻었냐면, 바로 관객 분들이에요. 제 연기에 상상 이상으로 공감해주고, 위로를 얻고, 표현될까 의문을 가졌던 부분까지 그대로 느끼고, 좋아해 주시니까. 그것만으로도 제가 하는 일이 의미를 가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관객분들이 있으신 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어요. 위생, 거리두기 외 자신의 일상을 바꾼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제가 사람들 많은 곳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카페에 가서 혼자 할 일을 한다거나, 영화를 혼자 보러 간다거나. 진짜 혼자 있는 거 말고.(웃음)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게 꺼려지잖아요. 제 삶의 낙을 박탈당해서 해소되지 않은 것들이 쌓여 있어요.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놀이공원 가서 셀카를 찍어 올리고 싶어요. 요즘 야외에서는 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하니까. 예쁜 장소에서 마스크 없이 셀카를 찍고 싶습니다!




*해당 인터뷰는 공연문화월간지 시어터플러스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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