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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Mar 24. 2021

[팬데믹 특집#2] JUST ONE WAY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배우 김히어라

팬데믹 특집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은 코로나 19 확산 속에서 묵묵히 무대를 지키는 배우들과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팬데믹 이후 위축된 대학로의 의미를 되새기고,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내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배우 김히어라는 망설임이 없다. 여러 의견이 부딪히며 만드는 에너지가 좋아 무대를 하고, 자신만의 작업 공간이 갖고 싶어 카페를 오픈했으며, 먼 미래의 꿈을 위해 심리 공부까지 도전하고 있다. 팬데믹 시대에 주변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 이름을 건 가게를 여는 호기로움도 갖췄다. 뮤지컬 <마리 퀴리>를 마치고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아델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그에게선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초조함은 보이지 않는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차분한 모습으로 가득하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연습 막바지일 텐데, 분위기는 어떤가요.

초연 때는 플라멩코 등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러운 연기보다 수행해야 하는 부분이 더 많았어요. 재연에 와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드라마를 어떻게 더욱 촘촘하게 붙일지 고민하고 있죠. 연습이 많이 필요한 작품이어서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다들 더 하겠다고 그래요. 연습 한 회, 한 회 소중하게 임하고 있어요.


플라멩코 춤은 조금 편해지셨나요?

편하진 않아요.(웃음) 대신 재미있게 하려고 해요.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참여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작품이 너무 좋았고, 플라멩코를 더 해보고 싶었어요. 아마 다른 배우들도 다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요. 다들 플라멩코의 맛을 봤거든요. 이전엔 배우기 급급했다면 이제 스스로 표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또 초연 당시 원캐스트로 진행했기 때문에 배우들끼리 끈끈한 정이 생기기도 했고요. 작품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연락하며 지냈어요. 그래서 (정)영주 언니가 ‘작품 다시 올려야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연스럽게 ‘나도 같이하나보다.’라고 생각했죠.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자랑스러운 점을 이야기하신 적 있어요. 이 질문을 바꿔서 작품에 있어 자랑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최근에도 (오)소연 언니랑 밥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작품은 우리가 스스로 해석해서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작품의 지문 그대로만 연기해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보이니까요. 그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인 거죠. 대사 사이사이, 노래의 화음, 장면의 순서 등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쌓여 있고 각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 부분만 잘 이해해도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나와요. 사실 작품이 가진 무게가 정말 무거워요. 등에 큰 짐을 짊어진 느낌이 들 정도. 제가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하루하루 몸이 아픈 적은 처음이거든요. <마리 퀴리>도 가슴 아프게 울곤 했지만,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끝나도 후련하기 보단 넋이 나간 채로 있는 느낌. 요즘 연습을 하다가도 ‘아휴, 힘들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와요.


지난 시즌 어린 하녀 역을 맡았다면 이번에는 막내딸 아델라 역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인데, 역할이 바뀌다 보니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초연 때 연출님과 작곡가님께서 ‘만약 어린 하녀가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서 태어났다면 아델라 같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어린 하녀를 연기하며 아델라를 굉장히 질투했어요. 아델라보다 젊고 예쁘지만 천한 신분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는다는 생각을 가졌던 거죠. 지금은 어린 하녀를 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많이 생각하려고 해요. 어린 하녀는 극 전체를 뒤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 봤던 아델라의 입장을 녹여내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하나에 빠지면 거기에만 몰두하는 편인데,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죠.


그렇다면 본인의 아델라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요.

틀에 박혀 있지 않은 아델라. 안토니오도 밖으로 나간 지 오래 되었고, 마르띠리오 다음에 태어난 아이가 또 여자이다 보니 다들 아델라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란 말이죠. 아델라는 언니들이 받았던 고통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을 테고, 그렇기에 자유를 꿈꿀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태어나자마자 가지고 있는 타고난 성품, 노력하지 않아도 풍기는 아우라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도 가족들이 그를 방관함으로써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아델라를 향한 구속도 당연히 있었겠죠. 하지만 눈치껏 살아가는 방식을 아는 친구예요.


실제 경험에서 따온 부분도 있을까요?

앞서 말한 틀에 박혀 있지 않은 모습은 저 자신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가 삼 남매 중 둘째예요. 저희 아버지가 엄한 편이셨는데, 언니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으셨어요. 반면 저는 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어렸을 때부터 눈치껏 행동하는 쪽이었고요. 아버지께서도 이미 본인이 바라는 바를 언니가 이루어 주고 있으니 저를 크게 터치하지 않으셨어요. 부모님은 그런 상황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신데, 저는 제가 사랑받지 않고 자랐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누군가는 같은 상황에서 우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모든 상황이 고마웠어요. 아델라도 저와 같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향한 무관심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저 언니들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자유로움 속에서 홀로 사색을 많이 하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 거죠. 그래서 훨씬 시야가 커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언니들보다 절제된 시간도 적을 테고요.


희곡으로 처음 접했을 때부터 초연, 그리고 재연까지 이어오면서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 같아요. 각각 기억을 떠올려 봤을 때 <베르나르다 알바>는 어떤 작품이었나요?

희곡을 처음 봤을 때가 20살이었어요. 학교에서 무대를 올리는 과제가 있어서 제가 직접 연출을 맡았거든요. 그때는 이런 큰 작품인 줄 몰랐어요. 그저 ‘여자들이 나온 작품이 뭐가 있지?’하고 찾아보다가 발견하게 된 거거든요. 당시에는 딸들이 억압받는 모습이 드라마로만 느껴졌지 공감이 되진 않았어요. 이후에 초연을 올릴 땐 여성들의 시선이 많이 바뀌었을 시점이었잖아요. 미투도 있었고, 생활의 태도가 많이 바뀐 거죠. 제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 연습 분위기가 변했어요. 그래서 ‘내가 어린 하녀로서 작품의 시대를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그리고 재연에 와서 달라진 관점은 작품 속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들은 이미 자신의 방식대로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들어주는 이는 없죠. 그냥 흘러가는 말들로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작품이 주목 받는 이유로 ‘여성들이 모인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많아요. 이것이 초연 때는 의미를 가졌을지 모르지만, 재연에 와서는 ‘여자 배우들이 모였다’라는 관점보다 작품 자체를 봐주길 원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동의해요. 벌써 초연이 막을 내린 지 3년이나 되었어요. 그땐 여성 10명이 모여서 한다는 게 거의 처음이었죠. 이제는 여성극이 많이 올라오는 추세예요. 제가 참여한 <마리 퀴리>도 그렇고, 곧 올라올 <향화>도 그렇고, 창작진들이 더욱 다양한 여성 서사를 찾아가고 있어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대적으로 부족하긴 하죠. 그래도 이제는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베르나르다 알바>라는 좋은 작품이 무대에 올라간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오히려 여성이라고 강조하는 것 자체가 아직 편견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마리 퀴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쭤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마리 퀴리>가 대상을 수상했는데,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소감이 궁금합니다.

수상 이후 트라이아웃 때부터 함께 했던 배우들 몇 명과 연락을 했어요. 충무아트홀에서 했던 기억이 아직도 안 잊혀지거든요. 사실 첫공 시작 전까지 다들 불안해했어요. 코로나19가 막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라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반응까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리고 딱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올라가자마자, 관객들이 카메라도 내팽개치고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쳐주시는 모습을 보는데… 그때 정말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울었어요. <마리 퀴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올린 극이에요. 작품을 만들면서 의견 충돌이 정말 많았거든요. 여성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상황을 해석하고 덧붙이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설명할 길은 없고! 그런 과정들이 허투루 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 받은 기분이라, 수상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베르나르다 알바>와 <마리 퀴리> 두 작품을 지나오면서 느낀 개인적인 변화도 있나요.

변화보단 제가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자라왔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살아왔던 거죠. 그와 함께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어머니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잘못된 점을 고쳐 나가는데, 할머니는 너무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사회에 사셨기 때문에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계세요. 예전 같으면 속으로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하고 넘겼을 텐데, 할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남아 가족을 지키셨을 할머니를 곱씹어 보니 그래선 안 되겠더라고요. 최근에 할머니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생각이 이들이 잘 견뎌주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거예요. (옥)주현 언니에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흔히들 주현 언니를 여장군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언니가 선배로서 갈고 닦아준 길이 있기 때문에, 또 많은 선배가 그 자리를 지켜주었기 때문에 여자 후배들이 할 작품이 많아진 것이 아닌가. 정말 감사해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초연과 분위기가 다를 것 같아요. 아쉬움이 들진 않으신가요.

아쉽죠. 더 많은 분께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좌석이 줄어들어서 한정된 인원만 만날 수 있으니까요. 마스크 끼면 답답하시기도 할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배우들끼리 어떻게 더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대한민국 공연계를 이야기할 때 대학로는 빠질 수 없는 장소예요. 대학로와의 첫 추억을 떠올린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고등학교 때 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학원에 다니진 않았는데, 학교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초등학생인 동생을 데리고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보러 왔었어요. 동생과 강원도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와서 ‘국수가’에서 국수 하나를 사서 나눠 먹고 공연을 봤었죠.


카페 ‘알티프로젝트’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위치를 대학로로 정한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돈을 벌 수 있는 카페를 차리려는 목표는 아니었어요. 대학로가 제 일터이기도 하고, 작업실 같은 문화복합공간을 하나 마련하고 싶었어요. 공간을 유지하려면 영리적인 것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카페가 된 거고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구상은 있었어요. 그러던 중 이곳을 발견했고 6개월 동안 언제 가게가 나오나 매일같이 확인했죠. 그리고 <마리 퀴리> 연습 중에 연락을 받고 망설임 없이 계약했어요. 사실 오픈하는 시점에는 코로나가 이렇게 심해질 줄 몰라서 주변에서 걱정할 때 괜찮다고 자신 있게 말하긴 했는데, 그 걱정들이 틀리지 않았더라고요.(웃음)


최근 배달 서비스도 시작하셨던데.

원래 안 하려고 했거든요. ‘우리는 장사 같은 건 하지 말자!’ 이랬는데, 지금은 공간을 못 쓰고 있으니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고 있어요. 어떻게 아신 건지 팬분들이 배달을 시켜 드시고 리뷰를 너무 좋게 달아주셨더라고요.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카페 운영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카페 운영 초기에 <마리 퀴리>만 하고 다른 일은 조금 쉬면서 심리학 학사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든 생각이 이 공간을 대화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거든요. 제 목표에 부합하는 일 중 하나가 있는데, 카페에 와주시는 분들이 종종 편지를 주고 가시곤 해요. 그중에서 한 분은 매번 커피잔 아래에 포스트잇을 두고 가세요. 자리를 치우는 저만 볼 수 있게 남겨두고 가는 거죠. 거기에 그날 하루 느낀 점이나 살아가며 느낀 것들이 적혀 있어요. 그런 편지를 읽다 보면 제 심리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대화의 장이 형성된 기분이라 너무 기뻐요.


대학로는 본인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놀이터 같아요. 대극장 앙상블로 배우를 시작하긴 했지만, 대학로를 지나가다 보면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하나의 장터같잖아요. 저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장소예요.


무대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대는 저에게 허용된 시간이잖아요. 함께 공연하는 사람들과 합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또 관객의 입장에서는 공연을 보는 자신의 순간과 무대 위 배우의 순간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보니 재미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테라스에서 낮맥! 좋아하는 사람들과 야외에서 브런치와 맥주를 즐기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해당 인터뷰는 공연문화월간지 시어터플러스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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