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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Mar 29. 2021

[팬데믹 특집#3] 무대라는 연대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배우 김아영

팬데믹 특집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은 코로나 19 확산 속에서 묵묵히 무대를 지키는 배우들과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팬데믹 이후 위축된 대학로의 의미를 되새기고,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내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모두가 아는 셰익스피어를 대문호가 아닌 창작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기발한 소재는 물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셰익스피어가 젠더 프리로 캐스팅되어 눈길을 끈다. 젠더 프리 캐스팅의 주인공은 대학로 터줏대감이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배우 김아영. 대학로에 발붙인 지 10년도 더 되었다는 그가 처음부터 이곳을 보금자리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 대극장 앙상블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김아영에게 대학로의 첫인상은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들이 가진 끈끈한 연대감은 대극장에서 느껴보지 못한 차원이었기 때문. 그러나 이제 그는 연대감이 소원해지면 섭섭함을 느낄 정도로 대학로의 일부가 되었다.


초연 멤버로 <인사이드 윌리엄>에 함께 하게 됐어요. 어떤 작품인지 이야기를 안 들어볼 수 없겠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굉장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 극본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두 대본이 섞이면서 극 중 인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요. 그 과정에서 셰익스피어도 자극을 받고 ‘내가 진짜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죠.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품인 것 같아요. 처음 대본을 접하셨을 때 어땠나요?

처음 소재 자체를 봤을 때는 톡톡 튀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대본을 받고 나서는 따뜻함을 가장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도 결국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닌 진짜 내가 세상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 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해요. 요즘 세상이 그렇잖아요. 사람들 눈치도 많이 보고 옳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주장하기 힘든 세상인데, 이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용기를 줘요. 재미도 있겠지만 위로와 힐링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함익><줄리엣과 줄리엣>처럼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젠더 프리, 크로스젠더로 공연된 바는 있지만, 실존 인물인 셰익스피어 자체가 젠더 프리인 작품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사실 셰익스피어라는 실존 인물을 젠더 프리로 연기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도 가졌어요. 연출 및 제작부에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그런데 제가 마주한 대본 속 셰익스피어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보통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굳이 성별과 나이를 따지지 않아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캐릭터이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극 중에 햄릿, 줄리엣, 로미오 말고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요. 그런 캐릭터들도 함께 소화해야 하거든요. 더블로 출연하는 (최)호중 오빠의 경우 여자인 오필리아를 연기할 일이 생기고, 제가 햄릿의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이런 면에서만 봐도 남자, 여자는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초연작이라 궁금증을 가진 관객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이 있나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자타공인 연뮤덕이거든요.(웃음) 그래서 관객분들과 어느 정도 취향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동안 창작 초연들을 많이 해오다 보니까 촉이라는 게 있기도 하고. 일단 넘버가 너무 좋아요. 오랜만에 연습 밖에서도 흥얼거릴 수 있는 넘버들을 만났거든요. 또 넘버의 선율이 가사와 붙었을 때 위로가 되는 포인트들이 많아서 울컥할 때가 많아요.

위로라고 말씀해주시니, 요즘 다들 많이 힘들고 지쳐있는 상황이잖아요. 이 작품에서 어떤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별거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이 요새는 정말 큰 위로로 다가오더라고요. 이 작품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원하는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한 시대니까, 관객분들도 위로를 느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뮤지컬 <광주>로 지방 공연 있었죠. 코로나 시대에 지방 공연을 다녀오면서 보고 느낀 바가 있을까요.
먼저 정해진 지방 공연이 정말 많이 취소되었어요. <광주> 같은 경우는 잘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많은 일정이 연기되고 취소되었죠. 이런 일들을 처음 겪었을 당시에는 당황스러웠어요. 그래도 지금 모두가 힘든 상황이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연말까지 공연을 잘 마무리했어요. 달라진 점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천안, 수원 공연이 생중계로 전환되었던 것처럼 무관중 생중계 등으로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공연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거예요. 공연은 현장감이 중요한 예술이기 때문에 생중계는 차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차안을 통해서라도 관객들이 찾아와 주시고, 불특정 다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더라고요.

대한민국 공연계를 이야기할 때 대학로는 빠질 수 없는 장소예요. 대학로와의 첫 추억을 떠올린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0대 땐 대극장 앙상블을 많이해서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대학로에 처음 와봤어요. 처음에는 그저 신기했죠. 그중에서도 대학로 특유의 연대감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당황했거든요. 이제는 이곳에 발붙이고 산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각자 나누어진 작업을 할 때면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예요. 대학로는 유독 인간적인 정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가족 같죠.

대학로는 본인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대학로라는 공간이 주는 뜨거움이 있어요. 아무래도 대학로에서는 <인사이드 윌리엄> 같은 창작 작품들이 많이 올라오고, 신인들이 조금 더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열정이 넘치죠. 그래서 대학로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곳이 계속 불타고 있어야 한국 공연계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팬데믹 상황 속에서 계속 침체된다면 공연계 전체가 흔들리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제가 뮤지컬 <빨래>를 오래 했어요. 대학로의 상징 같은 공연이잖아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오랜 시간 브레이크를 건 상태예요. 내부사정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정말 많이 속상하고 안타까워요. 관객분들이 개인 방역을 철저하게 하시는 것은 존중해야 하고 맞는 이야기죠. 하지만 정책이 예술계에 다른 기준을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대우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다른 업종과 비슷한 방역 수준 정도로 동등하게 대해준다면 대학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무대를 계속해서 이어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연을 보지 않는 분들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큰 위로를 받으신 경험이 있을 거예요.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시는 거거든요. 저는 공연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주는 감동을 눈앞에서 느끼는 것은 영화나 매체가 가진 것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거든요. 가장 원시적인 게 가장 큰힘을 가지잖아요. 배우가 스태프들과 함께 고민했던 걸 무대 위에서 진심을 담아 표현하고 있어요. 관객분들이 공연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고요. 단순히 유희와 즐길 거리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것도 나쁜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관객분들은 공연을 통해 삶의 원동력을 얻고 있으니, 이렇게까지 연대감을 느끼고 공연계를 지지해준다고 생각해요.



*해당 인터뷰는 공연문화월간지 시어터플러스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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