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고 난 뒤,
세상은 한 톤 낮아져 있었다
골목은 젖어 있었고
하늘은 아직 구름의
옷자락을 걷지 않았다
돌계단 사이에 고인 물웅덩이
그 속에 쪼그려 앉은 잔별 같은 먼지들
빗물은 모든 것을 다 씻어내지 못했다
벽에 남은 낙서
지워지지 않는 이름
그리고 오래된 이끼의 끈질긴 녹색
나는 서서히 숨을 들이킨다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든다
한때 울던 비의 잔향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체온
비가 그치고 난 뒤의 풍경
그 안에 잠겨 있는 이름 없는 슬픔을
그냥,
그대로 안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