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오래된 시계가 있다
똑딱, 똑딱 —
시간을 잰다기보단
시간에 젖어 있는 것처럼
나무 틀은 조금씩 갈라지고
바늘 끝은 더디게 움직인다
한때는 분초를 가르던 바늘도
이제는 흐르는 대로
조금 늦거나 앞서거니 하며
세월에 등을 기대고 있다
나는 그 시계 앞에 선다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무늬를 보기 위해
가는 바늘이 쓸고 간 자리마다
희미한 빛이 앉아 있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본다
흘러간 것들이 남긴 숨결
지나간 이름들의 그림자
손목에 채웠던 기억의 잔
오래된 시계는 지금도 걷고 있다
시간을 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