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스며 있는 하루>

by 하늘보기

오늘 아침, 문을 열자 희미한 냄새 하나가 먼저 나를 불렀다.

비인지, 먼지인지, 아니면 오래전에 네가 남기고 간 어떤 잔향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냄새였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제멋대로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덜컹 열려버린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치 잊어도 되는 것을 굳이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네가 떠난 자리에는 늘 바람 한 겹이 남아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 얇은 층을 나는 손끝으로 더듬듯 지나쳤다.

바람은 흔적이 없지만 그 안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엔 마음이 깃든다고

나는 오래전 너에게 배웠다.

그래서일까, 바람을 스칠 때마다 네가 천천히 나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더는 닿을 수 없는 거리인데도

기억은 늘 그렇게 뒤에서 나를 잡아당겼다.

사라진 얼굴을 또렷하게 만드는 능력은 언제나 잔인했고

지워야 할 말을 더 선명하게 되살리는 기술도 참 능숙했다.

나는 자꾸만 네가 앉아 있던 자리 말을 고르던 습관

웃음 뒤에 붙이던 작은 숨을 떠올렸다.

그 작은 숨 하나가 오늘의 나를 하루 종일 흔들었다.

도시의 오후는 단정하고 무표정했다.

하지만

무표정 속에도 빛은 숨어 있고 그 빛 속에는 늘 너의 잔상이 있다.

어떤 날은 도무지 이유를 찾지 못해도

불현듯 너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추억이 삶의 가장 은밀한 서랍을 열어젖히는 시간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나는 그 서랍을 닫지 않았다

닫아버리면 다시 열기까지 또다시 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그리움은 어쩌면 배움인지도 모른다

사라진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비어 있는 자리를 쓸쓸해하지 않고 바라보는 법

내 안의 무너진 부분을 천천히 세워 올리는 법 같은 것들

그리고 저녁이 내려앉을 무렵

나는 문득 깨달았다.

네가 스며드는 순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조용하다는 것을.

큰 일이 아닌 단추 하나 같은 사소함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를 적시는 방식으로.

그래서 오늘의 나는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나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서도

끝내 네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냥 괜히

하지만 그 괜히가 나를 조금 더 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