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표준새번역) 온갖 노력과 성취는 바로 사람끼리 갖는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이 수고도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수고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 같은 것이지만, 학대는 그 수고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떠넘기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힘으로 제압해서 그의 자유를 빼앗는 엄청난 행위만이 학대가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수고를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일도 학대입이다.
때로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수고가 나에 대한 학대가 되어간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수고의 몫을 넘어 다른 이도 아닌 다시 나에게 되돌린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러니 나의 분량을 넘어서는 수고는 스스로에 대한 학대가 되겠죠.
그러니 자신을 학대하지 않으려면 내 수고의 분량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쟁과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이 균형을 찾아 관리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경쟁에서 내 힘으로 승리하고 그 전리품인 성공과 부를 나만이 거두어야 하는 세상이 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도서의 말씀처럼 결국 자기의 힘으로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 하는 것과 같은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특히 요즘의 세상에는 경쟁에서의 승리가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보입니다. 최소한의 평화의 균형마저도 흔들려가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이 사라져 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서 존재감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겠죠. 또 경쟁에서 이겨내는 승리감만으로 스스로의 존재의식을 만족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경쟁으로 가득 차고 진정한 존재는 소외됩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모습니다. 이렇게 경쟁만으로 살아가는 곳, 그 속에서 학대가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수고의 기쁨은 학대의 괴로움으로 변하고, 스스로에 대한 학대에 중독되어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수고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고의 기쁨을 잊어가고 있는 지금, 회복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존재감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대상은 '학대받는 자'이며 그 학대의 범주는 정신적, 육체적인 어떤 형태로든 사람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존중을 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조직과 세상으로부터 외면받고 무관심의 대상이 된 사람들, 시기와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된 사람들, 이 모든 의롭지 않은 행위를 통해 상처받고 있는 모든 약한 자를 위해 우리에겐 특별한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 너무나 귀한 존재임을 다시 깨달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래서, 서로를 위로하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학대받는 자들에게 세상에 속한 위로자가 없음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깨우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우리들을 위한 위로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의 임재와 재림을 바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 속의 위로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위로를 들을 수 있기를,
눈을 열어 존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를,
오늘의 살아감으로 수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