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 뒤비크, [산으로 오르는 길]
할머니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림책 속 할머니들은 제각각 다 다르다. 만인을 품을듯한 미소를 띠고 현관 앞에 나와 서있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세상 모든 것에 날을 세우고 쏘아보는 할머니가 있다. 어떤 할머니는 크고 작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다른 할머니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기도 한다. 꽃을 가꾸고 정원을 돌보는 할머니, 요리를 잘하는 할머니, 밭일하는 할머니,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고 글을 쓰는 수많은 할머니들. 이들은 예상치 못한 일 앞에서 돌처럼 굳어지기보다는 농담으로 툭 받아치며 시간을 번다. 세상의 높고 낮은 파도를 헤치고 이제와 거울 앞에 선 백발의 할머니들.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 속 할머니들은 삶의 비밀을 넣어 둔 주름을 따라 눈가를 접으며 씩 웃고, 천천히 움직인다.
블레로 할머니는 일요일마다 산에 오른다.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은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빨간 보자기에 간단한 간식을 싸고, 멋내기용 곁가지가 달린 튼튼하고 완벽한 막대기를 손에 쥐고 집을 나선다. 산에 오르는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산꼭대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고 스스로가 참 작게 느껴지는 기분을 느끼고 내려올 뿐이다. 가는 동안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고, 다시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선택을 한다. 막대기 하나 짚고 타박타박 산길을 오르는 블레로 할머니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굴러 떨어지거나 부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해서 발을 내딛고, 지칠 땐 잠깐 걸음을 멈추고 쉬면 된다는 단순한 원리를 행할 수 있다면.
3, 4년 전만 해도 ‘젊음’ 쪽으로 기울었던 내 시간의 추는 이제 평형 상태에서 슬쩍슬쩍 반대 방향으로 기우뚱거리고 있다. 이제 갓 마흔. 올해 초 트레이너는 내게 “회원님, 이제 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돼요. 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근손실을 막기만 해도 성공이에요.”라고 말했다. 에누리 없는 단어 선택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틈만 나면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그려본다. 겉으로 보면 나는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니다. 풀어진 신발끈을 고쳐 매 주고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세상의 규칙을 얘기해주며 어른 행세를 하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풋내 나는 애송이일 뿐이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 어떻게 기억될까.
블레로 할머니는 덤불 뒤에 숨어 할머니를 훔쳐보던 룰루를 산책에 초대한다. 자신이 너무 작아 꼭대기에 가지 못할 것 같다는 룰루를 토닥이며 격려한다. 할머니의 산책에 함께 하며 룰루는 질문을 많이 하고, 할머니로부터 남을 돕는 법이나 소리를 듣는 법을 조금씩 천천히 배워간다. 그렇게 서서히 블레로 할머니의 산은 룰루의 산이 되어 간다. 나의 과제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 아이들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고, 세상 안에서 작디작은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 기력이 쇠하고 더 이상 근손실을 막기도 어려워질 때쯤, 이제는 산에 오르지 못하는 내게 산 이야기를 들려줄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