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소원을 빌자
어느 토요일 저녁 곤드레 순댓국을 먹고 공원을 걸었다.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서 틈틈이 생각하는 중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잔디밭에서는 아빠와 어린이가 술래잡기를 했고, 박물관 앞에서는 어느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들 즐거워 보였고 날도 선선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산책이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막상 꿈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더 걷고 싶었지만 비가 오기 시작해 집으로 돌아갔다.
도시를 옮겨올 때 많은 꿈을 짊어지고 왔는데 일부는 이뤘고 일부에서는 벗어났다. 벗어났다는 표현은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걸 다르게 말한 건데, 홀가분한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로 간절했던 꿈을 바꾸거나, 포기하는 건 엄청난 작품을 만들 심산으로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 물감을 총동원해 꾸며가던 스케치북의 한 면을 북 찢어서 버리는 일이다. 그 다음장은 다시 깨끗한 백지. 이번에는 종이에 실을 꿰맬 수도 있고 연필 하나로 빼곡한 글을 적을 수도 있다. 이 도시에 살면서 꿈의 결과를 맞이하는 일이 전보다 가벼워졌다.
아직 이루지도 벗어나지도 못한 꿈이 있다면 바로바로.. 다큐멘터리 제작이다. 여러 사람의 호의와 도움을 받아 중간까지 왔는데 더 나아갈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누군가의 삶을 영상으로 담았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더 두렵고 무섭다.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게 취재하고 촬영한 점도 숨기고 싶다. 이러저러한 부담감에 촬영본 보는 일을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렇게 반성문을 쓰는 시간까지 왔다. 현재 가진 유일한 바람은 다큐멘터리 완성이다. 바라는 것이 꿈이라면, 내 꿈은 올해 안에 무사히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는 일이다. 아직 결과를 모르는 꿈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반성문을 길게 썼는데 처음 썼던 글은 이런 글이었다. 백발에 하얀 수염이 난 캐릭터가 두둥실 떠다니다가 나를 만나는 이야기다.
자네는 꿈이 뭔가?
꿈은 모르겠고 소원이 있어요
그래, 소원이 뭔가?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게 해 주세요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해야 할 일이 있네
그게 뭔가요?
지금 당장 맥북을 켜고 촬영본을 보게나
으엉 ㅠㅠ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