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정보글이 아니라 여행기를 쓰기로 했으니 시간순서는 집어치고 싶지만, 그래도 이상한 성격 탓에 뒤죽박죽으로 쓰기는 싫어서 사진으로 기억을 더듬어 써보려고 한다
-------------------------------------------------------------------
이전 글에도 써놨듯이 나는 여행지에 무사히 도착하기 전까지 극심한 소화불량을 겪었다
뭐만 먹으면, 아니 내가 살아있음을 대장이 있는 힘껏 증명해주듯이 언제든 화장실 5분 대기조가 되어야만 했다 (이름이 '대장'인데 대장노릇 못해서 열받았던 걸 27년만에 터뜨린 느낌)
당연히! 비행기 속에서도 소화가 잘 안 되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스튜어디스가 나의 소화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게 뭔가. 그들이 할 일 중 하나는 승객들에게 기내식을 나눠주는 것인데!
그리고 내가 나의 소화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게 뭔가. 지금 안 먹으면 언제 또 밥 줄지 모르는데! 그리고 난 비행기 많이 안 타봐서 기내식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데!
음료는 뭐 줄까? 이 질문에 됐어! 라고 할 법도 한데 응 와인 줘. 화이트와인으로 줘. 하고 와인도 야무지게 챙겼다
(이거 나중에 여행지에도 먹으려고 아껴놨는데 런던 히드로공항 환승할 때 용량 초과한 액체라고 뺏겼다. 그래서 무슨 맛인지 모름ㅎㅎ)
맛은 별로 없었지만, 나온 음식은 다 먹어치웠다. (분홍색 디저트는 맛있었다 매우)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기내식 먹어봐. 그리고 무슨 맛인지 다 궁금하잖아
그리고 이걸 먹어도 나의 대장님이 자애롭게 넘어가주실지 궁금하잖아
결론은, 당연히 '응 아니야'
그래도 크게 노하진 않은 대장님 덕분에 비행은 순조롭게 망.. 아니 마치고
경유지인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다시피 저 화이트와인의 맛은 내가 영영 풀지 못할 미스테리가 되었다.)
결론1.
언제 또 먹을지 모를 기내식맛이 궁금해지면, 대장님이 노하셔도 할 수 없다
4시간이었나, 5시간을 머물러야 했던 히드로 공항
도착하자마자 나의 생명줄이 되어줄 유심칩을 꽂아 개통하고 친구들에게 생존신고!
그리고 또 언제 배고플지 모르니까 또 밥 먹을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나의 점심이었나 저녁이었나, 아무튼 나의 메뉴는 이것!
저 갈색 덩어리들은 맛나고 짭조롬한 튀김이고 밥은 맛난 볶음밥일 줄 알고 선택했다
그런데 먹어보니 저것은 도시락이 아니라 도시락 폭탄이었다
갈색 덩어리들은 들기만 해도 부숴지는(나의 젓가락질은 타노스의 핑거스냅인가), 맛없는 놈이었고
노랑색 소스 역시 이상했으며, 저 밥은 정말.. 가관이었다
왜 밥에 민트를 넣죠?
왜 민트를 넣어서 볶아먹는 거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양치하면서 밥 먹으면 저런 기분일까?
치약맛 도시락? 도시락맛 치약?
영국 음식 맛없다고 했지만 '언제 또 영국에 오겠어'라는 생각에 궁금해서 먹어본 도시락은 민트향 추억을 남기고 사라졌다
결론2.
언제 또 먹을지 모를 영국음식이 궁금해지면, 영국음식 맛없다는 상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저기서 긁은 금액이 여행 끝나고서야 통장에서 빠져나가서 마지막까지 열받았던 기억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밥 먹은 곳은 면세점이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었다
온갖 매장들이 '네가 안 들어오고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그런 공간
유럽여행 처음 해보는 나는 또 호기심에 온갖 매장을 성실하게 돌아다녔고
한 매장에 꽂히고 말았다.. 액세서라이즈라는 브랜드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특이한 무늬들이 들어간 가방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A가 맘에 들어서 고민하다 옆을 보면 B가 있고 안돼 안돼 하고 옆을 보면 C가 있고
눈물을 머금고 뒤를 돌면 D가 "안녕?"하고 손 흔드는 가방지옥.. 아니 천국..
하 그래서 고민하다가 여것들 중에서 하나 고르기로 하고 친구들이랑 카톡을 하는데 다 이쁘다고 하니까 고르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다 샀..
으면 좋았겠지만 여행 초반이라 돈 많이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사진에 없는 다른 가방을 샀다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민하고 있는데 완전 내 취향인 정신없고 요란한 가방이 놓여있어서 일단 그걸 사버렸다
그리고 1시간 뒤였나..
나는 참지 못하고 매장에 들어가서 "여기 있는 가방 다른 터미널 매장에서도 살 수 있어?"라고 물었다
(입국, 출국 전부 히드로 경유였는데 터미널이 달랐음)
그랬더니 직원이 "거기 매장이 더 작아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요청하면 갖다줄 순 있을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래 고마워" 하고 그냥 가방 하나를 더 샀다(^^)
출국할 때 간 터미널에 저 가방이 없으면 어떡해!
내가 사진 찍는데 지금 가방이 영 맘에 안 들어서 기분이 나쁘면 어떡해!
만약에 비행기가 지연되어서 경유 시간이 부족하면 어떡해! (네~ 5시간이고요)
이런 말도 이상한 불안함과 조급함이 겹쳐서 결국 가방을 2개 사고 만 것이다
근데 이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실제로 귀국할 때 프랑스 파업으로 비행기가 지연되어서 줄줄이 시간이 모자르는 상황이 되었다 (히드로 1시간 30분만에 경유해야 됐음)
가방을 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저 가방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결론3.
'지금 아니면~'으로 시작되는 생각이 들면, 결국 사게 된다
대책없는 여행을 시작하게 만들었던 '미룸지옥 지금천국' 정신이 이런저런 일을 만들어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너무 대책없이 지금 타령을 해대서 화장실을 성실하게 다녔지만 그래도 그 정신으로 예쁜 가방 2개를 득템했으니 만족한다!
그리고 돌아와보니 알겠는데..
저기 있는 가방 다 샀어야했어..
스페인에서 고민하던 가방까지 모조리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