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을 심리학자로, 상담사로 살아보면서 느낀건 변화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담심리학 대학원 3학기 때였던가? 상담심리학 세미나 수업에서 reflection paper를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주제가 바로 '인간은 변화 가능한가?'였다. 그 때 내가 뭐라고 썼는 지, 자세히는 기억에 없으나 핵심은 '가능합니다!' 근데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배우고 싶습니다' 였다. 인간이 제발 변화 가능한 존재라고 믿고싶었다. 나에게는 상담심리학이라는 학문이 한줄기 희망이었다. 내가 변화하고 싶었으니까. 내 고통이 자동으로 없어져주진 않을 것 같으니, 나의 힘으로 그 심리적 고통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10년간 심리학자 겸 상담심리사로 살면서 알게 된 변화의 3가지 속성
1. 변화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핵심이다
나는 내가 변화하고 싶어서 심리상담사라는 일을 선택했고, 내가 변화할 수 있는 지 끊임없이 실험중이다. 지난 10년간 꽤 많은 작은 변화들을 경험했고, 그 변화들이 생기는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1년 걸린다고 뭐 하나가 뿅 하고 변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이다. 변화는 갑작스럽게 "aha!" 그런거구나. 혹은 어느새보니 "내가 변해가고있구나"라고 느껴졌다. 다시 말해 변화는 하나의 "결과"라기보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토익처럼 배워서 바로 적용 ->700점대 -> 800점대 -> 900점대 이렇게 점수로 매기거나 눈으로 보여지는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자기 스스로 알게되는 지점들이 존재하는데 예컨데 이런 순간들이다. "내가 나한테 꽤 관대한데?" "나는 나를 좀 믿는구나?" "나는 내가 쫌 맘에 드는구나?" "예전보다 덜 업다운이 심하네?" "예전보다 감정의 파도가 덜 격하네?" "이 정도면 됐네" 이렇게 나 자신에게 친절하고 덜 흔들리는 나를 순간순간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 시간들이 쌓이게 면 나는 나에게 더 이상 "완벽해지라"고 주문하지도 않고, 더 이상 "못생겼다거나 키가 작다거나 피부가 좋지 않다고" 헐뜯지도 , 더 이상 "자존감이 낮네, 왜 살아야하지? 나 빼고 남들은 행복해보인다"고 비교하며 작아지지 않는 나를 만나게 된다.
2. 변화는 어렵다.
세상에는 특정 스킬을 학습하는 것,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 등등 유쾌한 변화 경험도 다양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심리적 변화' '성격 구조의 변화' '내적 패턴의 변화'는 그리 유쾌하진 않으며 쉽지도 않다. 매우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물론 이 변화에 도전하고 뛰어들기까지도 매우 큰 심리적 장벽을 뛰어넘어야한다). 이 작업(나는 심리상담에서 하는 모든 것을 하나의 '작업'으로 표현한다)은 오랫동안 내면에 고착화되었던 행동 패턴을 바꾸는 일이다. 이 작업을 열아홉살에 시작했다 하더라도 20년 동안 자기자신을 대했던 말과 행동 패턴은 이미 습관화 되어있다. 20대 후반에 이 작업을 시작한다면 30년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나의 행동 패턴을 바꿔야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요인이 하나있다. 그 변화의 여정이 덜 힘들게 해주는 요인은 바로 '나'의 '동기(motivation)'다. 내가 변해야만하는 나만의 이유가 확실하게 있다면 그 여정은 훨씬 더 빠르고 쉽게 흘러간다. '내가 왜 변해야하지? 내가 왜 변하고싶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변화의 이유가 확고하면 확고할수록 흔들림없이 새로운 행동패턴을 학습하고 자신에게 적용한다. 적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부감, 익숙하지 않음, 어색함 등등을 함께 인식하면서 새로운 행동패턴이 안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이쯤되면 새로운 행동패턴이 더 살기 편함을 알게되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이전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음을, 그 때는 그렇게 사는 방법밖에 몰라서,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역기능적인 행동패턴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 방법이 나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는 걸 알게되면 바뀌지 않을 이유가 없게되는 것이다.
3. 변화는 남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변화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심리상담사가 변화'시켜주는'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책의 저자가 '마법'을 전수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롯이 '나' 자신이 '나 자신'과의 접촉을 통해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 '나는 지금 현재 어떤 걸 원하는 지' '나는 왜 이렇게 생겼는 지'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싶은지' 등등 내 안의 수많은 나랑 만나는 접촉들을 통해 수많은 내가 하나의 나로 통합이 되어간다. 서른여덟인 나는 스물여덟의 나보다 더 통합된 나로 살아가고 있다. 마흔여덟의 나는 서른여덟의 나보다 훨씬 더 통합된 나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안도가 된다. 내 안의 수많은 조각들, 아직도 맞춰지지 않았을 무의식의 퍼즐들,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파편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맞춰가고, 이 세상에서 조금 더 건강하게 적응하게 위해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행동을 시도해볼 것이다. 그렇게 내가 스스로 행동하고 체험하고 이 세상과 만나면서 통합된 나로서 변화는 나 스스로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