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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

불안한 연애를 반복하던 사람이 결혼 후 안정감을 획득하는 과정의 기록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안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내려가던 전남 담양 시댁을 안 간지 일 년이 되어간다. 시댁에서는 항암치료로 면역력이 약화된 며느리를 걱정하시며 안 내려와도 된다고 하셨고, 남편은 시댁에 새로 입양된 반려견 훈련을 위해 시댁에 내려갔다. 안 내려가서 편하긴 하지만 이래도 괜찮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담양에 내려간 남편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나: “내 얘기 안 물으셔?”

남편: “혜진이 보고 싶다고 하시지”


나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말을 듣고 충동적으로 코레일 홈페이지에 접속해 KTX예매를 알아봤다. 마침 내일 새벽 용산에서 광주까지 가는 기차 예매가 가능하다. 가격은 5만원이었다. 내일 새벽에 갔다 오후5시에 남편이랑 같이 서울로 올라오면 빠듯한 일정이긴 하지만 시부모님에게 얼굴은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결제하자! 그러다 멈췄다.


‘잠깐, 광주송정역에 내려서 담양까지 택시타고 들어가면 3만원이나 내야하는데..먼저 전화드려서 내일 내려간다고 말씀 드릴까? 그럼 광주에 살고 있는 형님이 픽업 오실텐데..그건 또 귀찮아! 에이. 그냥 다음에 내려가자. 끝.’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보다 더 친하지 않은 한 살 많은 형님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담양 시댁까지 1시간 가까이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어색하고 부끄러움, 귀찮음이 가장 크다. 여기까지 써보니까 형님과 시댁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시댁 식구들과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을만한 에너지가 여기까지라는 게.

시댁 식구들이 싫지 않다. 단지 나에게는 낯선 사람들이라 불편하고 수줍다고 해야 할까. 그들과 대면하는 데 드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데 한계치가 존재하고, 그 한계치를 넘지 않으려 조절하는 중이다.


결혼 6년차, 내가 설정한 한계치는 다음과 같다.


1) 자고 오더라도 1박을 넘기지 않을 것(1박은 여행 같은데 2박부터 스트레스 시작됨)
2) 시아버지가 역으로 데리러 오시면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는 남편이 대화를 리드할 것(침묵은 불편해)
3) 시부모님과 함께 식사, 대화, 산책 등 공식 일정이 종료된 후 우리끼리 별채에 있을 때는 독립적인 시간을 존중받을 것


3가지 규칙이 지켜질 경우, 시댁에 다녀오는 시간은 미니트립과도 같이 느껴진다. 나도 나를 반가워하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얼굴 뵙는 게 좋다. 나를 보고 웃어주고, 잘 왔다며 반겨주고, 맛있는 음식을 손수해주시고, 예뻐해 주실 때마다 기분이 좋다. 어릴 적 꿈꿨던 가족 간의 풍경이기도 하다.



나의 원가족은 모두 경상도 대구 출신이다. 경상도 대구 출신이면 모두 무뚝뚝한 지는 통계를 따져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대구 사람은 모두 무뚝뚝하다. 게다가 아들 우선주위를 대놓고 실천하던 외할머니에게 맺힌 감정도 많았다. 명절 때마다 느꼈던 차별. 큰이모의 아들인 사촌오빠가 오는 날엔 고기반찬이 나왔다. 나랑 여동생만 가는 날은 풀만 가득하고. 그래서 외할머니도 명절도 참 싫어했다. 지금이야 원없이 고기를 먹은 덕분에 고기에 맺힌 한은 풀었으며, 내가 가면 내가 좋아하는 고기를 해주시는 시댁이 좋긴 하지만, 아직까지 나에겐 낯설게 느껴지는 일이다. 시부모님을 더 자주 만나고, 더 곁에 있었다면 이 낯섦이 더 빨리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관계모양에 가까워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나도 더 가까운 며느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점점 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내 삶도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 이 세상에 진짜 가족이 두 명 더 생기는 거니까.


낯선 사람에 대한 수줍음이 높은 기질로 타고난 유전적인 측면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 두 분을 낯설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정말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서, 이것 또한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더 조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섣불리 가까워졌다가 마음 상해서 싫어지면 큰일 나니까. 이건 우리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평생 고부갈등으로 전쟁을 치르던 아빠, 엄마를 보며 자란 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좋을 수 있다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엄마에게 상처를 준 친할머니가 미운 동시에, 그런 친할머니를 보지 않고 살아온 엄마가 도리를 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엄마의 무책임한 행동이 부모님 이혼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도 엄마도 모두 미숙한 한 명의 사람이었을 뿐인데.


글을 쓰다 보니 얼굴은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걸 느낀 나는 시댁에 가 있는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어머님 아버님 저에요 ^^ 이번에 같이 내려갔음 좋았을 텐데....가을즘에는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지겠죠. 그 땐 KTX로 내려가면 될 것 같아요~”


내 얼굴 잠깐 보여드리는 것뿐인데 아버님 어머님이 참 좋아하시는 표정에 감사했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 친해지는 거겠지? 너무 무리 말고, 한걸음씩. 아마도 어머님 아버님은 원만하게 의사소통하는 가정을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계시는 듯하다. 낯선 어른들과의 친밀한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조금씩 다가갈 수 있게 기다려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날이 갈수록 커진다. 다음에 내려갔을 땐 직접 말씀드려봐야겠다. 당신 자식을 사랑하는 것 외엔 특별히 잘한 것도 없는 며느리를 예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글: Chloe Lee

그림: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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