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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줄 아는 사람이 매력있다

<살고싶다는 농담>, 허지웅 에세이를 읽고 나를 돌아보다.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낼 수 없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매대 위에 보기 좋게 진열해놓은 근사한 사진과 말잔치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P.14 <살고싶다는 농담,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은 세 번째 항암 치료를 마친 후 구역질이 유난히 심하던 날 밤을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 혼자서 절절하게 믿지도 않는 신을 찾던 죽음의 끝자락.


그날 나는 왜 그렇게 혼자 견뎠을까.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고, 왜 도와 달라 말하지 못했을까. 왜 입원을 하지 못했고 옆 자리에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볼 바에 혼자 아프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까라며 자신의 작은 마음을 돌아본다.


근사한 사진과 말잔치는 행복이 아니다.


누구보다 근사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그 근사함, 있어빌리티. 그것을 가지고 있고 구현해낼 수 있는 그는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진짜 행복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을 타인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힘들다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자기(self)로부터 시작했다.


유독 호기로운 글, 농담같은 말, 허세인가 세련됨인가 헷갈리는 오묘한 비주얼을 구현하는 허지웅의 내면은 그의 글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다. 겉으로는 이길게요! 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질게요!라고 말하는 그의 두려움, 쓸쓸함, 공허함, 그 어두움을 감싸주었을 것 같은 따듯함, 단단함, 용기까지 솔직하게 느껴져서 그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후회할 줄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후회도 하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스물여덟살에 성인용 문장완성검사에서 내가 작성했던 ‘후회’와 관련된 질문이 떠올랐다.


Q. 어렸을 때 잘못했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이 질문을 처음 받았던 스물여덟살의 답변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의 답변: 없다.


비슷한 질문에 똑같이 답했다.


Q.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이에 나는 또 답변했다. 없다.


마흔을 앞둔 내가 다시 답변한다면 이렇게 쓰겠다.


Q. 어렸을 때 잘못했다고 느끼는 것은?

아빠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멀리한 것.


Q.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사랑받고 싶을 때 사랑을 표현해달라고 말하지 않은 것.


그 때의 나는 또 그러지 못할 수밖에 없는 나였다는 것도 안다. 그 때의 나는 무서웠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꿀밤이 무서웠고, 다정다감하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는 아빠엄마가 나를 버릴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단지 말을 잘 듣고 말썽 안 피우는 착한 첫째 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만 할 수 있는 어린 나였다. 그 때는 그랬고 그렇게 살다가 스물여덟이 되었던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아온 내가 옳다고만 믿었다(믿고 싶었나보다).


착한 척 연기하며 진짜 나를 밟고 살아온 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슬펐는지 알게 된 후로 후회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는 후회할 짓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에 또 똑같이 두려워하는 내가 나타난다면 어릴 때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던 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앞으로도 회피행동을 반복하는 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차분하고도 친절하게 말해줄 수 있다.


후회할 수 있는 것 또한 성숙 과정의 근거다. 지나친 자책과 죄책감에 빠지는 것은 나를 킬링하는 행위이지만,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작업에서 후회는 빠질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다.



글: Chloe Lee

사진: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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