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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의 또라이였을까?

어젯밤 꿈에 대한 심리분석

어젯밤 꿈에 옛 회사의 상사가 몇 년 만에 등장했다. 지금은 밤인데도 어젯밤 꿈을 떠올리니 꿈 속의 나와 상사 얼굴, 그 안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만큼 생생했다. 그 상사 때문에 맘고생 몸고생을 하긴 했어도 꿈에 나온건 처음이라 기념할 만하다. 내용은 더욱 기묘했다.


꿈에서 나와 상사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시점은 내가 퇴사를 마음 먹은 때로 돌아간다(현실에서는 퇴사를 마음 먹었지만,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퇴사를 선택함). 내가 자발적으로 퇴사를 결정하고, 내가 왜 퇴사하고싶은지를 당당하게 상사를 앉혀놓고 이야기했다.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장면은 내가 말한 내용보다는 내 말을 듣는 상사의 표정이다. 굉장히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이해한다는 듯한 분위기로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현실과는 매우 다른 설정). 그리고는 내가 그렇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며 사과를 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난 매우 당당하게 내 발로 회사를 걸어나왔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그 상사가 또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꿈을 꾸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그 사람에게는 내가 또라이였을 수도 있겠다. 2014년,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나의 억울함과 부당함만 보느라 회사 상황, 나의 역할, 나의 책임에 대해 내 입장에서만 해석했다. 그 힘든 상황을 상사가 케어해주지 않았다고 원망하고 분노했다(그야 말로 징징대는 능력 부족한 사원이었을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2021년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그 때의 상사도, 신입인 나도 모두 미숙했다(지금보다 더).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인적자원(혹은 상사-부하 관계)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가 공동으로 달성하기로 했던 미션도 실패했다. 그것은 우리의 공동 책임이다. 상사가 백퍼센트 잘못한 것도, 내가 백퍼센트 잘못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일을 잘 해내지 못한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던 2014년의 우리는 서로를 또라이로 여기며 서로에게 칼을 들이댔다. 아픈 상처를 남기는 말과 눈빛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관계를 종결했다.


그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해석해본다. 사실 상사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믿고 따랐던 시간이 싫어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길었다. 우리의 프로젝트도 성공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밤을 새고 일했던 마음을 공감받지 못하고 퇴사했던 것이 내심 한이 되었나보다. 꿈에서라도 화해해서 좋았다. 결국 현실도 꿈도 다 내 마음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있지만.


나는 누구의 또라이였을까?

아니. 지금 난 누구의 또라이일까.



글: Chloe Lee

사진: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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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의 또라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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