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번아웃이 온 걸까?

by 기세


이미 번아웃의 먹구름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면, 번아웃이란 놈이 나를 덮쳤다고 처음 느낀 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살다 보면 불행한 생각이나 나쁜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번아웃을 겪는 건 아니니까.

내가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번아웃이라는 건 우울증과 유사한 점도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세상을 비관적으로 사나?' 하며 스스로를 책망하다가, 정말 몸에 아무런 기운이 돌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그 후엔 지금까지 해온 모든 비관적 생각이 '옳았구나'라는 확신으로 바뀌며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된다.


우울증과 유사한 것 같다고 말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다.


첫 번째로,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번아웃도 명확한 기준점이 없다. 인터넷에 우울증이나 번아웃을 자가진단 할 수 있는 테스트가 많다. 그런데 거기서 점수가 높다고 그 사람이 우울할까? 혹은 번아웃에 빠진 걸까? 반대로 테스트 점수가 매우 낮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일까? 정말 그 점수만으로 나를 파악할 수 있는 걸까? 어떤 설문지는 내게 '보통의 수준입니다.'라고 하고, 어떤 설문지는 '위험한 수준입니다. 의사와 상담하세요.'라고 했다.

어느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런 테스트의 점수만으로 우울증과 번아웃의 점수를 매긴다면, 우리 주변 사람들 중 80% 이상이 미래를 꿈꾸지 않고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감정의 소진도'를 놓고 번아웃의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무기력'의 정도도 여기에 포함된다.

실제로 정신의학과에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방문해서 두 시간 정도를 설문지 작성만 했다. 그 설문지의 질문은 대부분이 '얼마나 지쳤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어쩌면 '얼마나 포기했는가'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설문지를 받아 든 선생님은 그날 내게 많은 말을 하시진 않았다. 솔직히 답변을 하였는지,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노동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오래 종사했다면 얼마나 오래 했는지 정도였다.

선생님의 번아웃 관련 질문은 딱 하나였다.

"요즘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뭐예요?"

의사 선생님의 질문 앞에서 그 의도를 파악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야, 너만 힘들어?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

이거다.

그래서 선생님께 저대로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말은 모든 의지를 꺾고, 모든 기력을 깎아먹는 말'이라고 하셨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한 번의 방문을 끝으로, 나는 정신의학과에 방문하지 않았다. 후술 하겠지만 '뭐라도 시도해 봤다'는 선택지 중 하나였지, 병원을 다니며 약물 혹은 정서치료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 방문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나의 환경이 얼마나 스트레스로 가득한가를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인터넷에 떠다니는 많은 테스트 검사지처럼, 내가 정말 번아웃을 이웃으로 맞을 만큼 불편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운의 주인공 말고, 이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이는 없어! 이런 거 말고, 나의 환경이 번아웃을 초래할 정도로 위험했던 건지 알아봐야 했다. 그래서 스마트폰 메모 어플에 생각날 때마다 적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루종일 얼마나, 어떤 종류의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지를.






'회사 가기 싫다'가 '사고 나서 회사 안 갔으면 좋겠다'로

이때는 단순히 번아웃을 떠올리기 전에 그냥 내가 한심한 회사원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회사가 가기 싫었으면 다쳐서까지 회사 땡땡이 칠 생각만 할까, 그저 이 정도로 여겼지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데, 대부분 책상에 앉아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 일을 하면서 징징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알았어야 했다. 수많은 내일을 맞기엔 내가 너무 지쳤다는 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버겁다

나는 극내향형 인간이라, 원래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안면이 트였거나 함께 일하며 대화를 섞었다면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그 사람의 취향 혹은 성향을 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정말로 몸이 아팠다. 속이 쓰려서 겔포스를 달고 살았다.

대화라는 건, 점심식사를 하며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 잔잔한 걱정을 하면서 '부담 없이' 목소리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까지도, 그리고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사람들과의 대화가 버거운 수준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신경 쓰고 그 사람의 언행을 모니터링하는 수준으로 지내야 했을 때, 이때부터 나는 대화 자체가 싫어졌다.


눈 감으면 깜깜하지? 그게 바로 내 미래야

일을 하며 실수를 했을 때, 시험을 봤는데 몇 문제 차이로 떨어지거나 원하는 등급을 받지 못했을 때, 어느 누구와도 잘 지내고 싶은데 뒤에서 내 욕을 한단 얘길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세상에 숨 쉬고 살아갈 가치도 없는 미세 먼지 혹은 미세 플라스틱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일하다 실수했을 때도 그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을 탓했다. 99번 잘하다가 한 번 삐끗하면 나자빠지는 게 사회생활이라며 스스로에게 못질을 해댔다. 시험 성적이 나쁠 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 좋은 애들을 어떻게 이기냐며, 날 때부터 잘하는 거 하나 없는 내겐 이런 시험도 힘든 거라고 합리화했다. 내 험담을 한다는 사람 앞에서도 웃고 인사하며 극복해보려 했으나 결국 지는 건 나였다.

잘하는 것도 없고, 꿈도 없고, 당연히 뭘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통 위와 같은 내용의 글들이 메모 어플에 담겨 있었다. 물론 더 심한 문장도 많다. 죽고 싶다던가, 죽이고 싶다던가 하는. 하루종일 했던 나쁜 생각과 부정적인 마음들을 그때그때 적어두었다. 아무튼 난 번아웃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알아챌 수 있었을까?


나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부정적인 마음도 언제든 먹을 수 있다. 다만, 그 생각과 마음을 숨 쉬듯… 까진 아니어도 '밥 먹듯' 하게 되었다면 의심이 아닌 확신을 가지는 게 좋다.

그리고 누가 봐도 하루종일 어플을 열어 열심히 적어 내려 갔던 그날 밤, 난 스스로에게 번아웃이 왔다는 걸 인정했고, 또 확신했다.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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