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마음을 읽는 안경

by 기세

1부. 읽을 수 없는 마음들


교실 책상에 턱을 괴고 고민하던 민채는 결국 혼잣말을 뱉었다.


“도대체… 왜 말을 안 해? 기분 나빴으면 나빴다고 하면 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지난 주에도 이런 기색을 느꼈는데 오늘도 어김 없이 같은 반 친구 수연이가 민채를 피하는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채는 분명 나쁜 말을 한 적도, 수연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 행동을 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수연이는 며칠 전부터 민채에게 건네는 말수가 줄었고, 이제는 늘 함께 걷던 복도에서도 민채를 슬쩍 피하는 것 같다.


“혹시 내가 뭐 실수했어?”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래.”


‘그냥 피곤해서 그래.’ 민채는 이 말이 너무 싫다. 그냥 피곤한 게 아니란 걸 아는데도, 수연이는 솔직하게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게 민채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린 친구인데, 못할 말이 어딨다고?


‘사람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날 밤, 민채의 책상 서랍이 스르륵 열리더니 낯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식상점 헤윰의 입구가 민채의 방에서 열린 것이다.


“지식상점 아르카에 어서 오십시오.”

헤윰의 주인은 이번에도 수수께끼 같은 노인이었다. 한국인이라 보기엔 외국인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 노인은, 검은 눈동자와 같은 색의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노인은 곧장 책장이 끝없이 펼쳐진 공간으로 민채를 안내했다.



2부. 마음의 조율 안경


“당신은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군요.”

“저는 그냥, 친구가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왜 다들 진심을 숨기는지 모르겠어요.”


노인은 조용히 웃으며, 진열장 하나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은빛 안경이 놓여 있었다.


“‘마음의 조율 안경’입니다. 이 안경을 쓰면 상대방의 말과 마음의 ‘온도 차이’를 읽을 수 있죠.”

“온도 차이요?”

“말은 ‘괜찮아’인데, 마음은 ‘너무 서운해.’ 그런 식이죠. 이 안경은 그 차이를 눈으로 보여줍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민채는 안경을 바라보았다.


“조건이요?”

“보는 걸로 끝내선 안 됩니다. 당신이 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율하느냐에 따라 안경은 사라질 수도, 영원히 눈에 박힐 수도 있어요.”


민채는 망설이다가 안경을 썼다.



3부. 들려오는 진심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한 민채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수연이를 찾았다. 수연이는 민채보다 먼저 교실에 도착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수연이에게 다가간 민채는 안경을 쓴 채로 수연이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수연이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 그 숙제 했어? 완전 어려웠지?”


그 순간, 민채가 쓰고 있던 안경에 작은 글자가 떴다.


[표정: � / 속마음: 속상해. 왜 나한테 숙제 같이 하자고 안 했어?]


민채는 당황했다.


“저기, 혹시… 어제 내가 숙제 같이 하자고 얘기 안 해서 섭섭했어?”


수연이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조금. 난 너랑 같이 하고 싶었는데, 네가 그냥 말 안 하고 집에 가더라구.”


그 순간, 민채의 안경에 떠 있던 글씨가 사라졌다. 그렇게 민채는 안경의 도움을 받아 친구들의 ‘말과 속마음’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늘 무뚝뚝하던 성민이는 속으론 늘 민채에게 고마워했고, 반장이면서 장난기가 많은 유정이는 웃을 때조차도 속으로는 외로움을 품고 있는 아이였다. 민채는 점점 친구들의 속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말을 뱉었다.


“미안, 너한테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당연하게 여겼네. 고마워.”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네 마음 충분히 느꼈어.”


친구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민채가 먼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니, 그들도 민채에게 겉과 다르지 않은 속마음을 꺼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4부. 감정 폭주


이렇게 매일이 평화롭고 순조롭게 흘러갈 것만 같았지만 어느 날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민채의 안경에 너무 많은 감정들이 동시에 읽힌다는 것이었다. 등굣길, 교실, 복도, 화장실까지 민채가 발을 딛는 모든 공간에서의 속마음들이 안경에 떠올랐다.


“진짜 오늘 너무 지긋지긋해.”
“쟤랑 말 섞기 싫다.”
“민채는 너무 잘난 척해.”


온갖 감정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민채는 순간 핑 도는 느낌이 들어 머리를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이건… 너무 많잖아… 이걸 전부 다 듣고 이해 해줘야 하는 거야?’ 그때, 지식상점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마음을 안다고 해서, 모두 다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마법사 놀이는 그만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그런 순간에 도달했음을 민채 스스로가 느낀 것이다. 이윽고 민채는 지식상점 헤윰에서 받은 안경을 벗어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나는 지금, 친구들의 속마음을 읽고 마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5부. 다시 시작하는 공감


민채는 조용히 수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

“수연아. 나는 너와 항상 웃으며 잘 지내고 싶어. 혹시, 최근에 내가 놓친 네 마음이 있다면… 말해줄래?”


수연이가 눈을 껌벅이더니, 작게 웃었다.


“민채야, 고마워.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까봐 내 마음을 숨겼던 것 같아. 너와 나는 베스트 프렌드잖아! 앞으론 너에게 다 말할게.”


그 순간, 민채의 서랍 속에 놓여있던 안경이 조용히 사라졌다. 민채도 모르는 새. 하지만 민채는 이제 안경이 없어도 친구의 눈빛에서, 말투에서, 그리고 침묵 속에서 작은 진심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 공감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


지식상점 헤윰의 책장 한쪽, ‘감정 조율’ 코너에 민채의 이름이 새겨졌다.


민채 –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공감자. 조율 능력 안정화 완료.


그리고 또 한 번, 바람이 헤윰 내부에 불었다. 허공엔 다음 손님의 이름이 스르륵 떠올랐다.


“하윤 – 나한테는 특별한 게 하나도 없어요.”


노인은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조용히, 다음 주인공에게 건네질 아이템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2화 끝.